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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시다의 꿈?! 2015/02/18

by jebi1009 2018. 12. 26.

       



곡성 태안사에서 결재 중이신 스님도 뵈려고 음력 날짜를 꼽아 내려갔다.
태안사 들어가는 길은 운치있었고 스님과 함께 한 보성강 길은 물빛과 어우러져 매력적이었다.
오리의 이마(새도 이마라고 하나?)를 뜻하는 압록,
푸른 녹색을 띤 오리 이마 빛깔의 강물은 바라보는 내내 감탄스러웠다.


태안사에서 태어난 시인 조태일.
태안사 들머리에 조태일 시인 기념관이 있다.


[내가 아는 詩人 한 사람은]   조태일


세상엔 벽에 걸 만한
상상의 그림이나 사진들도 흔하겠지만
내가 아는 시인의 방 벽에는
춘하추동,
흑백으로 그린
녹두장군 초상화만 덜렁 걸려 있다


세셰의 난다긴다하는
예술가며 정치가며 사상가며
지 할아버지며 할머니며
지 아버지며 어머니
,
병아리 같은
지 귀여운 새끼들 얼굴도 흔하겠지만,


내가 아는 시인의 방 벽에는
우리나라 있어온 지 제일로 정 많은 사내
녹두장군의 당당한 얼굴만
더위도 추위도 잊은 채 덜렁 걸려 있다.


손가락 펴 헤아려보니 지금부터 80년 전,
농부로서 농부뿐만 아니라
나라와 백성에게 가장 충실해서
일어났다가 역적으로 몰려
전라도 피노리에서 붙들린 몸
,
우리나라 관헌과 왜군들의 합작으로
이젠 서울로 끌려가는
들것 위의 녹두장군,


하늘을 향해 부끄럼없이 틀어올린 상투며,
오른쪽 이마엔 별명보다 훨씬 큰 혹
,
무명저고리에 단정히 맨 옷고름
,
폭포처럼 몇 가닥 곧게 뻗은 수염
,
천리길을 몸 묶인 채 흔들리며
매섭고 그러나 이젠 자유스런 눈빛으로
산천초목을 끌어안은 녹두장군.


처음에는 아이들도 무섭다고 무섭다고
에미의 품안을 파고들었다지만
,
이젠 스스럼없이 친해져서
저 사람 우리 할아부지다
저 사람 우리 알아부지다
동네 꼬마들을 불러들여 자랑을 일삼는단다.


까짓것 희미한 자기 혈육 따져 무엇한다더냐
그 녹두장군을 자기네 집 조상으로 삼는단다
.
내가 잘 아는 시인 한 사람은,







돌아오는 길 곡성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림표에 붙은 화려한 이름. 문어짬뽕, 그 옆에 붙은 갑오징어짬뽕!
나는 보통 짜장면 보다는 짬뽕이라 망설임 없이 문어짬뽕.
그 화려한 비주얼에 감탄했고 맛에 감탄했고 싸 올 수 없어 안타까웠다.
11000 원 문어짬뽕 한 그릇이면 소주 3 병은 너끈히 마실 수 있으리라....




  문어와 갑오징어 밑에는 가리비와 소라 홍합이 가득~ 

간청재 가는 길에 실상사 앞 소풍에 들렀다.
108 개의 반야심경 서각을 하고 있는 항우아저씨에게
서각을 시작할 때 주문해 두었던 6,7 번 반야심경을 받았다.
하나는 너도님, 하나는 우리가....
나는 불자도 아니고 반야심경도 모르지만 그저 소장하게 된 것이 기쁘고 좋다.
일단 너무 예쁘니까...ㅎㅎ




반야심경 서각. 가로 세로 33센치...33은 불교적 의미가 담긴 숫자라고...



  항우아저씨 소풍에는 반들거리는 백만불짜리 마루를 비롯하여 예쁜 소품이 많다.

항우아저씨의 오랜 지기 선명이. 




이번에 들었던 선명이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간청재 옆 골짜기 스님께 새로 온 순돌이가 심심할까봐 함께 놀아주라고 선명이를 데려갔단다.
실상사에서 창원마을까지 차를 타고 데려 와서는 며칠 함께 지내라고 항우아저씨는 선명이를 놔두고 돌아갔는데
두시간 후 선명이가 소풍에 나타났단다.
세상에 그 먼 길을 어찌 돌아갔는지...
선명이는 17살이다. 저 짧은 다리로 노구를 이끌고 그 먼길을....
또 돌아가는 길은 어찌 알았을꼬...
선명이는 집에 와서 항우아저씨는 쳐다보지도 않고 들어가 하루 종일 잠만 잤단다.
그리고는 이틀이나 항우아저씨를 외면했단다. 그 좋아하는 어묵도 안 먹고..
자신을 버리고 왔다고 완전히 삐졌단다.
항우아저씨가 달래고 빌고...그래서 다시 관계 회복.
이 이야기를 태안사에서 함께 듣던 스님이
'그렇게 똑똑하고 친하면 주인이 버리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지..안그래? ㅎㅎ'
'아이고 스님  그러면 제가 선명이랑 겸상해서 밥 먹어야죠...'





아침에 일어나니 날은 맑았지만 바람이 분다.
바람 부는 날에는 아무리 햇살이 눈부셔도 을씨년스럽다.
전 날 조금 과하게 마신 탓도 있고 느즈막히 눈 떠서 뒹굴거리는데
'놀면 뭐하냐 다리미 빌리러 가자' 너도님이 말한다.
집 뒤 쪽으로 난 문들은 덧문을 달지 않았기 때문에 커튼을 하려고 했다.
광목으로 간단히 만들면 된다는 너도님 말에 광장시장에서 광목을 끊어다 놓았었다.
재봉틀도 있었지만 소소한 준비를 해 오지 않아 본격적인 커튼 만들기에는 열악했다.
너도님 말에 의하면 일단 가장 큰 문제가 다리미였다.
반드시 다리미가 있어야 시접을 접고 바느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에 하지 뭐..했지만 필 받은 너도님은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가까운 둥이네로 눈꼽만 떼고 파자마 입은 채로 다리미를 빌리러 갔다.
목적도 달성하고 커피도 대접받고^^


이제 간청재는 작은 봉재공장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너도님은 미싱사 언니, 나는 그 미싱사 언니를 부러워하는 시다.
미싱사 언니의 가르침으로 실밥도 떼고 시접 선을 다리고...
마침 마천농협에서 사다 놓은 크림빵이 있어 간식으로 먹었다.
보름달은 아니지만 크림빵 간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먹었다.
크림빵을 먹으며 다짐했다. 나도 열심히 해서 얼른 저 미싱 앞에 앉아야쥐~~










  너도 미싱사 언니 솜씨에 감탄!!
  커튼봉은 항우아저씨가 챙겨주신 대나무를 다듬어 걸었다.
광목과 대나무는 느낌, 색깔, 재질..모든 면에서 참 잘 어울렸다. 

저녁에는 설님이 가져오신 귀한 서대를 숯불에 구웠다.
언젠가는 아궁이 앞에서 생선을 구워 닭다리 뜯어 먹듯이 생선을 손으로 먹으리라...’
이 다짐을 드디어 실천했다.
살짝 말린 서대를 구워 먹으니 그 담백한 맛에 홀딱 반하겠다.
당연히 소주가 빠질 수 없으니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모여 소주 홀짝이며 생선 뜯는 맛이 기가 막힌다.


다음에는 다른 종류의 생선에도 도전해 봐야겠다.




이제 설 지나면 3월이다.
고추, 오이, 토마토, 부추, 호박, 청경채, 양배추, 들깨, 상추....
청경채와 양배추는 둥이 아빠의 추천이다.
토종 부추씨도 조금 나눠 주신다 하니 감사할 따름이다.
겨우내 거의 라면으로 채운 간청재의 밥상이 이제 따뜻한 봄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풍성한 먹거리로 가득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믿음으로만 된다면 말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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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iya 2015/02/18 18:33

    광목커텐 멋있어요!
    저도 광목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많아요.

    • 제비 2015/02/27 16:55

      더 발전하게 되면 여름에는 모시 커튼을....

  2. chippy 2015/02/20 05:58

    전 미싱사 시다도 부러워요. ㅎ...중학교 가사시간에 미싱 바늘에 실 꿰는 순서가 시험에 늘 나왔잖아요. 도무지 이해가 안되어서...그때부터 재봉틀과 바느질은 질색하게 되었답니다. 그냥 감탄하며 보는 것을 더 좋아해요. 새해에는 간청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시겠네요. ^^

    • 제비 2015/02/27 16:56

      저도 그랬어요
      만들어 놓은 기계도 못 쓰는데 이 기계를 만든 사람은 얼마나 천재일까..ㅎㅎ

  3. 너도바람 2015/02/26 12:33

    손가락으로라도 새집 같은 머리 좀 쓱쓱 빗을 시간을 줬어야지...
    담부터 사진 찍을땐 연출과 편집 부탁..ㅠㅠ
    자고 일어난 내 머리가 저렇구나.

    • 제비 2015/02/27 16:57

      리얼리티!
      자기 머리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 ㅋ

  4. 美의 女神 2015/02/27 16:18

    햐.... 너도님 커텐은 디자이너 저리 가랍니당....조각보 스타일의 광목 커텐. 멋집니다.
    걍 미싱사 도전하지 마시고 시다하셔요. ^^
    그나저나 언제쯤 간청재 알현할려나....매향을 맡으러 가얄텐데...

    • 제비 2015/02/27 16:58

      맞아요..말 그대로 시다의 꿈이랍니다 ㅎ

  5. 길손 2015/12/02 17:20

    먼 곳에 있는 선배에게 문어짬뽕 사진을 보내주고 싶은데 검색해도 마땅한 게 없어 여기서 퍼갔습니다.
    경우없이 맘대로 가져가고, 고하기만 하면 되는 건지요.
    말만 이렇게 하고는 돌아서려는 눈에 들어온 갑오징어 짬뽕까지 함께..
    서대구이도 첩첩한 앞산도 모두모두 오래 마음에 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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