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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상추, 열무, 시금치, 근대 2015/04/03

by jebi1009 2018. 12. 26.


       

함양 장날, 내려가며 장에 들렀다.
아직 모종은 나오지 않았다.
씨앗을 심어야 할까 어쩔까...무엇을 심어야 하나...갈팡질팡 하다 결국 먹을 것만 사왔다.
자반 고등어 한 손, 낙지 만 원어치, 표고버섯 한 바구니, 손두부 한 모
간청재에서의 저녁 술 안주..
낙지 여섯 마리를 어쩔까 고민하다 그냥 불에 구워 먹기로 했다.
아궁이 앞에서 불 피우며 먹는 재미가 쏠쏠해서 아무거나 그냥 구워 먹는다.
석쇠에 그냥 구우려다가 낙지호롱이 생각났다.
낙지호롱이 별거냐...나무젓가락에 끼워 돌돌 말아 구우면 낙지호롱이지..
낙지 손질은 스마트폰 검색이 시키는 대로 머리를 뒤집어 내장을 꺼내고 밀가루로 조물조물 씻었다.
나무젓가락에 머리를 끼우고 돌돌 마니 제법 그럴싸하다.
그냥 구워서 초고추장 찍어먹을랬더니 '양념은 안 발라?' 용가리가 한 마디 한다.
먹어 본 가락은 있어가지고...
'간장 양념? 고추장 양념?'
'간장 반, 양념 반'
'한 대 맞는다...양념 만으로도 황송해야지 어디서 두 가지를..'
그냥 있는 대로 고추장에 매실액, 마늘, 참기름 대충 섞어서 가져왔다.
일단 초벌 구이를 한 번 하고 양념을 발라 한 번 더 구웠다.
냄새가 죽여준다~
이거 할 만 한데?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하자 차가운 소주 한 병이 구색을 맞춘다.
한 손엔 낙지, 한 손엔 소주...이 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ㅎㅎ


  낙지를 잘 씻어서 돌돌 감았다.




  일단 초벌 구이를 했다. 요 상태로 먹어도 맛있을 듯...


  냄새가 끝내주는 낙지호롱 ㅋㅋ


선암사 가기 전 잠깐 오셨던 스님이 앞 마당에 텃밭 만든 것을 보시고는 저래가지고는 안 된다 하셨다.
마사토가 깔린 땅이고 농사도 안 했던 곳이라 땅을 아주 깊게 파서 뒤집어 엎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두둑도 넓고 더 높게 해야 한다고....
우리는 대충 주변 흙을 긁어서 밭 모양만 만들어 놓고 퇴비만 섞어 주었는데..
땅을 다시 파서 만들기로 했다.
일단 마사토가 아까워서 잘 긁어 수돗가 앞으로 깔고...
(얼떨결에 마사토 한 차를 붓게 되었는데 마사토가 참 좋은 것 같다. 마당에 쓰기로는 말이다.
비가 와도 질척이지 않고 오히려 돌을 깐 곳 보다 풀이 더 안 올라오는 것 같다.)
돈 주고 마사토 깔고 다시 땅 파서 뒤집어 엎고...참 뭐 하는 짓인지...
힘들기로 친다면 땅 파는 삽질을 따라갈 일이 별로 없다.
곡괭이(?,) 쇠스랑, 삽..으로 작업을 하는데 삽이 더 필요했다.
그냥 대충 할 것인가 삽을 사러 갈 것인가....몇 번 미루다.. 이러다 날 새겠다 삽 두 개로 빨리 하자...
일 하는 복장 그대로 장화 신고 마천 읍내로 삽을 사러 갔다.
삽 하나 사고 옆 농협에서 스크루바와 수박바 하나 씩을 사서 입에 물었다.
태어나서 제일 맛있는 아이스케키...일 하다가 하나 씩 먹어 줘야겠다.
아이스케키 덕분에 다시 심기일전하여 삽질.
퇴비 한 자루를 다시 섞었다. 두둑 두 개를 만들고는 뻗어 버렸다.





해가 기울었다.
인월장에서 사 온 씨앗을 심어야 한다.
함양장에서 망설이다 사지 못했는데 지금 다들 씨 뿌린다 하기에 우리도 인월 종묘사에서 씨앗을 샀다.
다행히도 종묘사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이런 저런 말씀을 해 주셨다.
모종은 조금 늦게 심어도 된다 하셨고 씨앗을 뿌려도 잘 되는 것들을 추천해 주셨다.
상추, 열무, 근대, 시금치...
감자를 물어보니 지금 장에 씨감자 나왔다고 하신다.
그러나 심지는 말라고...인월장에서 한 상자 사면 실컷 먹는다고..
난 고구마, 감자, 옥수수 엄청 무지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좀 참으려 한다.
멧돼지와 고라니들 때문이다. 특히 멧돼지는 한 번 꼬이면 계속 온다는데...
작년 옥수수도 어떤 아이가 먹었는지 반은 먹어버렸다.
감자 고구마 같은 것들도 다 파 먹는단다.
집에 상주하지 않으니 그 아이들이 더 자유롭게 올 것 같다 ㅠㅠ
감자 고구마 옥수수는 내년을 기약하자...



  열무씨앗이다. 색깔이 너무도 인공적이어서 깜딱 놀랐다. 공장에서나 나올 법한 색깔이다. 천연 열무 맞나?
  열무 이름이 '춘향이 열무'인데...



              뒷마당 축대 밑도 풀 뽑고 싹 정리했다. 일을 하다 보니 풀 뽑는 길이 어찌나 길던지...
              보기에는 금방 할 것 같은데 엄청나게 긴 길이었다.
              너도님 이제 마음껏 꽃씨를 뿌리셔요~~~



간청재 귀염둥이 매화가 피었다. 저리 작은 나무에서도 저렇게 탐스러운 꽃을 피우다니....
              마당에 내려 서면 매향이 진하게 전해진다. 기특하여라... 


       
인월장에서 씨앗 사고 어슬렁거리는데
'아이고 어제 함양장에서 봤는데 오늘 인월장에서 또 보네'


돌아 보니 두부 파는 아저씨다. 아저씨가 하도 크게 말해서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나쁜 짓 하지 말고 다녀야겠다 ㅠㅠ

씨앗을 뿌리기 전에 봉지에 쓰여 있는 설명을 잘 읽어 보니 친절하게 다 알려 준다.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수확하고..10센치 정도 자라며 솎아 주어야 하고...
시금치는 봄에도 뿌리고 가을에도 뿌리는구나...작년 뿌리고 남은 것을 뿌렸다.
열무와 근대는 조금 깊게 두 세알 씩 넣어 주라고 하신 종묘사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조금 깊게 구멍을 파고 넣었다.
참! 아주머니가 한 번 심어 보라고 강낭콩 씨앗도 주셨다.
강낭콩은 덩굴이 타고 올라가니까 그런 곳에 심으라 하셔서 뒷마당 축대 밑에 심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봉선화 씨앗을 나눠주기에 장독대 옆에 봉선화도 심었다.
씨앗을 심고 호스로 물을 주니 마음이 어찌나 뿌듯한지...
서울로 올라 오는 날 비가 부슬부슬 내려 주니 더 좋았다.
그런데 일기예보를 보니 화요일까지 비가 온다는데
혹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씨앗이 떠 내려 가면 어쩌나 걱정이다 ㅠㅠ


               지난번 감탄했던 목기공방에 어름한(?) 간판이 걸렸다.
               간판도 없으니 사람들이 더 모르겠다고 들썩거렸던 우리들 말을 들으셨나?
               어쩜 저리 간판도 공방 아저씨처럼 순하게 생겼을까...



엊그제 올라 왔는데 빨리 내려 가 보고 싶다.
씨앗 뿌린 것 싹은 잘 틔웠나, 얼마나 자랐나 보고 싶기도 하고
서울에도 벌써 벚꽃이 피는데 백전 벚꽃길 꽃이 다 졌으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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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퐁 2015/04/03 20:11

    봄볕이 사진에서조차 느껴집니다.

    • 제비 2015/04/09 18:26

      계절 바뀌는 것 보면 참 신기해요..
      이제 곧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헉헉대며 풀을 뽑겠죠 ㅎㅎㅎ

  2. 美의 女神 2015/04/16 11:17

    ㅎㅎ 씨앗의 환상적인 형광색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초보 농민(?)의 하루가 더 초보인 우리에겐 재미도 있고 뭐 그래요....
    어느 봄날 함 갈게요.

    • 제비 2015/04/09 18:29

      아직 농민(?)이라는 말은 언감생심...

  3. 너도바람 2015/04/05 02:23

    새벽네 나무공방...에 주문 넣어야겠어요.
    얼치기의 지도 편달 고랑 만들기가 완전 헛수고...ㅠㅠ

    • 제비 2015/04/09 18:31

      그래도 너도님은 우리 대장

  4. chippy 2015/04/07 08:14

    밭농사 시작이군요. 여긴 오월 빅토리아 데이가 될 때까진 아무 것도 심지ㅡ않는 게 좋아요. 서리 맞을 수 있으므로. ㅎㅎㅎ

    • 제비 2015/04/09 18:32

      농사라고 하기엔 쫌 부끄럽네요 ㅋ

  5. 나무 2015/04/14 13:54

    어느새 간청재에 봄이 왔네요.
    저는 농사짓는 모습이 낯설은 1인입니다.ㅎㅎ

    • 제비 2015/04/15 23:08

      나무님 방가방가!
      잘 지내시죠? 언제 간청재에서 얼굴 한 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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