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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봄비, 꽃비 2015/04/15

by jebi1009 2018. 12. 27.

개울가 큰 돌 위에 솥뚜껑 걸어 놓고
흰가루 참기름에 꽃전부쳐 집에 드니
가득한 봄볕 향기가 뱃속까지 스민다.

송도 명기 황진이의 무덤가에 찾아가 술 한 잔 올리던 나주 선비 임백호의 멋진 시다.
비록 개울가 큰 돌 위에 솥두껑은 걸지 못했지만
간청재 툇마루에서 여신님이 건네고 간 화전을 부쳤다.
빗소리를 들으며 부치는 화전은 봄볕 보다 더 진한 봄의 향기를 온 몸에 스미게 한다.





봄이 되니 움직임이 넓어진다.
꼼지락거리며 간청재 마당과 아궁이 앞에서만 놀던 것이 이제는 번잡하게 싸돌아 다니게 되었다.
대단한 나들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봄에, 꽃비가 내리기 전에 꽃구경도 하였고 오랜만에 뱀사골 공기도 쐬었다.


인물 사진임.  너도님과 설님을 찍은 것임.


4-5 년 전에 백전 꽃길이 사람도 없고 한적하여 꽃구경하기 좋았었다.
               지금은 꽃축제가 자리 잡으면서 한적한 꽃구경은 물 건너갔다.
               꽃을 보면 술이 빠질 수 없지...병곡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서너 통 샀다.




서울 가는 길, 생초로 나가려고 가는 길에 복숭아꽃이 비탈까지 지천이다.
하얀 진돗개가 어찌나 점잖던지 사진 한 장 찍으려 하니 슬그머니 자리를 비킨다.




               간청재 위치를 말 할 때 '재실 위에 있는 새로 지은 집'이라고 한다.
               간청재 가는 길에 있는 마을 끝 재실 앞에 처진 올벚나무가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간청재에 짧은 한 때 사람들이 북적이기도 했다.
일요일 오후 도시로 떠나는 팀과 한가하게 마실 나온 둥이네가 교차하면서 말이다.
둥이네가 찾아와 맥주 한 잔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나도 정말 마을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둥이들도 4월부터 급식비를 낸단다. 바로 옆 도 경계만 살짝 넘으면 무상급식이다.
산내초등학교로 옮길까도 생각 중이라는데...둥이 엄마는 무상급식 1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단다.
별 그지 같은 이상한 사람 한 놈 때문에 이게 뭔...
둥이들 키우는 문제로 이런 저런 고민도 많고 살짝 흔들릴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자라면서 현명해지고 강해지고 유연해진다고 확신한다.
어른들은 그 반대지만 말이다...나이가 들면서 멍청해지고 나약해지고 고집불통으로 변하니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훌륭한 엄마 아빠를 가졌으니 난 둥이들 걱정은 안 한다.
아주 반짝거리며 신중한 아이들로 커 갈 것이라고 믿는다.
내년 이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 찹쌀로 직접 술을 빚어 둥이네를 청해야겠다.

제법 사람들 발자국이 많았던 주말이 지나고 용가리와 둘만 남은 간청재에는 부슬부슬 봄비가 예쁘게 내린다.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음악을 좀 듣다가 비옷을 입고 나섰다.
고사리밭으로 가니 이틀 사이에 제법 고사리가 또 올라왔다.
한 바구니 가득 채우고 내려오다 용가리가 어제 하루 종일 애써 길을 터 놓은 뒤쪽 땅으로 갔다.
작년 봄에 잡풀 속에서 살아 남은 나무들 격려하며 주변 풀도 뽑아주고 표식도 해 놨는데
어느새 일 년 만에 정글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 험한 곳에서 튼실하게 자란 나무를 보고 정말 감격했다.
산에서 옮겨 심은 취가 다 말라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마당에서 올라온 것을 보고 감격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잡초인 줄 알고 홀랑 뽑을 뻔 했지만 말이다..ㅠㅠ
어설프게 뿌려 놓은 씨앗에서 싹이 나는 것을 보고 감격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잡초들은 감격스럽지가 않을까 ㅠㅠ
비옷 입은 김에 또 잡초를 뽑았다......


옆 골짜기 스님께서 흔쾌히 잘라주신 마삭줄. 축대 밑에 돌아가며 심었다.

 

둥이네가 분양해 준 토종 부추. 다음에 내려올 때는 부추전을 먹을 수도 있겠다..ㅎㅎ

지난번 뿌려 놓은 상추. 너무 빽빽하게 뿌렸나보다....

시금치도 삐죽이 올라왔다.

열무도 예쁘게 올라왔다. 그런데 그 옆에 뿌린 근대는 왜 안 올라오는 것일까.... 

가을에 옮겨 심어 걱정했었던 나무. 가시만 앙상했었는데 이렇게 잎이 달린 것은 처음 본다.




이 험한 곳에서 앙상한 작대기 같은 몸으로 버텨 이렇게 튼실한 나무가 되었다. 기특하고 대견하다.


일요일, 꽃씨 뿌리랴, 풀 뽑으랴, 나물 캐랴 바빴지만 함양 장날이라 잠시 짬을 내어 가 봤더니 모종이 나왔다.
  몇 개 사려고 했지만 모종 파는 아주머니가 마천지역은 추워서 지금 심으면 죽을 수 있다며 5월에 와서
  사 가라고 하셨다. 4월에 다 해 놓고 5월에는 놀려고 했는데 아니구나...ㅠㅠ 


 조용히 빗소리를 들으며 시래기 삶은 것을 정리했고
꺾어 온 고사리를 삶았다.
삶은 시래기를 만져 본 것도 처음이다.
나는 시래기를 엄청나게 좋아하지만 항상 먹을 수 있게 조린된 것만 봤다.
고사리는 비가 와 솥을 걸 수 없어 냄비로 세 번을 삶았다.
스마트폰 검색 결과 특별히 몇 분을 삶아라..이런 것은 없고 만져 보아 물컹해질 때까지 삶으라고 했는데
물컹이면 얼만큼 물컹인가...그냥 대충 삶았다.
삶아서 찬물에 넣고 보니 너무 삶았나보다. 좀 물러진 것들이 많았다.
뭐 어때...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일인데 뭘..



  고사리를 삶아 찬 물에 담가 놓았다. 좀 물러진 것들이 많다ㅠㅠ 



  삶은 고사리를 서울에 가져와 베란다에 널었다. 집 안에 있는 구멍 뚫린 그릇은 모두 동원했다.


비 오는 날, 따끈하게 물을 받고 반신욕을 즐겼다.
그리고 생전 처음 화전을 만들었다.
전 날 번개 같이 왔다 간 여신님이 떨궈 주고 간 화전 반죽을 모양을 만들어 가며 빚었다.
그렇게 봄 비 오는 날,
간청재에서 화전 부쳐 막걸리 잔에 꽃잎 띄워 마시며 놀았다.



봄비는
왕벚나무 가지에 자꾸 입을 갖다 댄다
왕벚나무 가지 속에 숨은
꽃망울을 빨아내려고
                     -  봄비/ 안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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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iya 2015/04/15 23:10

    고사리가 아주 통통하고 먹음직 하네요...

    • 제비 2015/04/22 16:47

      제대로 삶았는지 자신이 없네요 ㅜ

  2. 美의 女神 2015/04/16 11:18

    예쁘ㅡ네요 화전. 막걸리라도 한 사발 나누고 왔어야 하는데.
    언제 함 날 잡자구요. ^^

    • 제비 2015/04/21 15:36

      여신님의 음식 솜씨야 세상이 다 아는 사실.
      막걸리가 술술 넘어가겠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