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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정말 그렇구나 2015/05/14

by jebi1009 2018. 12. 27.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윤사월 / 박목월



초여름 날씨에 툇마루와 누마루를 시원하게 물청소 하고
오랜만에 간청재 문을 활짝 열어 살랑이는 바람을 만끽했다.
아침에 일어나 집 안 마루를 보니 뿌옇게 흙먼지가 내려 앉은 것만 같았다.
어제 문을 열어 놨더니 흙먼지가 이렇게나 많이 들어왔나?
마루를 살짝 닦아 보니 노랗게 묻어 나온다.
이게 뭐지? 아...송화가루인가보다...
박목월의 윤사월이 한 몫했다.


송화 가루는 노란 색이라는 것, 다식을 만들어 먹는 다는 것을 어디선가 주워 듣고 아는 것이 전부였다.
송화가루 날릴 때 만든 천일염을 최고로 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툇마루와 집 구석구석 내려 앉은 노란 가루를 며칠 동안 경험하면서 음력 4월 송화가루 날리는 것을
몸으로 실컷 느끼고 왔다.

간청재에 다니면서 그냥 머리로 알던 것을 '정말 그렇구나' 감탄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참 많다.
눈빛과 달빛에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옛날 선비들의 말이 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아가들의 손을 왜 고사리 손이라 했는지 알게 되었고
앉은 자리에 풀도 나지 않을 독한 년은 정말 지독한 사람의 끝판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밥상 위에 얌전히 올라오는 쑥을 보고는 전혀 알 수 없는 '쑥대밭' 이라는 말도 온 몸으로 알게 되었다.
쑥대머리도 마찬가지다.
쑥에 점령당한 간청재 마당을 보면 쑥대밭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난다. 쑥의 진정한 모습!

풀과의 전면전을 시작해야 할 시기다.
앞으로 몇 달 동안 무릎과 손목과 손톱을 혹사하면서 마당을 기어다녀야 할 것이다.
물론 마당에 돌을 깔기 전 상황을 생각하면 이정도는 껌 씹는 정도이겠으나 그래도 풀은 막강하다.
맞장뜨면 자신 있지만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
게다가 적들은 그 수를 불리는 데 있어서 어느 누구도 당할 자가 없다.
텃밭에 심은 아이들이 그 반만 쫓아가도 좋으련만....ㅠㅠ







  위 사진의 적들을 초토화시켰다. 에고 무릎이야 ~허리야~~

용가리가 칭찬한다.
참 훌륭한 일꾼이라고...밥도 별로 안 먹고 일은 많이 하고...
가끔 술 한 잔만 주면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맞다. 누가 나 같은 사람 놉으로 쓰면 땡잡는거다.
밥 대신 막걸리 두어 잔만 챙겨 주면 하루종일 일한다. 


  지난번에 이어 공학도의 치밀함(?)으로 담을 쌓고 있는 모습
  별 달라진 것도 없이 어찌나 허물었다 쌓았다를 반복하는지...하루 종일 저러고 있었다.


간청재 처마에 하나 둘 벌집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작은 벌집 두 개를 떼어냈다. 한 해 겪어 봤다고 제법 잘 처리할 줄도 안다.

간청재 툇마루 구석에는 항상 쥐똥이 있다.
들쥐이거나 다람쥐, 혹은 청솔모일 수 있는데 왜 그 아이들은 항상 여기에 와서 볼일을 보는 것일까...
경고문을 써 붙일 수도 없고 다른 곳에 화장실을 만들어 줄 수도 없고..좋은 방법이 없을까..
용가리는 혹시 담배를 싫어할지 모르니 담배를 놓고 가 보자 해서 담배를 놓고 왔다.
근거도 없고 혹 하지도 않은 이야기라 별 기대도 없다. 이번에도 흩어진 쥐똥이 우리를 반기겠지....




딱 한 번 찬란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연은 어찌 되었는지 개구리들이 다시 차지하기 시작한 연못(?)
그래도 못이라고 새가 와서 목을 축인다. 

내려가는 길에 함양 장에 들러 모종을 샀다.
지난번 마천은 추워서 5월에 심어야 한다고 셈까지 치른 모종을 다시 물러 주셨던 아주머니에게 가서 샀다.
5월에 꼭 여기서 사야 한다고 하셨기에 의리는 지켜야 하지 않은가....
고추, 꽈리고추, 들깨, 오이, 호박, 토마토, 가지
몇 개를 사야 할지 망설이는데
'두 개면 충분하다, 서너 개만 심어도 된다..'  이렇게 말씀하셔서 소심하게 사 왔다.
와서 생각하니 너무 조금 산 것 같다.
딱 봐도 우리가 심심풀이 삼아 심어 보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다음 날 인월 장날이라 인월 장에 가서 조금 더 샀다.
가격도 차이가 좀 있고 모종 크기도 좀 다르다. 나중에 보면 어떤 것이 더 실한지 알 수 있겠지...



장에서 쇼핑한 화려한 꽃무늬의 밥상.  왕쟁반에 이어 탐내고 있었던 아이템이다. 흡족하다 ㅎㅎ


  함양 시장의 여름철 필수 아이템! 이것으로 용가리의 여름나기 준비 끝~ 

모종을 심으려 보니 살 때는 알겠는데 쫌 헷갈린다.
특히 호박이랑 오이는 두 개씩 샀는데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 집중해서 보니 더 헷갈린다.

고추

들깨


  가지


  토마토

오이? 호박?


  위에 심은 것이랑 헷갈린다. 이것이 호박이면 위에 것은 오이인데...


모종 심고 너도님이 주신 꽃이랑 더덕도 심고 튼실히 자란 열무, 상추, 시금치 솎아주고..
열무는 정말 쑥쑥 잘 자라서 마음에 든다 ㅎㅎ
솎아 낸 아이들은 장에서 사 온 두부 넣고 된장찌개 끓여 먹었다.
열무는 제법 큰 것들은 대충 버무려 먹었는데 맛이 좋다.
내가 김치 담글 것도 아니고 무쳐 먹거나 된장에 넣어 먹어야겠다. 부침개 해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잎사귀나 줄기 먹는 것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말이다 ㅎ










쑥쑥 자란 열무를 버무려 먹었다. 맛나다~ 막걸리와 궁합이 좋다. 

3일 내내 콕 박혀서 일만 했더니 콧바람도 좀 쐬야 할 것 같았다.
같은 마천에 살면서 안 가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벽송사에 잠시 다녀왔다.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어 국군이 다 불살라버린 절이다.
그 후에 다시 지었으니 절 자체는 그저 그렇다.
보도블럭에 화강암 계단이 확 반겨주는...
그런데 벽송사의 소나무와 절터의 경관은 정말 멋지다.
몰래 막걸리 싸 들고 가서 마시고 싶은 자리가 몇 군데 있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낮잠 한 판 때리면 딱 좋을 그런 자리...









  요것이 노란 가루의 정체. 소나무꽃!

이번 간청재에서는 참 조용하게 지냈다.
어딜 가도 사람들이 별로 없고 말이다..
연휴가 지난 다음 주에 어디 다니면 사람 치이지 않고 잘 다닐 수 있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휴 때 뽀지게 놀아서 연휴 끝난 다음 주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실상사 앞이나 둘레길 근처에도 관광버스가 없다.
벽송사도 거의 사람이 없어 한적하게 즐기다 왔다.

논에는 물을 대고 모내기를 마친 곳도 있다.
마침 간청재 건너편 논에 모내기를 하는 날이라서 잠시 구경할 수 있었다.
주말이라 온 식구들이 다 내려와서 모내기를 돕는다.
예비 사위까지 내려와 일을 돕는다 ㅎㅎ
집이 가까이 있지만 점심을 해서 날라와 나무 밑에 온 가족이 모여 먹는다.
마당에 있는 우리들 보고 와서 같이 밥 먹자고 아주머니께서 어찌나 부르시던지...
꼬마 손주 녀석은 간청재 마당에 와서 이리저리 탐색을 한다.
일곱살이란다. 어디 사냐고 묻자 무슨 센트레빌?에서 산단다. 오잉?
아니 동네가 어디냐고 어디서 왔냐고..다시 물었지만 대답은 같다.
나는 어떤 도시에서 왔냐고 물었던 것인데 이런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다.
뭐 꼬마 입장에서는 자신이 사는 곳을 콕 집어 이야기한 것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예비사위가 보조 역할에 열과 성을 다 하고 있다 ㅎㅎ 


서울에 일이 있어 새벽 6시에 간청재를 나왔다.
일이 아니었으면 볼 수 없었던 오도재의 풍광이다.


산세는 여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두빛은 이제 짙은 녹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여름이 다가왔다.
풀과 벌레와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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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美의 女神 2015/05/20 06:55

    첫번째가 오이 두번째가 호박.
    단호박이 무더기로 나왔는데 밭에.
    씨버리지 말고 밭에 버려요. 담엔.
    된장찌개에 넣어도 좋아요.
    상추도 된장국 끓여도 괘안아요.

    • 제비 2015/05/28 18:57

      여신님은 딱 보고 아시네요
      저는 설명 듣고도 돌아서면 헷갈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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