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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편들어 주기 2015/07/29

by jebi1009 2018. 12. 27.



어찌하다 보니 벌써 8월이 다가온다.
이러다 찬 바람 불고 또 다음 해를 맞이하겠지...
올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매듭을 짓게 될 것 같다.
내년 봄이면 지리산으로 이사를 해야 하고,
딸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혼자 남아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니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계획 대로 뜻 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자식의 일이다.
내가 어찌 컨트롤할 수 없고, 그래서 불확실하고...
그리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지금 고 3인 아이가 인생의 가장 큰 스트레스인 대학 진학에 무난하게 성공해서 무난하게 독립하게 되는 것이 가장 바라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대학에 진학하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서로 각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아이는 함께 지리산에 내려가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고
용가리와 나는 서울에서의 계속된 삶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교육이 끝나면 아이가 독립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에 서로 합의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지원도 대학교육까지다.
단지 서로 함께 사는 기간이 조금 더 짧아졌을 뿐이다.
우리가 계속 서울에서 살았다면 그냥 같은 집에서 대학을 다녔을테니 말이다.
아이는 미숙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이제 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자신의 생활고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은 잘 인지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현실감이 확 와 닿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대학진학에 실패한다 해도 별 뾰족한 방법은 없겠고, 그것 또한 스스로 찾아야 하니...



고 3을 보내고 있는 딸아이를 위해 설님이 보내주셨다.
이상한 엄마를 가진 덕에 고 3 특별 서비스는 커녕, 고 3의 특권을 요만큼도  누릴 수 없던  딸아이는 은근 좋아하는 눈치다. 설님이 엄마 보다 훨 낫다 ㅠㅠ  


난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잘 공감해 주는 엄마가 아니다.
항상 아이의 편을 잘 들어주지 못한다.
힘들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네가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하라는 식의 반응이다.
내 마음 한 편에는 아이가 강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받아 주고 편들어 주면 아이가 약해질 것이라는 생각...
그런 태도와 생각이 너무나 어리석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잘 허용되지 않았다.
그랬구나...하면 될 것을 말이다...
이제는 내가 편들어 준다고 상황 판단 못할 정도로 아이가 어리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많이 자랐다.
그냥 누군가를 욕 할 때 내가 더 흥분하면서 욕해주고, 억울하다고 말 할 때 내가 더 분하다고 흥분해 주면 그걸로 된 것이다. 여태까지 어떤 방향을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던 내가 참 바보같다.
아이는 답을 바란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물론 아이에게 공감해 주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넘치게 알고 있었지만 이제야 속 시원하게 마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바로  어젯밤에 말이다...정말 내 자신이 한심하고 멍청하다..

'우리 셋 중에서 쟤가 제일 낫다.'  
용가리와 내가 딸아이를 보면서 둘이 가끔 하는 말이다.
그래 멍충한 우리 앞가림이나 잘 하자....
이제는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편들어 주는 것만 해 주면 되는구나..
주제 넘게 가르치려 들지 말자...

아이가 너무 힘들지 않게 내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아이가 그려준 세월호 리본.
               세월호 리본이 붙어 있던 차를 바꾸면서 새 차에 붙이라고 그려 주었다.
               새 차 뒷유리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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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벨라줌마 2015/07/30 05:45

    머리를 심하게 위아래로 끄덕이며....공감하게 되는 말씀이 줄줄이입니다.....
    지나고보니 사춘기 시절, 저 역시 친정엄마 그리고 가족들에게 원했던 것은 딱 하나 "내 편 해줘!" 였던 거 같아요. 하지만 부모의 입장이라는 것이....제비님 말씀처럼...내 아이가 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보니....편을 들어주기 보다는 사건의 전말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내어주려 하는 마음이 앞서니....
    그래도 시간이 더 지나 내가 그랬던것처럼....제비님의 따님도 그럴 것이고....제비님의 따님도 그럴것이라 믿으며 내 아이 세레나도 부모의 쓴(?) 소리를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 희망을 품어 봅니다....
    사실 저 역시.... 그러지 말자 그러지 말자 지금부터 스스로 세뇌시키려 노력하지만.....분명 편을 들어주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늘어놓는... 한심한 엄마가 될것이 자명하거든요.....

    '고3 어머니'
    그저 그 이름만으로도 제비님은 충분히 훌륭하십니다!
    결과만이 아닌 그간의 과정들을 돌이키며 기쁘게 아니 신나게 내 년을 맞이할 제비님의 따님을 위해 저도 멀리서 기도합니다. 화이팅!!

    • 제비 2015/08/04 15:10

      '고3 어머니' ㅎㅎㅎ
      남들이 들으면 다 놀릴 것이라 생각되네요 ㅋ
      저의 행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말이어요...

      벨라줌마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멀리서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딸아이에게 자랑해야겠어요
      엄마는 이국 만리에서 너를 위해 기도해 주는 친구도 있단다~ 하면서 ㅎㅎ

  2. 알퐁 2015/07/31 21:44

    전 어릴 때 "잰 원래 ...그래"란 말이 몹시 싫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이름 짓는(?) 엄마는 안 되려구요 ^^;;

    • 제비 2015/08/04 15:15

      이제 아이가 조금 크니까 저는 막 나갑니다 ㅎㅎ
      그래 니 엄마 원래 그런 사람이야 몰랐냐? 이르믄서..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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