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메 이타루]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자본 중심의 썩지 않는 경제에서 거듭 발효하여 썩는 경제로.
빵의 발효와 부패 사이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적 삶을 찾다
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지 않았다.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기술혁신으로 인한 생산력의 향상이 노동력의 가치를 올려주지 못한다는 것,
노동기술은 없어지고 노동력이 그저 소모품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은 자본론을 정독하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얻어 듣고 알게 되었다.
‘노동자는 기계의 부속물로 전락하고, 부속물로서의 그에게는 오직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단조로우며 가장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기술만이 요구된다.’(공산당 선언)
얻어 들은 바로는 노동력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 음식(상품) 값을 내린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밝혀낸 자본주의의 구조라 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상품이 싸면 쌀수록 고마운 일이고 상품을 파는 사람 입장에서도 싸게 팔아야 잘 팔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상황이 돌고돌아 노동자의 목을 죈다. 마르크스는 그 점을 가르쳐준다.
‘이스트를 사용해 누구라도 쉽게 빵을 만들 수 있게 되면 빵 값이 싸지고 빵집 노동자는 싼 값에 계속 혹사당하게 된다. 또 공방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은 단순해져서 빵집 노동자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일해도 빵집 고유의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엄선한 재료를 사용해 정성과 수고를 들여 빵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대로 정당한 가격을 매겨야 한다. 제빵사는 본인의 기술을 살린 빵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정당하게 ‘비싼’가격에 빵을 팔기로 한다.
유서 깊은 시골 마을에서 그 주변에서 생산되는 원료를 가지고 천연균을 배양시켜 정성스럽게 빵을 굽는다.
빵집을 키우기 위한 이윤은 남기지 않고 일주일에 3일 동안만 가게 문을 열고 장사를 한다.
온라인을 통한 홍보와 그의 진정성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5년 이상 가게는 잘 운영되고 있다.
부패와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 돈,
결국 돈이 돈을 만드는 이 자본주의 구조에 대해 비판하는 저자의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이 저자가 구운 빵을 사 먹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보통 빵집보다 5배 정도 비싼 가격에 팔리는 빵...
작은 시골 마을에 위치한 이 가게의 비싼 빵은 전국 각지로 팔리고 사람들이 일부러 와서 사 가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너무도 당연하고 올바른 일이다.
그런데 결국 이 빵을 사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도시 노동자들은 아니지 않은가..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이 사 먹을 수 있는 빵이다.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판 노동자들은 이스트로 만든 전자동화 기계 공정으로 무장된 공장에서 생산되는 빵을 사 먹어야 한다.
다 같이 노력해서 작은 혁명을 일으키자...
나는 회의적이다. 아마도 그 작은 시골 마을 안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공동체마을 같은 것들이 생겨나 서로 물물교환 형식으로 자연에 순응하는, 순환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온라인을 통한 농산물 직거래장터나 자연 순환방식으로 고군분투하며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면 항상 의문이 생겼다.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정성들여 가꾸어서 제대로 된 가격을 받는 것.
물론 지당한 말이다.
또 그런 농부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농산물 가격이 너무 저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농산물 가격 깎지 말고 제대로 된 가격에 구입하자...
이런 취지의 온라인 장터 운영자들의 말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그렇게 훌륭하게 키운 농산물을 도시의 빈민 노동자들은 사 먹을 수가 없다.
농약을 쳤건 어떻건 대량 유통으로 싸게 흘러들어온 생산물을 사 먹을 수밖에 없다.
자본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생산 단가를 낮추고 노동 시간을 늘리고
노동자는 장시간 몸이 부서지게 일하고 낮은 임금을 받고 생산 단가를 낮춘 싸구려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이 삐걱거리는 고리의 흐름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 것일까...
세상은 많은 연결고리로 돌아가고 있다.
별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에는 다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학교가 문제일까 학원이 문제일까...
학생과 학부모는 더 이상 선생을 신뢰하지 않고
다른 루트를 통해 대학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학교 선생은 그렇고 그런 현실에서 그저 자신의 직장 생활에 모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모든 학생과 선생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노파심에 사족을 단다.)
딸아이는 미술 하는 고등학교에 다닌다.
난 아이가 그 학교를 가게 되어서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미술교육을 받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공부를 더 많은 시간 하게 되니 별 문제 없었다.
그런데 대학입시라는 것이 막상 다가오자 이 이상한 연결고리에 끌려서 돌아가고 있는 꼴을 보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 학교의 아이들은 학교의 실기 시간에 지도 받는 것 보다는 따로 비싼 수업료를 지급하는 화실에 나가는 것을 더 신뢰하는 것 같다. 방학 중 실기 수업에는 빠지고 다들 화실에 레슨 받으러 다닌다는 것이다. 꼬박꼬박 학교에 나가는 딸아이가 불안해하며 나에게 전한 말이다.
인문계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미술 시간이 부족해서 보충해 다닌다면 고생스럽지만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미술 공부 실컷 하려고 예술학교에 간 아이들이 왜 다른 루트를 통해 또 미술 수업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내가 내 돈 갖고 레슨 시킨다는데 뭐가 잘못이냐...당연히 돈. 돈이 빠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에게 배워서는 대학에 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 학생들을 대하는 선생님은 어떨까...
다른 일반 고등학교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육이 아니라 문제 풀이에 유능해야만, 또 많이 풀어야만 서로 간에 덜 불안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 갈 것도 없다. 태어나면서 영어 수학에 들이는 미친 사교육 열만 봐도 알지 않을까
그렇게 다들 살짝 맛이 가서 대학을 통과하더라도 그 다음 펼쳐지는 상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난 우리나라 교육의 모든 문제는 일차적으로 대학에 있다고 본다.
태어나면서 행해지는 모든 ‘교육’이라고 이름 붙은 것은 대학을 향한 기술연마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학은 대기업과 전문직을 향한 기술연마의 장이다.
결국 태어나면서 교육은 받지 못한 채 다음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기술만 배우다가 끝나는 것 같다.
오죽 열통이 터졌으면 전국의 대학을 모두 뺑뺑이 돌려 추첨해서 가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서울 사는 아이가 제주대학에 걸리면 제주대학에 가야 하도록 말이다.
원거리 학생을 위한 생활 지원금을 국가에서 충당해 주더라도 지금 대학입시에 들어가는 사회비용의 십분의 일도 안 들 것이다.
갑자기 빵집 이야기에서 왜 학교 문제로 넘어갔을까...
생각해 보면 모두 다 한 고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게 보면 작은 고리이지만 크게 보면 큰 고리로 연결되어 악순환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가 막히고 말도 안 되는 교육 현실을 보면
노동자의 노동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악순환이 다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무심한 듯 다 그렇지 뭐 하는 식으로 살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사는 사회가 너무 천박해서 숨이 막힐 것 같이 화가 나기도 한다.
뉴스에서 떠드는 매일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지만 어느 순간
자기네 집 아파트 이름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옆에 짓는 임대아파트 이름이 자기네 아파트 이름이랑 비슷하다고 구청에 단체로 뛰어가 소리 지르는 여자들을 보면서
강남에 십 몇 억 정도하는 아파트 가지고 외제차 한 대 굴리지 못하는 형편으로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자살하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는 모자이크 처리된 아줌마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렇게 천박하고 저질스러운 사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뚜껑이 확 열린다.
마르크스와 빵집과 학교와 구청 앞에서 소리 지르는 아줌마들...
이 기형적이고 천박한 순환의 고리를 누가 끊어야 할까..
모두 다 조금씩 노력해서? 어떤 노력? 누가 먼저?
나는 엄청 회의적이다.
노력한다고
배고프고 돈 없는데 백 원 주면 사 먹을 수 있는 빵 제끼고 훌륭한 빵이라고 오백 원 주고 사 먹을 수는 없고
의무감으로
천 원 주고 살 수 있는 달걀도 있는데 정성껏 친환경적으로 맛있게 키운 달걀이라고 오천 원 주고 사 먹기는 아깝고
확실히 대학 보내 준다는 학원 있는데 엎어져 잠만 자는 학교에서 알아서 대학 가라고 배짱부리기에도 좀 소심하고..
그렇다고 총칼 들고 위협할 수도 없지 않은가...
맛있고 정직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먹거리는 자본가의 입으로 들어가고
큰 소리치고 허울만 좋은 대학이라는 문도 자본가들의 자식들에게 더 활짝 열려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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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보면 고리는 더 견고하고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고리가 더 견고하고 단단해지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 같은 데...
대학교 강의에서 하는 말보다 출처를 알수없는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 훨씬 힘을 가진지 한참 되었지요. 학생들은 책을 읽지않아, 읽지 못해서 메디어 리테라시를 못하니 점점 더 휘둘리고 있지요.
일본도 그렇겠지요...
강릉에는 책에서 나오는 빵집을 하는 분이 있어요.
염소도 키워서 젖을 짜고 닭도 키워서 계란을 쓰고 우리밀과 누룩을 발효시켜 빵을 만들어요.
주문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쪄서 먹지요. 무게가 장난아닙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힘들지요.
가격, 값,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단순하기도 하지만 또 참으로 복잡하기도 하네요
세상은 원래 이래왔었지...라는 게 유일한 위로라면 위로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이 식지않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해요. 낙담하되 포기하지 않는 것, 희망이란 게 그렇지 않을까요?
그냥 한 번씩 뚜껑이 열려 부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