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왔다.
지난주 목요일을 끝으로 쌀이 똑 떨어져 밥을 먹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못 먹었다'와 '안 먹었다'의 중간이다.
금요일 쌀을 주문하니 주말을 지나고 월요일 발송하여 화요일 도착한 것이다.
10킬로 쌀을 주문하면 석달 정도 먹는다.
10킬로 쌀을 세식구가 석달을 먹는다면 많이 먹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딸내미도 나를 닮아 그런지 밥은 참 안 먹는다.
아침은 주로 빵 한 조각이나 바나나 정도로 대충 입만 오물거리는 수준으로 먹고
오늘 저녁 뭐야? 라고 물어볼 때 '밥'이라고 대답하면 굉장히 실망한다.
주말 이틀은 당연히 밥은 안 먹고 다른 별식을 먹으려고 하고 또 그렇게 한다.
주로 주문해서 먹거나 아니면 사 와서 먹는다.
하얀 쌀밥을 한그릇씩 먹는 사람은 용가리뿐이다.
그런데 용가리도 매일 집에서 저녁을 먹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자연히 집안에 쌀이 있는지 없는지 약간 무심해지는 것이다.
나는 하루 세끼 꼭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먹어본 적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밥 먹는 것을 싫어했고 과자나 빵 떡 고구마...그냥 주워먹는 식으로 먹었다.
밥상에 무언가 차려 놓고 먹는 것보다 간단히 먹는 것을 좋아한다.
용가리는 이런 나의 식습관을 보고 무장공비 스타일이라고 한다. ㅎㅎ
뭐 어쨌든 떡 벌어지게 한 상 차려서 먹나 무장공비 스타일로 주섬주섬 닥치는대로 먹나
이제껏 사는데는 별 지장 없었으니 사람이 꼭 규칙적인 식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집에 쌀이 있는데도 다른 것을 먹을 때와 쌀이 없어서 다른 것을 먹을 때는 기가 막히게 안다.
생전 밥 먹자는 소리 안 하던 딸내미가 금요일 닭강정을 먹고 토요일 회, 일요일 햄버거를 먹자
월요일에는 김치찌개 끓여서 밥을 먹자고 한다.
아니...네 입에서 밥 먹자는 소리가 나오다니 놀랍구나!!
쌀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너 평소에 밥 먹기 그렇게 싫어하더니 잘 됐지 뭘 그러냐며..
또 평소 국수만 보면 달려드는 용가리를 위해 또 밥 싫어하는 딸내미를 위해 앞으로의 저녁 식단을 발표했다.
메밀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잔치국수, 수제비....이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저녁이라 했다.
용가리와 딸내미는 음...하더니 서로 자기는 좋다고 했다.
학교와 회사에서 점심에 밥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 그렇게 국수 해 달란다.....
사실 국수 해 먹으면 단촐하고 좋다.
설거지 그릇도 국수 삶는 냄비와 소쿠리, 그릇 세 개와 젓가락 세 개.
수제비의 경우 반죽을 위한 바가지 한 개가 더 추가된다.
남들은 국수에 고명을 얹느라 귀찮다고 하지만 우리집은 재료 본연의 맛을 좋아해서,
즉 밀가루 본연의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멸치국물과 국수만 있으면 된다.
위에 뭐 얹어 주면 싫어한다.
비빔국수의 경우 맘이 내켜서 달걀을 삶아 주면 아주 감지덕지한다.ㅎㅎ
메밀국수도 국수 적셔 먹는 장에 파 조금만 넣어주면 좋아한다....
기름기도 없고 도마도 쓰지 않고 국그릇, 반찬그릇 쓸 일이 없으니 이 얼마나 단촐하고 담백한가..
아..비빔국수의 경우 참기름이 좀 들어가기는 하지만 지지고 볶는 것에 비하면 새발에 피다.
용가리는 국수를 정말 좋아한다.
국수를 삶아 찬 물에 헹굴 때 거의 반은 먹어치운다.
국수 헹굴 때 먹는 맨 국수의 유혹은 참을 수가 없단다...
僧笑小時僧笑小
스님들이 국수를 보면 웃음이 난다 하여 국수를 '僧笑'라 부른다.
스님들이 국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국수가 적어지면 스님들의 웃음도 적어진다는 말이다.
우리 아빠도 국수를 엄청 좋아하셨다.
엄마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도 국수를 엄청 좋아하셨단다.
항상 엄마는 그랬다.
옛날에는 국수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아서 할아버지 국수 한 번 양껏 삶아드리지 못한 것이 늘 걸렸다고...
엄마는 국수를 잘 하셨다.
소면을 삶은 잔치국수나 비빔국수는 말할 것도 없고
팥국수 콩국수 칼국수...
한여름에도 밀가루 반죽하여 국수를 미느라 땀을 뻘뻘 흘리셨다.
지금은 생면도 팔아서 칼국수도 사 먹을 수 있지만,
아니 파는 것이 있었어도 밀어 만든 국수가 아니면 아빠는 드시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콩을 삶아 갈아 베보자기에 걸러 콩물을 내고 국수를 밀고...
지금 먹는 콩국처럼 걸죽하거나 거칠지 않고 아주 고운 콩물을 내셨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지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물론 나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봤기 때문에 안다.
콩국수를 뜨겁게 먹기도 했다.
한여름 뜨거운 콩국에 밀어 만든 국수를 넣어 땀을 흘리며 먹었다.
먹는데도 그런데 그것을 만든 엄마는.....
나 같으면 그렇게 만들고 나서는 맥주 한 캔 마시고 뻗었을 것이다.
겨울에는 팥칼국수를 많이 먹었다.
팥을 삶아 팥물을 내고 또 국수까지 밀어 만들어야했다.
나는 설탕을 넣어서 먹었는데 아빠는 설탕 넣어서 먹는다고 맨날 구박했다.
설탕 넣으면 팥칼국수 맛 버린다고 하시면서...
여름에는 잔치국수도 차가운 국물에 먹기도 했다.
멸치국물을 진하게 우려서 차갑게 식혀 국수를 말아 먹으면 참 맛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차가운 잔치국수는 참 손이 많이 가는 국수였다. 육수도 특별했고 고명도 조금 달랐다.
칼국수를 밀어 그것을 삶아 건져 닭고기를 넣어 비빔국수를 해 주시기도 했다.
닭을 삶아 식혀 닭고기를 모두 발라내어 잘게 찢고 칼국수를 밀어 삶아 건져 차게 식힌 후
채소와 닭고기를 넣고 비빔국수를 하면 정말 맛있었다.
열무김치와 동치미 국물, 나박김치를 이용한 국수말이도 참 맛있었다.
항상 육수를 따로 내어서 말아주시기 때문에 감칠맛과 시원한 맛이 환상이었다.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이가 시리도록 차갑게 먹어도 맛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 아무 생각 없이 맛있게 먹었지만 그 국수를 준비하는 엄마는 하루종일 걸리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땀과 수고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런데 아빠는 너무도 간단히 말했고 엄마는 너무도 당연하게 준비했다.
지금도 아무 생각 없이 오늘 국수나 해 먹자....하는 사람 보면 화가 난다.
그런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 아빠처럼...
물론 나는 예외다. 초간단 초간편 국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달걀지단, 호박볶음, 오이무침, 김치무침 등등 이런 것들은 내 국수에 범접할 수 없다.
나는 only 국수만을 지향한다. ㅎㅎㅎ
어제 메밀국수를 먹었으니 오늘은 비빔국수 차례인데 쌀이 왔으니 밥을 줄까 아님 그들의 소원대로 국수를 줄까?
'취중진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짜증난다 정말 2014/08/14 (0) | 2018.12.26 |
---|---|
살구 예찬 2014/07/02 (0) | 2018.12.26 |
찬란한 오월... 2014/05/21 (0) | 2018.12.26 |
술과 노동 2014/05/14 (0) | 2018.12.26 |
똥멍청이 2014/04/01 (0) | 2018.12.26 |
ㅎㅎㅎ 참 담백하게 살아요. 우리도 국수 무쟈게 냉면 무쟈게 좋아하는 이북 사람들예요.
겨울엔 김치말이 국수, 냉면...냉면은 겨울에만 먹는 건 줄 알았대요.
저는 별로. 우린 뜨건 멸치국수 아님 비빔 국수....울 아버진 생전에 설탕 국수 드셧어요.
옛날엔 설탕이 귀한 음식이어서인지 뜨건 멸치 국물에 양념간장과 설탕.
씻을 때 국수맛이 최고!
하루종일 국수, 수제비, 떡국 이런 것만 먹으라고 해도 좋대요 ㅎㅎ
전 면보다는 밥. ㅎㅎㅎ 사실 둘 다 좋아하는데요, 그래도 밥을 먹어야 끼니라는 생각은 합니다. 여기서야 파스타를 워낙 즐기는 가족들 덕분에 파스타와 고기가 주가 됩니다만...밥은 아무래도 반찬이 있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요. 일품요리가 주가 되다보니 이젠 거의 따지지 않아요. 애니도 면을 좋아해서 국수에 양념장만 섞어줘도 좋아합니다. 국물맛에 심취하지 않는지라 모든 국물은 그냥 버리기 때문에 이젠 그냥 그렇게 줍니다.
맞아요. 국수는 일품요리라서 간편해요. 국물맛에 심취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 생각되는데요^^
전 밥순이 떡순이 ㅎㅎ 파스타를 해도 저만 밥에 소스 얹어먹습니다.
그런데 메밀국수(모밀하고 어떻게 다르죠?)하고 냉면은 또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고보니 그냥 밀가루로만 한 국수나 빵을 안 좋아하는 거네요.
특히 수제비 으윽 최악~ 호박짜장수제비 으윽 ~ 입이 씁니다 :-(
메밀국수가 표준어입니다. 모밀국수는 사투리정도?
저는 떡도 엄청 좋아해요...빵은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그냥 맨빵 좋아해요 ㅎㅎ
근데 호박짜장수제비는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