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노릇 할 줄 몰라 主人만 괴롭히고도 부끄럽긴 커녕 도리어 성을 내네]
해남 대흥사에서 하안거를 끝내시고 돌아오신 스님을 뵈러 갔다가
스님 책상 앞에 있는 그림을 보고 마음에 콕 박혔다.
엄청 찔렸다.
살면서 객노릇 할 줄 모르고 주인을 괴롭힌 적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객인 줄도 모르고 주인인 줄 알고 설쳐댄 적이 얼마나 많은가....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도리어 성을 낸 적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세상을 잘 사는 것은 객노릇 잘 하는 것인데 말이다.
내가 맺은 많은 관계들...사람, 사물, 자연...이 관계 속에서 나는 객이었음을....
그림을 한참 들여다 보면서 통감했다.
스님은 조금 수척해지셨다.
중노릇 하면서 제일 남는 장사가 결제 마치는 것이지...
이제 힘드신데 그만 다니시라는 말씀에 스님이 말씀하신다.
푹푹 찌는 더위에 하루 최하 8시간 씩을 앉아 수행하시니 나는 생각만 해도 뼈골이 다 빠지는 것 같다.
그래도 칠십까지는 다녀야 할텐데...한 마디 덧붙이신다.
정신의 수행도 육신이 받쳐 주어야 하니 말이다.
겨울에는 백양사 운문암으로 가신단다.
해남은 멀다고 오지 말라 하셔서 가 뵙지 못했는데 운문암에는 찾아 뵈었으면 좋겠다.
운문암 골짜기에는 눈이 많이 온다는데 날을 잘 받아서 가야겠다.
추석이 가까워오자 일찌감치 벌초하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간청재 옆 산 비탈에도 작은 묘소가 있는데 벌초하러 두 팀이나 왔다.
길이 없어 우리집 마당을 통과해야만 한다 ㅠㅠ
조상님 뵈러 온다는데 마당 길 정도야 일 년에 한 번은 내어 주어야 하지 않은가...
그래도 조금은 아쉽다.
아무리 옛날에 누구누구 땅이었어도 지금은 남의 집 마당 안을 지나야 하니
조금은 친절? 경우? 하여간 쫌 그랬다...쩝...
정글 같던 풀숲이 벌초하고 난 후 양탄자 같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는 필 받아서 우리도 잡초를 마구 치웠다.
오랜만에 용가리도 예초기를 꺼냈다.
그런데 사용법을 까먹어서 다시 설명서를.....ㅎㅎ
아무리 예초기를 사용해도 프로를 어찌 따라가랴..
양탄자 같이 깍아 놓은 프로들의 솜씨와는 달리 우리는 좀 허접했다.
되었으므로 비교할 비포 사진이 없다. 그야 말로 정글...저 고랑을 본 지가 언젠지 모르겠다.
다년생이라 하여 혹시나..하고 구해 놓았는데 그냥 보면 내년에 꽃을 피울 것 같지가 않다 ㅠㅠ
이 귀한 것을 어찌 먹으리...
우리도 다른 집 밭처럼 붉은 고추가 주렁주렁...때깔이 난다 ㅎㅎ
2주 전 심었던 배추모종도 잘 적응한 것 같다.
무씨도 제법 올라와 꽤 컸다.
풀이랑 뒤엉킨 뒷마당 축대 밑 완전 쑥대밭이다....그래도 코스모스가 피었다.
예초기 사용하는 것이 더 어려운 곳은 낫과 호미와 톱까지 동원해서 두 팔로 헤쳐나갔다.
칡넝쿨에 알 수 없는 풀들로 뒤엉킨 가장자리를 정리하고 나니
드디어 경계의 돌들이 보이고 땅도 보이기 시작했다.
팔다리는 후들거려도 전망이 더 확 트인 것 같이 기분이 상쾌했다.
이제 풀은 눈에 띠게 자라는 속도가 줄었다. 풀의 전성기는 끝났다. 음하하하~~
빛깔도 냄새도 감촉도 달라진 가을 공기...하루하루 달라지고 있음을 온 몸이 느낀다.
명심하자...풀도 나무도 하늘도 이 모든 것들이 주인이라는 것을...
나와 인연 닿는 모든 것,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객노릇을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주인만 괴롭히고도 도리어 성을 내는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음풍농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2015/10/24 (0) | 2018.12.27 |
---|---|
가을 2015/09/28 (0) | 2018.12.27 |
가을 농사? 2015/08/26 (0) | 2018.12.27 |
여름도 괜찮구나.. 2015/08/12 (0) | 2018.12.27 |
비 오는 날 2015/07/18 (0) | 2018.12.27 |
저도 숙연히 반성해 봅니다. 객노릇 잘 하다 가야할텐데 말입니다.
마당 일, 밭일이 엄청나다 싶네요. 땀 흘리고 나면 뿌듯하긴 하지만요. ㅎㅎ
하늘하늘 핀 코스모스가 어여쁘네요. 수레국화, 코스모스 모두 다년초이니 시든 후에 뽑아버리거나 땅을 뒤엎지만 않는다면 다음 해에 다시 나더라고요.
내년 수레국화를 다시 볼 수 있기를....
옴마! 저는 저 훌륭한 글귀를 보고 park 거시기가 생각나다니... ^^
산등성이들이 참 다정합니다.
저 능선을 계속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객으로 사는 삶..... 어찌보면 매우 어려울 듯 어찌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을 듯... 아직 잡고 있겠다 하시는 것이 참 많으신 친정 엄마를 오랜만에 뵙고 온 후라 그런지...제비님 글을 마음 콕콕 박으며 읽게 됩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제비님의 간청재 사진은" 제비님=매우 부자이심" 으로 연결 됩니다 ㅎㅎㅎ 수확하실 작물들, 고운 능선들, 꽃들...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질투심 유발 가득입니다!!!!!
맞아요 저 엄청 부자랍니다. ㅋㅋㅋ
'내 것'이라고 마음 정하면 그것 하나만 내 것이 되지만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고 어디서 주워 들은 기억이 나네요..
벨라님 뵙게 되면 부자로서 한 턱 쏘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