녯 사람 풍류(風流)를 미칠가 못 미칠까.
천지간(天地間) 남자(男子) 몸이 날 만한 이 하건마는,
산림(山林)에 뭇쳐 이셔 지락(至樂)을 마랄 것가.
수간모옥(數間茅屋)을 벽계수(碧溪水) 앏픠 두고
송죽(松竹) 울울리(鬱鬱裏)예 풍월주인(風月主人)되여셔라.
엊그제 겨을 지나 새 봄이 도라오니
도화행화(桃花杏花)는 석양리(夕陽裏)예 퓌여 잇고,
녹양방초(綠楊芳草)는 세우중(細雨中)에 프르도다.
칼로 말아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
조화신공(造化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계워 소리마다 교태(嬌態)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興)이에 다를소냐.
시비(柴扉)예 거러 보고, 정자(亭子)애 안자 보니,
소요음영(逍遙吟詠)하야, 산일(山日)이 적적(寂寂)한데,
한중진미(閑中眞味)를 알 니 업시 호재로다.
불우헌 정극인 - 상춘곡(賞春曲) 중에서
간청재 구들방에서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일어났나? '
'네 그럼요..(일어나기는 눈꼽도 못 떼고 놀래서 전화 받았으면서)'
'선암사 매화 보러 가려나?'
스님의 전화였다.
잠이 덜 깨 놀랬지만 이게 웬 떡이냐...
부랴부랴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선암사 매화는 스님과 함께 가려고 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나 그 때마다 이래 저래 가지 못했었다.
선암사 스님께서 매화 보러 오라고 여러 번 스님께 청하시고 또 스님도 가시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그리 되었다.
이번에는 스님과 동행하시는 분이 스님을 모시고 선암사로 가는데 우리가 운 좋게 끼게 되었다.
스님을 모시는 분이 '스님 팬클럽 전국구'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ㅎㅎ
우리는 '아..연사모 회원이시구나..'하며 받았다. 시원시원하고 멋진 분이셨다.
선암사 스님 덕분에 호사스러운 선암사에서의 한 때를 만끽했다.
선암사 스님께서 머무시는 방으로 들어가 꽃차를 대접 받았다.
매화차와 목련차
방 문을 활짝 열어 놓으니 바람에 들어오는 꽃향 때문에 감기로 빌빌대던 내 코가 확 뚫렸다.
꽃향이 진동하는 봄바람과 햇살 받은 꽃과 잎들....온 몸의 감각들이 다 호강이다..
차를 마시는데 젊은 스님이 물을 한 통 가져 오셨다.
저 산꼭대기 무슨 암자 터에서 길어 온 물이라며 선암사 스님께 일부러 드리러 온 것이다.
젊은 스님은 스님이 가져오신 물처럼 어찌나 맑고 선하게 생기셨는지...
그리고 어찌나 스님께 공손하신지...
선암사 스님은 돌아가려던 젊은 스님을 불러 연관스님께 인사를 시키셨다.
젊은 스님은 삼배 하겠습니다 하시더니 온 몸으로 존경을 나타내시며 삼배하셨다.
아...저렇게 삼배를 하는구나..
같이 차 한 잔 하라는 말씀에 젊은 스님은 어찌나 공손히 무릎을 꿇고 그 자세를 유지하시는지 나도 무릎을 꿇어야 하나 내가 다 송구스러웠다.
나는 차 맛, 물 맛 이런 거 잘 모르는데 젊은 스님이 가져오신 물은 정말 맛있었다.
어쩌다 스님께 인사 드리러 오는 수행 중이신 젊은 스님을 뵈면 그 얼굴이 정말 맑다.
그런 수행 중이신 스님들을 뵈면 내 몸이 다 정화되는 것 같다.
부처님을 마음에 품고 수행하면 저런 얼굴이 되는가...
차와 물을 잔뜩 마시니 해우소가 간절...선암사 스님 처소 뒤편에 있는 해우소.
선암사 매화길에는 상춘객들이 가득이다.
수백년 된 고목에도 꽃이 피었다. 해걸이를 하느라 작년 보다는 꽃이 덜 피었단다.
하지만 스님은 꽃이 성글게 핀 것이 더 보기 좋다고....
우직한 나무 기둥이 처마 밑에 누워 있다. 이 작은 방이 스님들 결재하시는 선방이다.
예쁜 돌확을 가진 작은 정원을 앞에 둔 방이다. 특별히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이 작은 선방을 어찌나 좋아하시던지...한참을 이 방에서 머무르셨다.
나야 글 볼 줄 모르는 까막눈이지만 추사의 글이라 하여 담았다.
꽃살 문이 예뻐서....
하얀 동백...난 처음 봤다.
매화, 동백(이제 동백은 없고 다 춘백이라고), 목련, 산수유...눈 호강을 실컷하고 선암사를 나왔다.
선암사 스님은 가을에도 좋으니 꼭 다시 오라고 하신다.
동행하신 분이 돌아가는 길 곡성 태안사로 가는 길이 너무 좋으니 그 길로 가자 하신다.
지난번 태안사 갔을 때 봤던 압록, 보성강 길이다.
가는 길(나는 길치라서 어디라고 확실히 말 할 수는 없지만) 길 가와 산비탈이 온통 매화밭이다.
게다가 해가 기울고 있으니 그 빛을 받은 꽃은 환상이다.
감탄사가 아니 나올 수 없다.
꽃을 보고 어째서 외로운 늑대 소리를 내느냐는 스님의 말씀에 우리는 모두 목청껏 늑대 소리를 냈다. ㅎㅎㅎ
선암사 호강에 이어 이것은 또 무슨 복이냐!!
가는 길에 지나친 월등(달이 떠오르는 동네)이 복숭아가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것도 알았고
맛있는 농장 이름도 적어놨다. 난 복숭아 무지 좋아한다.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물빛 바라보며 맥주 한 잔...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은 차에 모든 것을 완비하고 다니신다.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긴 맥주....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 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 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쫄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꽃이 지면 서로 울던
실 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 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 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이상하게 이 노래가 돌아오는 길 계속 입에서 맴돈다.
왜그럴까......
연분홍 치마가 봄 바람에 휘날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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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매화 구경 잘 했어요.
저도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입에 붙었네요. ^^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면 환상적이겠는데요
기대할게요^^
저많은 상춘객 속에 섞이지 않고 호젓하게
매화를 바라 볼 수있는 것도
복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황송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