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가리 고등학교 친구들이 간청재에 다녀갔다.
작년 가을에 간청재에서 하룻밤 자고 갔었는데 그때는 용가리만 갔었다.
간청재 마당에서 삼겹살 굽고 술 한 잔 했던 것이 너무도 좋았던지 다시 오는 날을 기다리며
몇 달 전부터 날짜를 잡고 난리였다.
이번에는 일도 있고 해서 나도 함께 갔다.
잠은 마을에 있는 생태마을 팬션에서 자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간청재에 상주하는 것이 아니어서 누가 온다고 하면 날짜도 맞춰야 하고
내려가서 정리하고 올라올 때 청소하고 일이 좀 번거로운 것이 있다.
지난번 용가리 혼자 왔을 때도 나름 이것저것 단속(?)하느라 힘들었다고....
집안 문도 잘 닫아야 하고(벌레나 쥐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화장실 변기에 화장지 버리지 말아야 하고
불도 피워야 하고...
이번에도 잠자리에 이어 저녁도 어찌어찌 꼬셔서 팬션에서 고기 굽기를 유도했으나
우리집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러 온다고 딱 잘라 말하니 어쩌랴..ㅋㅋ
버스를 타고 오니 픽업 나가서 점심 먹이고 칠선계곡 데려다 주고 시장 보고 다시 픽업해서 데려오고...
내가 간청재 다닌 후로 두 번째 마천석 불판이 등장했다.
용가리와 다닐 때는 사실 귀찮아서 거의 고기 굽는 것은 하지 않는다.
채소 씻고 김치 썰고 소주 맥주 큰 물통에 담가 놓고...대충 세팅을 마쳤다.
고기 굽고 술잔이 돌아가고...50먹은 아저씨들이 참 귀엽게도 논다 ㅎㅎㅎ
여기 오느라 설레서 잠을 설쳤다느니
친구들이랑 버스에서 먹으려고 계란 삶다가 늦어서 뛰었다느니...게다가 유정란 삶았다고 자랑이다.
학교 다닐 때 착한 일도 많이 했다며 명동에서 일일찻집 열어 대박난 수익금으로 양로원 방문했단다.
알고 보면 착한 아이들이라고..ㅎ
나도 아낌 없이 술을 내어 주었다.
버섯술, 겨우살이술, 약초술, 증류주...
즐거워 하는 사람들과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한 잔 하며 놀았다.
'호텔 캘리포니아'와 들국화 엘피를 틀어주니 너무 좋아한다.
깜깜한 밤길에 작은 라이트 하나 켜고 줄 맞춰 군가를 부르며 숙소로 돌아갔다.
사나이 붉은피 어쩌고....
용가리 말이 한 명은 6방이고, 한 명은 18방, 나머지 둘은 병역특례로 군대에 가지 않았단다..ㅋ
숙소에서 마련한 푸짐한 아침을 먹고 용가리 호출...
여기 저기 다니고 점심 먹이고 버스 태워 보내고 오니 오후 두 시가 넘었다.
간청재 다닌 후로 이렇게 오랜 시간 혼자 있어본 적은 처음이다.
환한 낮이었지만 집에 혼자 있으니 좀 막막했다.
풀을 뽑고 고사리를 꺾고 땔나무 정리하고...
지나가는 동네 분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면 난감했다.
원래 이런 대민 업무는 용가리 담당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가고나자 용가리도 나도 뻗어버렸다.
간청재 마당에서 술 마시며 별을 보며 친구들이 그런다.
강남 한 복판에서 고3 학부형이 그것도 중간 고사 기간에 이렇게 다녀도 되는 것이냐며 대단하단다.
게다가 아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달랑 한 명인데 이래도 되는 것이냐며...
제가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요 뭘...했더니
말은 다 그렇게 해도 진짜 이러는 사람들은 너네밖에 없을 것이란다.
그들은 달리는 기차에서 계속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더 가열차게 달려야 그 기차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그래서 기차에서 뛰어내린 우리를 자신들의 로망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 로망일지 몰라도 우리는 그저 또 다른 우리의 삶일 뿐이다.
우리가 간청재에 이사하고 다시 그들이 우리를 찾을 때는
너무 많은 기대를 들고 오기 보다는 격려를 들고 찾아 주었으면 한다.
고사리 대박! 이틀 후에 이만큼을 또 꺾었다. 꺾은 후에 또 이만큼씩 올라온 고사리를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고사리 꺾으면서 뱀을 봤다. 소리가 나기에 흘끔 봤더니 뱀이 스르륵 꼬리를 보이며 숨는다..헉!!
너무 놀래서 고사리 바구니 던질 뻔 했다. 뱀 지나간 쪽에 통통한 고사리가 있었는데 손이 뻗어지지 않았다.ㅠ
양이 제법 많아 솥을 걸고 삶았다. 더 신기한 것은 마당에 널었더니 하루만에 정말 바싹 말랐다는 것이다.
서울 베란다에서는 고사리 비린내를 맡으며 며칠 말려야 한다.
고사리를 꺾고, 삶고, 말리는 것을 다 완수하여서 가져왔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용가리 없을 때 지나가시던 할머니가 풀을 뽑던 나를 불러 건네 주신 더덕이다.
심어 놓으면 잘 자랄 것이라고...꽃 피면 향도 좋고..하시면서 자꾸 꺼내신다.
이렇게 힘들게 캐셔서 주시면 어쩌냐고 했더니 힘들게 캤으니까 나눠 줘야지..하신다.
정말 감동이었다. 나는 드릴 것이 없어 비타500 한 병만 드렸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요즘 산에 정말 열심히 다니신다. 순도 따고 더덕 도라지도 캐신단다.
하루 칠십리씩을 매일 다닌다는 할아버지도 계셨다.
(용가리가 없으니 사람들이 더 많이 왔다 ㅠㅠ)
나무 밑에 심으면 좋다 하시기에 어설프지만 머리 굴려가며 어찌어찌 심었다.
물도 듬뿍 주었는데 할머니 손 생각해서라도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정신 없는 와중에 둥이네가 들러 양배추 모종을 주고 갔다.
들어와서 시원한 맥주라도 마시고 가면 좋았을 것을 우리가 경황이 없어 그냥 보냈다.
다음을 기약하며...
양배추 모종을 처음 봐서 '어머 양배추가 하얀 색이 아니네' 했더니
'나보다 더 모르는 사람 여기 있네'하면서 둥이 엄마가 좋아했다.
양배추가 겉에는 파랗고 안에 하얀것, 즉 마트에서 보던 양배추가 들어 있단다. ㅎㅎ
생각해 보니 모종이 하얀 것이 있을리가...나도 참 멍충하다...
용가리 작품. 아직 미완성.
길가에 바로 접해 있어 너무 휑하고 경계도 없고 해서 살짝 돌담...이라기 보다는 돌을 좀 놨다.
윗단에 잔뜩 쌓여 있는 마천석을 수레로 옮겨와서 한 것이기 때문에 시간도 엄청 걸렸고 삭신이 쑤셨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해서 담을 완성한다는데 과연 마무리가 될까? 매우 의심이 든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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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 쉬어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참보기 좋아요.
사실 저와 아내도 애들만 학교졸업하고 독립시키면 하동에 들어갈려고
조그만 땅까지 준비해 둿는데 과연 그때가 되면 실행이 될까하는 의문은
항상가지고 있어요.
그런면에서 보면 님은 다른 분들의 로망이시니 항상 좋은 모습 바랍니다.
하동이면 그리 멀지 않으니 조만간 왕래(?)할 수 있는 날이 오겠네요 ㅎㅎ
제비님, 고사리와 더덕 사진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뱀 따위는 무섭지도 않습니다! 라는 허세가 나오고 맙니다.
고사리 꺾는 것 완전 좋아합니다.
동네는 물론, 고창, 지리산, 제주도까지 간 적 있어요.
언제나 뒷심 부족, 집에 갖고 오면 고사리가 '짐'이 될까 봐 친구 최박사한테 몰아줘버렸는데...
제비님 '철 드는 것' 보면...ㅋㅋ 저 같은 사람도 희망을 가집니다.
저도 언젠가는 고사리 꺾어서 삶고 말린 사진을 찍을 날 오겠지요.
간청재 소식, 고맙게 잘 보고 읽고 갑니다.
하이하버님께 '철 들었다'는 아니고 '들어간다'고 칭찬 받으니 기분 좋네요^^
언제 4월 오시면 고사리 꺾어서 삶고 하루 만에 바싹 말려서 담아 드릴게요~
고사리를 꺾으러 태안도 갔었어요. 고사리는 금방 세서 산밑에서 솥걸고 데쳐야 해요.
이제 산사람, 농부....ㅎㅎ 즐거워 보여요.
고사리, 두릅, 머위꽃으로 장아찌도 담더라구요. 일본애들은요.
이번에는 잘 몰라서 고사리를 너무 흐물거리게 삶았어요.
내년에는 적당히 잘 삶도록 더 연구해 봐야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