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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스스로 잉여라 부르는 녀석들 2014/07/17

by jebi1009 2018. 12. 26.




딸아이가 같이 보자고 추천해 준 다큐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엄마 먼저 보면 안 된다고...꼭 시험 끝나면 같이 보자고 신신당부를 하여 시험 끝나고 함께 봤다.

스스로를 '잉여'라 부르는 호재(24), 하비(22), 현학(20), 휘(20)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려고 한다.
이들은 그래픽이나 연출 같은 자신들의 전공을 살려 학비를 벌지만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학비를 충당하기엔 턱 없이 모자라고,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기에 이들은 너무'잉여'스러웠다. (움직이지 않고 입이나 머리로만 하는 것, 또는 너무 게으름) 
그리하여 이들은 잉여스럽게 뒹굴대다가
어차피 모자라는, 학비로 쓰려던 돈을 가지고  1년 간 유럽을 여행할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유럽 호스텔의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잠자리를 제공 받고, 레스토랑의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식사를 제공 받는다.
일종의 물물 교환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모든 이동은 튼튼한 두 다리와 히치하이킹으로 해결한다.
이렇게 1년 간 유럽을 여행하다 마지막에는 런던으로 가서 차기 '비틀스'를 발굴해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 기록을 담은 영상을 다큐 영화로 상영한다.

이들은 계획을 더 확실히 실현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한다. 돌아올 곳을 없애버리자...뭐 이런...
비행기표를 사고 남은 네 명의 여행경비는 80만원.
기세 좋게 파리에 도착했지만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홍보영상에 대해 응하는 호스텔은 하나도 없고 배고픔과 추위는 심해지고...
그들은 추위를 피해 더 남쪽으로, 숙박시설이 더 많은 이탈리아까지 히치하이킹을 하며 무작정 걸어간다.
나침반에만 의존하던 그들은 도저히 안되겠다며 거의 남지 않은 돈을 쪼개서 지도를 산다.
로마에 도착하여 버려진 공터에서 야영을 하며 거지같이 생활하다 이제 이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즘에 로마의 한 호스텔로부터 홍보물 제작 제안이 들어온다. 이 동영상은 결국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이들은 유명세를 타게 되어 여기저기서 제안을 받는다.

여기서 딸아이와 말했다.
저들이 타겟을 잘 못 잡은 것이라고....
처음에 저들은 유럽의 한인숙박업소를 타겟으로 잡고 계속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인업소들은 그런 것에 별 관심 없고
또 연락이 오더라도 그냥 배고픈 아이들 햄버거나 한 끼 사 주고는 가버렸다.
나는 한인 업소에서는 저런 마인드를 공유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영화를 보면서 딸아이와 나는 계속 말했다.
'아이구..유럽애들한테 말해야지...한인숙박업자들은 저런거에 관심도 안 가질텐데..쯧쯧'
역시 우리가 예상한 대로 유럽 사람들은 이들의 동영상에 열광(?)했다.
영화에 자세히 소개되지는 않지만 잠시 보여주는 홍보영상을 보면 정말 반짝거리게 잘 만든 느낌이다.
변변한 촬영 도구도 없이 만들었는데 약간의 애니메이션을 넣어 편집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정말 훌륭하고 대단하다. 대단한 잉여들이다.

그들이 스스로 '별것 없다'고 평가하는 이 내용은 말 그대로 '별것 아닌 것'을 '대단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잠자고 먹는 것의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면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활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제 이들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뮤직비디오 제작. 여러 곳에서 의뢰가 들어오고 한 곳을 정했다.
그러나 호재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이제는 은퇴를 앞 둔 한 중년 밴드 '아르코'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주고 싶어한다. 두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시키면서 힘에 버겁고 결과물도 나오기 어렵게 생겼다.
남지 않은 경비, 며칠 남지 않은 여행일정...결국 '아르코'에게 완성할 수 없다는 메일을 보낸다.
아르코 멤버들은 이렇게 답장한다.
"우리 늙은이들에게 미안해하지 마라. 어차피 은퇴한 우리는 이제 오래된 선술집에 앉아 맥주나 마시며 스포츠 채널이나 돌려 볼 나이다.(중략) 스스로 잉여 인간이라 부르는 녀석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이 답장을 받고 시간적 경제적 문제로 찍지 못했던 등대를 찍기 위해 호재 혼자 등대가 있는 먼 남쪽 지역으로 간다.
아르코는 뮤직비디오에 자신이 노래를 만들 때 영감을 주었던 그 등대를 넣기 원했었다....
다른 맴버들에게 미안해서 혼자 출발한 호재. 하지만 나머지 잉여들도 몰래 호재 뒤를 따른다.
그리고 등대를 보며 서로 꽤 감동스러워한다...

결국 그들은 거의 계획을 모두 실현했다.
작은 캠코더로 영상을 찍으며 '이게 영화가 되겠어?'하며 자조하던 그들은 당당히 영화를 개봉했다.
앞으로도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그래도 말이다...
잉여들의 뻘짓(?)이 뻘짓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 딸아이 학교 미전에 다녀왔다. 내년이면 고3이니 이런 미전 준비도 마지막이다. 세월 빠르네....
  딸아이의 뻘짓에 응원을 보내주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잘 될까?


  꽃집 가기 귀찮아서 커다란 꿀벌 바람개비를 달아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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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퐁 2014/07/17 21:29

    꼭 찾아서 보고 싶은 영화네요.
    저도 물물? 노동교환 가끔 합니다.
    책상다리가 필요해서 빌더랑 치료비랑 맞바꾸기로 했고, 음식 배달업을 하는 사람과는 음식과 맞바꾸기로. 생선가게 주인과는 생선과 바꾸어서 일주일에 한번은 신선한 생선을 먹습니다. 미용사와는 머리 자르기랑 맞바꿨는데 아직 못 쓰고 일년 넘어가네요. 이제 새삼 머리 잘라달라기도 뭐하고 ㅎㅎ

    • huiya 2014/07/21 22:40

      저는 시간을 줍니다. 제가 줄수 있는 게 '시간'정도라서요. 그런데 잘 모르는 것 같아요

    • 제비 2014/07/25 16:26

      저도 팔 다리 움직이는 노동으로밖에 물물교환 할 것이 없네요..

  2. huiya 2014/07/21 22:41

    잉여가 중요하지요. 잉여가 없다면...끔찍한 세상일 듯 싶어요.
    저도 잉여인듯 일하면서 산다는...

    • 제비 2014/07/25 16:27

      저야말로 완벽한 잉여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