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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본능에 충실하기 2014/04/23

by jebi1009 2018. 12. 26.


       

이성이 살아 있다는 것, 듣고 보고 판단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고 또 그 일에 몰입해 가는 것이 두렵다.
나를 분리해야 한다.
계속 나에게 경고하지 않으면 끊임 없이 빠져드는 우울감과 질척거리는 슬픔에서 견디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텔레비전도 없고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간청재로 간다.
그 곳에는 파란 하늘과 유려한 천왕봉의 능선과 햇살과 바람과 연녹색 아이들이 있다.
이름과 똑 닮은 황매암도 가고 땀 흘리며 도솔암에도 오르고 햇빛 아래 고개 박고 정신 없이 풀을 베었다.
하룻밤 사이에 고개를 내민 고사리를 뜯었다.
해가 지면 술을 마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언뜻언뜻 자꾸 늪 속으로 빠지려고 했다.
미친 듯이 땀 흘리며 풀을 베면서도 이대로 지쳐 나가 떨어질 때까지 풀을 베다 술 한 잔 마시고 잠들고 싶었다.
텔레비전이 인터넷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입들이 쏟아내는 그것을 다시 접해야 하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도솔암의 예쁜 장독대와 작은 부엌과 반짝이는 옻칠 장판을 가진 작은 방....
능선이 보이는 진달래 담장 소나무 밑 평상에 앉아
그대로 아무 것도 듣지도 보지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서울로 가야 할 시간, 우리는 함양에서 일을 보고 보리밥집으로 갔다.
보리밥집에 틀어 놓은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소주 한 잔에 보리밥을 먹었다.
서울 가는 전주곡인지 옆 테이블의 여자들이 텔레비전을 대신했다.
그리고 지금 서울에 와서 나에게 경고를 날리고 있다.
간청재로 다시 숨어들고 싶다. 해 뜨면 온 몸이 지칠 때까지 일하고 저녁에는 그저 소주 한 잔에 쓰러져 자고 싶다.
간청재로 되지 않으면 더 깊은 산으로 숨어들고 싶다....

  황매암  


  도솔암

  이 곳에 앉으면

  이렇게 보인다

  도솔암 마당에서 보이는 지리산




  도솔암 마당에 좀 쌩뚱맞은 탑이 섰다.

  도솔암 내려오는 길에 산벚이 예쁘다




  창원마을 입구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서 바라보는 마을길이 새롭다

간청재에서 천왕봉 능선을 보니 눈처럼 구름이 내려 앉았다.


  정글처럼 덮여 있던 풀 무더기를 정리하고 나니 저렇게 잘 생긴 나무가 보였다.

  풀 속에 갇혀서 보이지도 않았던 나무가 이렇게 예쁘게 살아 주었다. 정말 미안하고 고맙다.



  대학 다닐 때 맥주집 기본 안주로 나왔던 번데기. 그 이후 20여년 만에 먹어 보았다.
  이 번데기를 사이에 두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아무렇지도 않은듯...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그날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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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수리 2014/04/24 09:59

    아담싸이즈 템플 도솔암 킹왕짱이어요 ^^*
    그잖아도 힘든 계절인데..
    숨어있던 잔상들까지 스멀거려 움직이지 않곤 힘이 듭니다.
    무박이틀을 소쩍새와 개구리소리를 응원가로 들으며 벅차게 걸었어요
    답례로 저는..그것만이 내세상을 불러줬지요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봐, 혼자 그렇게 그 길에 남았나봐
    하지만 후회없어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에상~~~ 켁

  2. 무명씨 2014/04/27 17:27

    그저 먹먹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네요.
    참으로 잔인한 4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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