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숙과 관련된 여러가지 일이야 일일이 꼽을 수도 없지만 정말 잊을 수 없는 합숙이
1학년과 2학년 여름합숙이다.
1학년 첫 여름합숙.
떠나는 날부터 비가 왔다. 11박 12일을 있었는데 돌아오는 날 해가 났다.
조산초등학교에서 합숙을 시작하는데 열흘 내내 비가 왔다.
초등학교 교실 벽면 아이들의 작품을 붙이는 자리에는 수건과 양말과 속옷이 나붙었다.
그래도 쉰내만 날 뿐 전혀 마르지는 않았다.
누군가 충고했다. 그냥 꼭 짜서 입으라고....
게다가 남학생들은 미친듯이 축구를 했다.
물론 선배들이 시켜서 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써클의 모든 남학생들은 미친듯이 축구를 했다.
오전이 전반전, 오후가 후반전이다.
매번 무슨 내기를 하기는 하지만 항상 저녁에 소주만 박스로 들어왔다.
비는 오는데 운동장에서 뒤엉켜 축구를 하고 씻기는 씻지만 걸레같은 수건으로 대충 닦고
빨기는 빨았지만 마르지 않은 옷으로 갈아 입으니 그 냄새가 오죽하랴...
점심 저녁 합주 시간에 모여 연습할 때면 서로에게서 풍기는 쉰내를 감수하며 악기를 불어야했다.
게다가 나는 열흘 내내 변마담(똥)을 보지 못했다.
조산초등학교는 재래식 화장실이다. 그것이 영향을 주었는지 안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희안한 것은 별로 거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밥은 밥대로 먹고 저녁에는 술도 먹었는데 게다가 밖으로 나오는 것도 없었는데 속은 그냥 편안했다.
합숙 중반이 되면 졸업하고 돈 버는 선배들이 찾아 온다.
격려 겸 위로 겸 자기들 노는 겸...
선배들이 오는 날은 저녁이 풍성하다 각종 해산물과 잘 하면 회도 먹을 수 있다.
여자 선배도 오는데 여자 선배가 오면 여학생들을 따로 챙겨준다.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의 숫자가 너무 적기 때문에 약간의 특별대우(?)를 해 주었다.
한 학번에 여학생은 한 명 아니면 두 명...나는 내 친구와 두 명이었다.
물론 지금은 여학생이 숫자가 더 많은 것 같다. 90년을 기준으로 여학생들이 많이 늘었다.
여자 선배가 오면 우리(모든 학번 합쳐서 여섯명 정도)를 데리고 낙산 비치호텔로 갔다.
호텔 커피숖에서 커피를 사 주었다.
추적추적 비 오는 날 거지 같은 꼴로 호텔 대리석 바닥을 밟았다.
이 얼마만에 보는 문명의 세계인가...
빼 놓을 수 없는 호사스러움, 호텔 화장실에 갔다.
지금도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호텔 세면기에서 물을 트는데 더운 물이 나오는 것이다...나는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
비 오는 날 초등학교 운동장 수도에서 찬 물로만 씻었던 우리는 깨끗하고 하얀 세면대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자
행복한 황홀함에 빠졌다.
게다가 문명의 상징, 하얀 좌변기에서 볼 일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다들 자신들의 고뇌를 해결하느라 정신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호텔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ㅠㅠ
일단 호텔에서 조금 인간으로 돌아온 뒤 낙산 바닷가에 즐비한 분식집으로 갔다.
선배는 우리에게 튀김을 한아름씩 사 주었다. 그날 먹은 튀김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용가리와 결혼하고 튀김 먹으러 갔었는데 맛이 별로....
그렇게 축축하고 춥고 냄새나는 열흘 간의 합숙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아침 해가 반짝 떴다.
그것도 아주아주 찬란한 태양이 떴다.
부장 선배는 지금부터 다시 합숙 시작한다고 뻥을 쳤다.
난 가방 가득 냄새에 쩐 걸레 같은 옷들을 담고 집에 오자마자 거의 20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나
화장실 변기에 가득 든 변마담을 볼 수 있었다.
2학년 여름합숙.
2학년 때는 그래도 좀 짠밥이 생겨서 여유도 있었다.
강현초등학교인지 조산초등학교인지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역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합숙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벌레와 모기가 많은지 멀쩡한 팔다리가 없었다.
특히 밤에 임시로 천막 쳐서 만든 샤워장에서 샤워라도 할라치면 사정 없이 모기가 달려들었다.
게다가 재래식 화장실(이때는 변마담을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보았다)에서 볼일을 보려고 바지를 내리면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화장시 갈 때면 에프킬라를 들고 미친듯이 한 판 뿌리고 엉덩이를 까야했다.
써클 합숙에는 항상 하는 행사가 있는데 여름에는 대청봉 다녀오는 것이다.
그리고 낙산에서 양양까지 아침 구보(달리기로 순화시켜 써야한다)를 하는 것이다.
아침 달리기는 가끔 밤 12시에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누군가가 술에 만취했을 때다...
양양까지의 달리기는 여름 겨울 모두 한다.
체력이 좋아야 나팔도 잘 분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냥 말 뿐이고 후배들 굴리기의 일종이다.
밤 새 술 먹고 누가 뛰고 싶으랴...지금 아이들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일 것이다.
난 얼떨결에 2학년 여름 합숙 때 대청봉을 다녀왔다.
1,2학년 남학생은 거의 필수로 가고 3학년부터는 원하는 사람만 간다.
그런데 대부분 간다. 여학생은 선택사항...써클 생긴 이래로 여학생은 한 번도 대청봉을 다녀오지 않았단다.
나도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별로가 아니고 당연히 안 가는 것이었다.
오색에서 출발하여 비선대로 내려오는데
등반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감자, 라면 등등 먹을 것과 솥단지, 들통을 가지고 가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먹이는 일을 한다.
감자 한 솥 삶아 놓고 라면 물 끓여 춥고 배고픈 이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비선대 조금 일찍 가서 룰루 랄라 놀기도 한다.
그런데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색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온 김에 같이 가자..저기 조금만 올라가 보자...이렇게 장난 삼아 말하는 것이다.
또 내 동기 남학생은 나도 조금만 갔다가 다시 내려올 거야...이러는 거다.
나는 그럼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가 볼까..해서 올라가게 되었다.
내가 미쳤지..왜 그랬을까..뭐가 씌운 것이 틀림 없어..
조금 올라가다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무도 돌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길 찾는 것에 대해 약간의 공포증이 있다. 길을 잘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 속에서 아무리 등산로라 할지라도 혼자 내려가는 일은 죽어도 못할 일이었다.
나는 힘들어서 가고 싶은데 아무도 돌아가는 사람은 없고...그냥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자꾸 너도 갈 수 있다...금방 간다..별로 안 힘들다...하면서 말이다.
87년 용가리, 89년 나
그렇게 낑낑대며 대청봉에 올랐다.
일단 대청봉은 너무 추웠다. 그리고 구름이 발 아래에 있었고 나무들이 다 키가 작고 옆으로 살짝 누워 있었다.
그것이 지금 내 머릿속에 남은 대청봉 주변의 모습이다.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리는 이미 다 풀렸고 정신도 멍했다.
점심은 출발하기 전 구멍가게에서 산 빵과 담아 온 물이 전부다.
두 세 명이 배낭에 넣어 왔다.
빵을 나눠 먹는데 세상에...빵에 곰팡이가....빵 산 놈이 확인도 안 하고 대충 집어 넣었나보다.
시골 가게이니 오래된 빵도 있었겠지...
그런데 나도 먹고 살겠다고 그냥 먹었다. 곰팡이 뜯어내고 먹었다.
다른 사람들도 곰팡이 핀 빵을 다들 먹었다.
그리고 물을 돌려 마시는데 다들 힘들어 정신이 없으니 먹는 것도 질질 흘리면서 먹는지 빵 부스러기가
물병 입구 주변에 더럽게 붙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옮겨온 것이리라....
그래도 그냥 마셨다. 힘들고 목마른데 뭐 어떤가...그냥 손으로 털고 마셨다.
사람이 힘드니까 곰팡이 핀 빵도 들어가고 지저분한 물도 꿀꿀 잘 들어가는구나..
아무리 힘들어도 대청봉까지는 그래도 좀 웃기도 하고 괜찮았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비선대로의 하산길은 정말 악몽이었다.
다리는 내 다리가 아니었고 발목도 발바닥도 발톱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
물도 없었다. 바위틈에 쫄쫄거리고 내려오는 물을 손으로 받아 입만 축였다.
아무리 열심히 내려와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다 왔다는 이야기를 한 100 번 쯤 들었다.
선배 두 명이 나와 함께 처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내려갔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사방이 깜깜해졌다.
선배들도 긴장했다. 라이타 불이었는지 작은 손전등이 있었는지 어쨌든 잠깐씩 발 밑을 확인하며 걸었다.
나는 차라리 확 쓰러지거나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한계에 온 것 같았다.
정신이 몽롱하고 몸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움직였다.
비선대 내려온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침 9시 조금 넘어 오색에서 출발했으니 10시간이 넘게 걸었던 것이다.
선배들도 나 때문에 고생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사라들은 어찌된 일인지 걱정하고...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짓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운동화 신고 반바지 티셔츠 차림으로 삼립빵 하나 들고 대청봉을 오르다니 말이다.
나도 당근 운동화에 추리닝 입고 올라갔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등산화, 스틱, 고어텍스, 각종 비타민에 초콜릿, 빵빵한 점심까지 챙겨가는 지금의 상황이랑은
많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개인 물병 하나도 없이 달랑달랑 맨몸으로 올라갔으니 말이다.
나는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 내리 이틀 동안을 잤다.
각자 맡은 할 일이 있었지만 나는 예외. 합숙 끝나고 집에 와서도 내리 잠만 잤다.
그리고 엄지 발톱 두 개가 홀랑 빠져버렸다. ㅠㅠ
나중에 함께 챙겨주면서 내려왔던 선배가 그런다.
'난 그렇게 다리가 후들거리는 거 처음 봤어.
정말 개다리 춤이 자동으로 나오더라..그래도 앞으로 가기는 가더라..'
나는 다리가 후들거렸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유체이탈....
난 이 날 대청봉 다녀 온 1호 여학생이 되었고 청봉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내 인생에서 정말 잊지 못할 등반(?)이었다.
1학년과 2학년 여름합숙이다.
1학년 첫 여름합숙.
떠나는 날부터 비가 왔다. 11박 12일을 있었는데 돌아오는 날 해가 났다.
조산초등학교에서 합숙을 시작하는데 열흘 내내 비가 왔다.
초등학교 교실 벽면 아이들의 작품을 붙이는 자리에는 수건과 양말과 속옷이 나붙었다.
그래도 쉰내만 날 뿐 전혀 마르지는 않았다.
누군가 충고했다. 그냥 꼭 짜서 입으라고....
게다가 남학생들은 미친듯이 축구를 했다.
물론 선배들이 시켜서 하는 일이지만 어쨌든 써클의 모든 남학생들은 미친듯이 축구를 했다.
오전이 전반전, 오후가 후반전이다.
매번 무슨 내기를 하기는 하지만 항상 저녁에 소주만 박스로 들어왔다.
비는 오는데 운동장에서 뒤엉켜 축구를 하고 씻기는 씻지만 걸레같은 수건으로 대충 닦고
빨기는 빨았지만 마르지 않은 옷으로 갈아 입으니 그 냄새가 오죽하랴...
점심 저녁 합주 시간에 모여 연습할 때면 서로에게서 풍기는 쉰내를 감수하며 악기를 불어야했다.
게다가 나는 열흘 내내 변마담(똥)을 보지 못했다.
조산초등학교는 재래식 화장실이다. 그것이 영향을 주었는지 안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희안한 것은 별로 거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밥은 밥대로 먹고 저녁에는 술도 먹었는데 게다가 밖으로 나오는 것도 없었는데 속은 그냥 편안했다.
합숙 중반이 되면 졸업하고 돈 버는 선배들이 찾아 온다.
격려 겸 위로 겸 자기들 노는 겸...
선배들이 오는 날은 저녁이 풍성하다 각종 해산물과 잘 하면 회도 먹을 수 있다.
여자 선배도 오는데 여자 선배가 오면 여학생들을 따로 챙겨준다.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의 숫자가 너무 적기 때문에 약간의 특별대우(?)를 해 주었다.
한 학번에 여학생은 한 명 아니면 두 명...나는 내 친구와 두 명이었다.
물론 지금은 여학생이 숫자가 더 많은 것 같다. 90년을 기준으로 여학생들이 많이 늘었다.
여자 선배가 오면 우리(모든 학번 합쳐서 여섯명 정도)를 데리고 낙산 비치호텔로 갔다.
호텔 커피숖에서 커피를 사 주었다.
추적추적 비 오는 날 거지 같은 꼴로 호텔 대리석 바닥을 밟았다.
이 얼마만에 보는 문명의 세계인가...
빼 놓을 수 없는 호사스러움, 호텔 화장실에 갔다.
지금도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호텔 세면기에서 물을 트는데 더운 물이 나오는 것이다...나는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
비 오는 날 초등학교 운동장 수도에서 찬 물로만 씻었던 우리는 깨끗하고 하얀 세면대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자
행복한 황홀함에 빠졌다.
게다가 문명의 상징, 하얀 좌변기에서 볼 일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다들 자신들의 고뇌를 해결하느라 정신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호텔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ㅠㅠ
일단 호텔에서 조금 인간으로 돌아온 뒤 낙산 바닷가에 즐비한 분식집으로 갔다.
선배는 우리에게 튀김을 한아름씩 사 주었다. 그날 먹은 튀김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용가리와 결혼하고 튀김 먹으러 갔었는데 맛이 별로....
그렇게 축축하고 춥고 냄새나는 열흘 간의 합숙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아침 해가 반짝 떴다.
그것도 아주아주 찬란한 태양이 떴다.
부장 선배는 지금부터 다시 합숙 시작한다고 뻥을 쳤다.
난 가방 가득 냄새에 쩐 걸레 같은 옷들을 담고 집에 오자마자 거의 20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나
화장실 변기에 가득 든 변마담을 볼 수 있었다.
2학년 여름합숙.
2학년 때는 그래도 좀 짠밥이 생겨서 여유도 있었다.
강현초등학교인지 조산초등학교인지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역시 초등학교 교실에서 합숙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벌레와 모기가 많은지 멀쩡한 팔다리가 없었다.
특히 밤에 임시로 천막 쳐서 만든 샤워장에서 샤워라도 할라치면 사정 없이 모기가 달려들었다.
게다가 재래식 화장실(이때는 변마담을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보았다)에서 볼일을 보려고 바지를 내리면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화장시 갈 때면 에프킬라를 들고 미친듯이 한 판 뿌리고 엉덩이를 까야했다.
써클 합숙에는 항상 하는 행사가 있는데 여름에는 대청봉 다녀오는 것이다.
그리고 낙산에서 양양까지 아침 구보(달리기로 순화시켜 써야한다)를 하는 것이다.
아침 달리기는 가끔 밤 12시에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누군가가 술에 만취했을 때다...
양양까지의 달리기는 여름 겨울 모두 한다.
체력이 좋아야 나팔도 잘 분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냥 말 뿐이고 후배들 굴리기의 일종이다.
밤 새 술 먹고 누가 뛰고 싶으랴...지금 아이들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일 것이다.
난 얼떨결에 2학년 여름 합숙 때 대청봉을 다녀왔다.
1,2학년 남학생은 거의 필수로 가고 3학년부터는 원하는 사람만 간다.
그런데 대부분 간다. 여학생은 선택사항...써클 생긴 이래로 여학생은 한 번도 대청봉을 다녀오지 않았단다.
나도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별로가 아니고 당연히 안 가는 것이었다.
오색에서 출발하여 비선대로 내려오는데
등반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감자, 라면 등등 먹을 것과 솥단지, 들통을 가지고 가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먹이는 일을 한다.
감자 한 솥 삶아 놓고 라면 물 끓여 춥고 배고픈 이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비선대 조금 일찍 가서 룰루 랄라 놀기도 한다.
그런데 그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색까지 같이 가게 되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온 김에 같이 가자..저기 조금만 올라가 보자...이렇게 장난 삼아 말하는 것이다.
또 내 동기 남학생은 나도 조금만 갔다가 다시 내려올 거야...이러는 거다.
나는 그럼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가 볼까..해서 올라가게 되었다.
내가 미쳤지..왜 그랬을까..뭐가 씌운 것이 틀림 없어..
조금 올라가다 다시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무도 돌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길 찾는 것에 대해 약간의 공포증이 있다. 길을 잘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 속에서 아무리 등산로라 할지라도 혼자 내려가는 일은 죽어도 못할 일이었다.
나는 힘들어서 가고 싶은데 아무도 돌아가는 사람은 없고...그냥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자꾸 너도 갈 수 있다...금방 간다..별로 안 힘들다...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낑낑대며 대청봉에 올랐다.
일단 대청봉은 너무 추웠다. 그리고 구름이 발 아래에 있었고 나무들이 다 키가 작고 옆으로 살짝 누워 있었다.
그것이 지금 내 머릿속에 남은 대청봉 주변의 모습이다.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리는 이미 다 풀렸고 정신도 멍했다.
점심은 출발하기 전 구멍가게에서 산 빵과 담아 온 물이 전부다.
두 세 명이 배낭에 넣어 왔다.
빵을 나눠 먹는데 세상에...빵에 곰팡이가....빵 산 놈이 확인도 안 하고 대충 집어 넣었나보다.
시골 가게이니 오래된 빵도 있었겠지...
그런데 나도 먹고 살겠다고 그냥 먹었다. 곰팡이 뜯어내고 먹었다.
다른 사람들도 곰팡이 핀 빵을 다들 먹었다.
그리고 물을 돌려 마시는데 다들 힘들어 정신이 없으니 먹는 것도 질질 흘리면서 먹는지 빵 부스러기가
물병 입구 주변에 더럽게 붙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입에서 옮겨온 것이리라....
그래도 그냥 마셨다. 힘들고 목마른데 뭐 어떤가...그냥 손으로 털고 마셨다.
사람이 힘드니까 곰팡이 핀 빵도 들어가고 지저분한 물도 꿀꿀 잘 들어가는구나..
아무리 힘들어도 대청봉까지는 그래도 좀 웃기도 하고 괜찮았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비선대로의 하산길은 정말 악몽이었다.
다리는 내 다리가 아니었고 발목도 발바닥도 발톱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
물도 없었다. 바위틈에 쫄쫄거리고 내려오는 물을 손으로 받아 입만 축였다.
아무리 열심히 내려와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다 왔다는 이야기를 한 100 번 쯤 들었다.
선배 두 명이 나와 함께 처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내려갔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사방이 깜깜해졌다.
선배들도 긴장했다. 라이타 불이었는지 작은 손전등이 있었는지 어쨌든 잠깐씩 발 밑을 확인하며 걸었다.
나는 차라리 확 쓰러지거나 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한계에 온 것 같았다.
정신이 몽롱하고 몸은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움직였다.
비선대 내려온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침 9시 조금 넘어 오색에서 출발했으니 10시간이 넘게 걸었던 것이다.
선배들도 나 때문에 고생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사라들은 어찌된 일인지 걱정하고...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짓이었다.
나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도 운동화 신고 반바지 티셔츠 차림으로 삼립빵 하나 들고 대청봉을 오르다니 말이다.
나도 당근 운동화에 추리닝 입고 올라갔다.
지금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등산화, 스틱, 고어텍스, 각종 비타민에 초콜릿, 빵빵한 점심까지 챙겨가는 지금의 상황이랑은
많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개인 물병 하나도 없이 달랑달랑 맨몸으로 올라갔으니 말이다.
나는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 내리 이틀 동안을 잤다.
각자 맡은 할 일이 있었지만 나는 예외. 합숙 끝나고 집에 와서도 내리 잠만 잤다.
그리고 엄지 발톱 두 개가 홀랑 빠져버렸다. ㅠㅠ
나중에 함께 챙겨주면서 내려왔던 선배가 그런다.
'난 그렇게 다리가 후들거리는 거 처음 봤어.
정말 개다리 춤이 자동으로 나오더라..그래도 앞으로 가기는 가더라..'
나는 다리가 후들거렸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유체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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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 가고 싶고, 서해에도 가고 싶은걸 보니... 영진항의 브라질 커피도 그립고...
영진항에서 커피 마시며 멍 때리던 때가 언젠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