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간의 연휴가 확보되었다.
1일부터 이어서 놀면 하루가 더 확보되었으나 연휴 마지막 날 서울로 올라오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징검다리 2일이 아닌 마지막 7일에 월차를 냈기 때문이다.
물론 나야 백수니까 일년 열두달이 연휴지만 아직도 남의 돈 타 먹고 있는 용가리는 월차 연차를 머리 굴려가며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기온에 따라 사람 기분이나 몸 상태가 달라진다는 것...
물론 서울에서도 느끼지만 간청재에서는 확실히 다르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지만 차가운 바람이 파고 드는 겨울과 초봄에는 집구석에 들어가면 나오고 싶지 않았다.
군불 때고 구들방에서 엉덩이 등짝 지지면서 뒹굴대다 따끈한 라면 국물에 소주나 한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봄바람이 살랑대고 따뜻한 기운이 몸까지 퍼지면서 이제는 내 안에서 밖으로 나가라 나가라 소리친다.
무언가 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생각이 몸 구석구석 퍼진다.
지난번 간청재에 갔을 때 아랫단 땅에 있는 풀을 뽑아 나무들을 구하면서 복장과 신발의 불편함이 느껴졌다.
다음에 올 때는 구색을 갖추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올라왔었다.
3일 토요일 새벽 5시 출발.
생초로 들어가 역시 따끈하게 눌려진 두부를 사고(지난번에는 시간을 잘 맞춰 순두부를 먹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이미 두부가 돌 밑으로 들어간 뒤였다 ㅠㅠ) 간청재 문을 열고 대충의 청소와 정리...
수월암에 들러 새로 모신 예쁜 부처님 만나고 일출식당에서 밥 먹고 인월 장날이라 인월장으로 갔다.
벼르던 고무신과 장화를 샀다.
장화를 사는데 딸기 냄새가 진동한다. 바로 앞에서 딸기를 담아 팔고 있었다.
딸기도 한 바구니 사고 아궁이에 구워먹을 고구마와 감자도 사고....
지난번에 부처님 방석을 만들어 보라는 스님의 하명을 받고 여러가지 만든 것 중에 맨 위 오른쪽 것이 간택되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랐다.
인월장에서 구입한 말표 고무신과 빨간 장화
간청재 가는 길에 너도님 덕분에 으름꽃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 동행한 무주에 사시는 너도님 친구분이 막걸리를 손수 담아 오셨다.
잽싸게 미나리 뜯어 부침개 두어개 부쳐 오랜만에 누마루 문을 활짝 열고 천왕봉과 눈 맞추며
짙어가는 산 골짜기 그림자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날이 밝자 내 빨간 장화와 첫 동행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한 동안은 간청재에서 나를 떠날 일이 없을 듯하다...
먼저 마당의 풀을 뽑아야 했다.
마당은 그래도 눈에 보이는 곳이어서 나무들을 어느 정도 분간 할 만큼 해 놓았으나
풀들이 나무랑 키가 비슷해졌다.
뽑고 또 뽑았다.
새삼 느꼈다. 호미가 얼마나 훌륭한 도구인지를.....
호미 만큼 좋은 농기구는 없을 것 같다. 물론 다음에 무엇을 또 쓰고 감탄할 지는 모르지만서두...
얼마 만큼 좋았는지 철기 시대 때 농경사회가 시작된 것도 감탄스러웠다.
철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이만큼 풀을 뽑으니
마당이 이렇게 되었다.
풀 뽑으며 만난 벌레와 지렁이들...한 백가지 종류는 만난 것 같다 ㅠㅠ
풀 뽑느라 해가 기울고 술 한 잔이 간절해졌다.
날이 따뜻해지니 누마루에 절로 가게 된다.
밤이 되자 비가 내렸다.
집 안의 불을 끄고 누마루 문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는 절대 암흑..
그러나 조금 지나니 어둠이 눈에 익었다. 보이는 것들이 생긴다. 빗소리가 예쁘다..
관매청우....매화를 보기에는 아직 나무들이 어리지만 빗소리는 온 몸으로 즐길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누마루 문을 열어 젖히고 빗소리를 들으며 밤 냄새를 맡았다.
밤이 되면 나는 냄새가 있다.
난 고3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올 때 운동장에 내려서면 그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했다.
밤에만 나는 그 냄새....
아침...댓돌 위에 벗어 놓은 고무신이 간 밤 비에 젖었다.
비에 젖은 고무신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씻어서 툇마루에 올렸다.
오늘은 집 뒤 윗단의 땅에 있는 나무들을 구해야 한다.
나무들이 있는 곳만 어찌 해 보려는데도 풀들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용가리는 무주 친구분과 고사리밭을 정리하러 갔다.
손바닥 만한 밭이지만 쇠뜨기 풀을 뽑고 조금 걷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금쪽 같은 조언을 해 주셨다.
친구분은 쉬러 오셨다가 어리버리한 우리들 때문에 손에 장갑을 끼게 되셨다. 에고~
하루가 그렇게 빨간 장화와 장갑과 호미와 함께 지나갔다.
풀더미 속에서 구하게 된 아이들.
아궁이 위에 작은 지붕을 달았다.
초파일...너도님과 친구분은 수월암 잠깐 들러 스님께 인사드리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우리는 잠시 실상사 마당을 구경하고 간청재로 와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원래는 초파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러다니려고 했다.
그런데 그냥 집에 가서 일이나 하자....로 둘이 합의 봤다.
다시 장화를 신고 호미를 들고...
마당 앞에 있던 단풍나무를 뒤로 옮기고 뒷마당 풀을 뽑고 꽃씨 뿌릴 자리를 만들었다.
뒷마당 풀은 덩굴에 얽혀 정리하기가 더 힘들었다.
너도님이 주신 수세미씨와 작은 꽃시를 뿌렸다.
용가리는 꽃씨를 심는데 고랑을 만들어야 한는 것 아니냐며 고민했다.
나는 구멍을 파서 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고민했다.
그러다 그냥 살살 뿌리고 흙을 덮기로 했다. 그리고 물을 주었다.
과연 이 아이들이 어찌 될까...ㅠㅠ
저녁은 남은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맥주와 함께 했다.
방 벽에 등을 대고 오랫동안 어둠이 만들어 내는 능선들을 바라봤다.
실상사 앞마당을 슬쩍 둘러보았다. 전각의 기둥마다 노란 리본들이.....
덩굴과 풀을 제거하고 뿌려 놓은 꽃씨와 수세미씨...과연 어찌될까...
아침..떠나는 날 아침은 가슴에 뿌듯한 기운이 없다.
간청재에 다닌 후로 가장 오랜 시간 머물렀다. 그래도 떠나는 날은 마찬가지다.
욕실 청소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하고...
집을 둘러보다 깜딱 놀랐다.
용가리가 살펴보다 처마에 붙은 벌집을 본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두 개가 아니다.
말벌집인 것 같은데 크기가 동전 크기 만한 것부터 아이 주먹 만한 것 까지 처마 사이사이에 모두 매달렸다.
창고 지붕 밑에도 매달렸다.
이런...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동전 만한 벌집을 막대기로 톡 떼버리고 싶었는데 용가리가 기겁을 하며 말린다.
어딘가에 있던 벌이 공격할 것이라고...
물론 벌이 무섭지만 그 쪼그만 곳에 큰 말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용가리는 벌이 어디에선가 달려 올 것이란다.
어쩔 도리가 없어 그냥 왔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2주 후에 다시 갔을 때 벌집이 더 커져 있으면 어쩌지...119를 불러야 하나...
벌집 퇴치 용구를 사야겠다. 옷도 사야 하나...
걱정에 걱정을 엄청 했지만 뭐 어쩌겠남...되는 대로 해야지...
그 일만 생각하면..... 이번에 일어난 그 어처구니 없는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핑 도는데 벌집 정도야...어찌 되겠지..뭐...
다음 주에는 인터넷으로 벌집 퇴치 용품과 모자 등을 사서 내려가야겠다.
다시 봐도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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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님이 주신 작은 씨앗은 박주가리일겁니다. ㅎㅎ
잘 키우세요. 감사나갑니다.
박주가리? 박의 일종인가요? 저는 수세미씨라고 들었는디...
어찌 되었든 싹이나 제대로 났는지 걱정이네요 ㅠㅠ
까만 건 수세미... 털달린 건 백하수오씨랍니다.
박주가리랑 혼동.
부처님 방석들이 너무 예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