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으로 이사한 선배가 있어 다녀왔다.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학교 선배인데 작년 6월 양양의 한 농가를 구입해서 이사했다.
딸 둘은 다 장성했으니 제 밥벌이는 알아서 할 일이고 남편은 하던 사업도 정리했으니 두 내외가 가뿐히 내려가
강원도 양양군민이 되었다.
내가 내려가기 며칠 전 큰딸이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홍천에 있는 작은 펜션을 빌려 양가 50명 정도 모여 결혼식을 올렸단다.
딸아이와 사위가 결정한 일이라고....
양가 부모님들이 성혼선언문도 낭독하고 주례사도 겸하고 축가도 부르고 악기도 연주하고..
전해듣는 것만으로도 즐겁도 행복한 결혼식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신혼여행은 배낭 메고 둘 만의 캠핑으로...
우리 딸아이는 마천 우리집 마당에서 시키고 싶다 하니까 '사위를 그런 놈으로 만나야지..' 한다.
어쨌든 주변에서 이런 작은 결혼식을 접하게 되니 마당 결혼식이 가능성 있는 계획으로 다가온다. ㅎㅎ
감나무,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각종 과일나무가 많다. 꽃 나무도 많고..
작약이나 모란 같은 꽃들도 많은데 꽃이 다 졌다..ㅠㅠ
선배집에 도착하자 아저씨(남편)가 양 손에 뜯은 풀을 움켜쥐고 우리를 맞는다.
역시 어딜 가도 마찬가지 ㅎㅎ
선배 부부와 우리는 모두 학교 동문이어서 서울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선배 부부는 산악부 출신으로 낭만에 살고 낭만에 죽는 사람들이다.
지금도 캠프파이어 하면서 우크렐레를 연주하며 큰 소리로 노래 부르며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있다.
서울 아파트에서 술 한 잔 하시고 우크렐레 끼고 노래하다가 박수도 받았지만 시끄럽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는데
산 속에 오니까 내 맘대로 노래하고 음악 듣고 너무 좋으시단다.
그런데 선배는 요즘 좀 힘들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곳을 구입하고는 정말 신나하고 빨리 내려가고 싶어했는데
지금은 무기력해지고 우울감을 느낀다니 걱정이다.
처음 내려와 몇 개월 신났던 기분은 사라지고 매일 똑같은 일상이 이제는 지겹단다.
다시 서울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도 한다. 특히 겨울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무릎도 아파서 바깥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만사가 심드렁해진 모양이다.
그런 선배의 모습을 보니 살짝 걱정된다. 이런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길어야 2,3년 텃밭 가꾸고 어쩌고 하면 다 지겨워진다고...
우리도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그렇다고 뒤로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그때 가서 또 어찌어찌 되겠지...지금은 좋으면 좋은대로 달려가야지 너무 주춤거리기는 싫다.
선배도 영 아니면 다시 올라오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은 두 사람의 균형이다.
아저씨는 너무 좋은데 선배가 그렇지 못하면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니 말이다..
같이 지겨우면 문제 없이 다시 짐 싸면 되는데 말이다....에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을란다. 용가리도 나도 닥치면 생각하지 뭘...
10분 거리 동해 바다가 나온다.
오랜만에 동해바다를 본다.
오랜만에 바닷가 횟집에서 막 썰어 나오는 회에 소주 한 잔 털어 넣으니 소주가 달다.
정말 정말 동해 바다, 강원도 땅 밟은지가 오래되었다.
10년도 넘은 것 같다. 한 15,6년 되나?
한때는 강원도에 뻔질나게 다녔다.
대학 1학년부터는 써클 합숙 훈련으로 여름 겨울 낙산에서 열흘 이상씩을 보냈고
딸아이 어렸을 때까지도 속초에 아빠가 사 두셨던 작은 아파트가 있어 온 식구들이 엄청 다녔다.
예전에는 나들이 하면 강원도였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온천도 있고 회도 있고...
그러다 딸아이 초등학생 정도 되었을 때부터는 안면도 쪽으로 많이 다녔다.
잔잔한 서해바다가 좋았고 역시 싱싱한 해산물 많고..
그러다가는 이제 바다 쪽과는 먼 지리산 쪽으로 다니게 되었다.
산을 보면서는 항상 산이 좋아, 산이 좋아 했었는데 바다를 보니 바다도 참 좋구나...
지리산 살면서도 가끔 바다 보러 나와 줘야겠다. 바다를 잊어버리고 있었네...
한 때는 투표 결과 때문에 내 강원도 땅을 다시 밟지 않으리라..
그 곳에 가서 돈 쓰지 않으리라...한 적도 있었는데 ㅎㅎㅎ
그렇게 어렵게 올라갔던 미시령은 터널로 좍 통과다.
미시령 꾸역꾸역 올라가 망원경 한 번 보고 떡볶이 한 판 먹고 와야 하는데 말이다.
참으로 많이 변했다. 낙산, 양양...한 때는 거의 내 나와바리라 할 정도로 많이 다녔는데 말이다.
용가리와 가면서 우리가 기억했던 곳이 그대로 있으면 너무나도 반가워하며 아는 체를 했다.
새로 생기고 정비하고 길도 바뀌고..내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다.
대학 써클 생활을 하면서 열흘 이상의 합숙 생활은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새록새록 생각나는 추억이다.
졸업을 하고도 한 동안은 계속 참가했으니 오래 되기도 하였다.
용가리와 나는 취주악부(일본식 표기. 50년대 생겨나 표기법이 쫌 그렇다.관악과 타악만으로 구성된 앙상블. 지금은 관악합주단이나 윈드앙상블이라고 함)에서 함께 활동했다.
용가리가 두 학번 선배다.
음악 써클이니 일년에 3월 신춘음악회, 5월 축제 석탑음악제, 9월 정기연주회 이렇게 세 번의 연주회를 했다.
그리고 고연전 응원나팔을 부었고 입학식, 졸업식 행사 음악도 맡았었다.
지금은 바뀌어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지만 내가 있을 때는 그랬다.
그러니 3월과 9월의 연주회를 위해서 겨울과 여름 합숙훈련을 한다.
낙산 수련관은 교직원 전용이었으므로 겨울에만 어찌어찌해서 사용했었던 것 같고
여름에는 초등학교를 빌려 사용했다.
기억 나는 것은 조산초등학교와 강현 초등학교에서의 여름합숙.
초등학교 교실 두 개. 하나는 남학생, 하나는 여학생.
나무바닥이었던 교실에 돗자리 깔고 각자 이불 가져와 덮고 잤다.
그때는 아웃도어 용품 같은 것이 별로 없었다. 솥단지에 이불 가져가서 먹고 자고 했다.
학교 운동장 수돗가 옆에 천막 같은 것으로 임시 샤워장을 만들어 썼다.
도구도 변변한 것 없었으면서 삼시세끼 밥 지어 먹고 김치까지 담가 먹었다.
각자 준비해 오라던 밑반찬은 어째 하나같이 깻잎들만 싸가지고 왔는지....
가는 날까지 깻잎만 줄기차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뒤로 나자빠질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나름 훌륭하게(?) 그 많은 사람들이 별 사고 없이 재냈던 것 같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택도 없는 소겠지만 말이다...
이러려고 시작한 것이 아닌데 글을 쓰다 보니 새록새록 옛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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