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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여름도 괜찮구나.. 2015/08/12

by jebi1009 2018. 12. 27.


        

낮에 더운 것은 그래도 그러려니 하지만 습도 높은 후덥지근한 밤이 계속 되니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났다.
게다가 모기까지 극성이니 말이다.
더위를 그리 타지 않는 편이라 여름 지내는 것이 특별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더위 때문에 푹 잘 수 없으니 여름이 덥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며칠을 헥헥대다가 간청재에 내려가니 푹푹 찌는 더위도 산 속 공기에서는 다르다.
일단 열대야가 없고 36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도 집 안에서 문 열어 놓고 누워 있으면
그냥 여름을 즐기는 수준이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땀 흘려 일 하다가 그늘 밑에 앉아 쉬면 그대로 피서...
가끔 바람도 불고, 소나기도 지나가고, 옥수수 복숭아 수박도 먹고, 천왕봉도 바라보고...
태풍이나 장마 때는 조심해야겠지만 간청재에서의 더위 나기는 괜찮을 것 같다.

이케아에서 서랍장 두 개와 창고에 놓을 선반을 샀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도 된다는데 3일 동안 꼼짝 않고 모두 완성했다.
용가리는 간청재에 도착하기 무섭게 포장을 뜯고 살펴봤다.
내가 집안 정리도 하고 마당 정리도 좀 같이 하고 천천히 하라고 해도 마음이 온통 거기에 가 있었다.
조립해서 만들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고....
마치 어릴 때 새로 나온 로봇 조립 세트를 받았을 때와 같이 들뜨고 설렌단다.
어찌나 눈을 반짝이며 집중해서 하는지..
다른 일을 저렇게 했으면 역사에 남을 사건 하나 만들었을 게다 ㅎㅎ



  이 많은 부품들이 제 곳을 찾아 들어가면 멀쩡한 가구가 완성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런 것을 디자인 하고, 또 너무 어렵지 않게 일반인이 할 수 있을 만큼의 단계로 정리했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
  설명서에는 만국의 공통어 그림만 있다. 뜨개질 도안표 처음 봤을 때 만든 사람 천재 같았는데
  이 설명서와 세트 만든 사람도 천재 같다. 따라 하기도 힘든데 만든 사람들은 천재 아닌가? ㅎㅎ
 






  사 놓기만 하고 쓸 데가 없어 쓰지 못했던 디월트 전동드릴을 마음껏 사용했다.
  이거 없었으면 손목 다 나갔을 거라고...어찌나 흐뭇해 하던지...










               창고에 넣을 선반. 서람장 한 번 해 보더니 아주 간단하게 만들었다.







텃밭과 뒷마당에 풀이 많이 자랐다.
오이는 모두 노각이 되었네...파란 오이는 딱 두 개밖에 못 먹었는데...
방울 토마토는 가지가 휘청이도록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대박이다.
가지도 꽤 큰 것이 달리고, 고추도 정말 많이 달렸다.
그런데 왜 호박은 찾기가 어려울까...저 축대 밑에서 열매을 맺었나...
잎도 무성하고 꽃도 많은데 호박이 달린 것은 잘 보지 못했다.
내년에는 호박과 오이를 심는 자리를 다시 생각해야겠다.
덩굴이 너무 무성하고 축대 밑으로 뻗어나가고 다른 텃밭까지 침투를 하니 자리를 옮겨야겠다.
8월 말쯤이면 무, 배추, 갓 등등을 심는단다.
무는 좋아하는 품목이고 도전해 볼 만해서 심으려 한다.
배추는 어렵다 하니 내년을 노리고...
열무와 근대를 심었던 자리를 다시 뒤집고 풀 썩힌 것을 덮어 두었다.



  바질이 늦게 싹이 나더니 후발 주자로 무섭게 자라고 있다.



  호박 덩굴은 어디까지 뻗칠 것인가....축대 밑 끝도 보이지 않게 뻗어 나갔다.
  호박이 어디 달렸는지 찾을 수도 없다.






  최대의 수확이다. 3킬로? 5킬로? 어쨌든 마트에서 한 상자 사는 만큼 나왔다.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툇마루에 놓고 오며 가며 일하며 놀며 계속 집어 먹었다.



  파란 오이는 별로 구경 못했는데 노각이 주렁주렁 






  노각무침과 노각볶음. 먹을 것이 노각과 고추, 상추밖에 없으니 이틀 동안 먹었다.
  생전 처음 해 보는 노각이다. 인터넷 찾아서 대충...
  파가 없어서 부추를 끊어다 넣고
  심심해서 꽈리 고추를 같이 볶았다. 막걸리랑 잘 어울린다.


뒷마당에 작은 풀들이 촘촘히 돋아났다. 풀씨가 날아들어 생긴 것들이리라...
돌 사이에 촘촘히 있는 것들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더 키워서 뽑을 것이냐...하지만 그들이 창대해질 것을 생각하니 작은 돌틈을 헤치고 힘 닿는 대로 뽑았다.
지나가시는 마을 어른들은' 새벽에 해야지..이 땡볕에...약을 좀 쳐야지...안 된다 안 돼...'
하시며 지나가신다.
일어나면 이미 햇님이 고개를 들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해가 넘어갈 때쯤이면
'이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인데 해 넘어 갈 때까지 마당에 코 박고 풀 뽑을 일 있으랴..
막걸리 한 잔 해서 하루를 마감해야지..' 하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땡볕에 그늘 살살 찾아 가며, 또 대범하게 땡볕 한 가운데로 전진하며 그렇게 사부작대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을 뽑으면서 수도 없이 중얼거렸다.
  너희와 나는 어째서 이런 운명으로 만났을까...왜 너희들은 뿌리도 내리기 전에 내 손에서 없어져야 할까...
  왜 너희들은 꼭 여기에서 뿌리를 내리려고 하니..다른 곳은 안 되는 거니...
  거의 제 정신이 아님 ㅋㅋ


 요놈은 그래도 큰 놈이다.  반에 반도 안 되는 놈들도 마당에 뿌려졌다. ㅠㅠ


 장갑 세 개를 해 먹었다.



  인월에서 사 온 수박을 자르니 씨가 거의 없다. 씨 없는 수박이었나?
  달기도 엄청 달고 씨도 없으니 먹기도 엄청 좋다.





수박 먹고 배 두드리며 누마루에 드러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일요일은 인월 장날이라 장에 가서 그릇과 밥상을 샀다.
내가 그렇게 아끼고 뽐내던 양은 밥상이 바람에 날아가 도랑에 처박혔다.
밥상은 그래도 무게가 있어서 소쿠리 날아가듯이 날아가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쟁반과 밥상을 잘 포개 놓고 잠시 나갔다 오니 두개 모두 없어졌다.
쟁반은 텃밭 구석에서 찾았는데 밥상은 없어졌다. 다시 잘 찾아보니 길 건너 도랑에 빠진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데 풀도 너무 무성하고 뱀도 있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ㅠㅠ
용가리가 가을 지나서 꺼내 준다고 했는데 그때까지 무사할까?
어쨌든 아쉬운 마음에 밥상과 소쿠리 두 개, 넓은 소쿠리 하나를 샀다.
소쿠리가 세 개로 늘어나서 너무 기분이 좋다. ㅎㅎ

저녁 무렵에는 옥수수를 삶았다.
작년에 200개 정도의 옥수수를 삶았더니 좀 힘들기도 해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양양에 있는 선배가 나 옥수수 좋아한다고 100개를 보내 주었다.
서울에서는 푹푹 찌는 더위에 삶을 엄두가 나지 않아 간청재에 가져왔다.
땡볕에 풀은 뽑아도 불은 피우기가 너무 괴로워 저녁 무렵에 시작했다.
저녁은 그냥 옥수수...그리고 맥주!
여름날 맥주만 있으면 그냥 끼니가 되는 거지 뭐....잔 불에 가래떡을 구워 보충했다.
인월장에서 사 온 옛날 과자도 먹고 멸치도 까 먹고 풋고추 따다 된장 찍어 먹고...많이 먹었구만...
딸아이도 옥수수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제발 사카린 좀 넣고 삶아 달란다.
길에서 파는 것처럼 단 맛이 있어야지 내가 삶은 옥수수는 너무 심심하단다.
그래..사카린이 몸에 나쁜 것도 아니고 그것 하나 못 들어주겠나...
사카린을 처음 써 보는데 얼만큼을 넣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조금 먹어 보고 조금 넣고 조금 먹어 보고 넣고...뭐 얼추 단 맛이 날 정도로 넣었다. 소금과 함께...
뜨거운 김이 빠지면 두 세 개씩 봉지에 담아 냉동실로 옮긴다.
먹을 만큼 꺼내서 살짝 찌면 방금 삶은 그 맛이 난다.
서울로 가져와 먹어본 딸아이는 사카린 맛이 부족하긴 하지만 전에 것 보다는 낫단다.
참내..다음에는 사카린 한 봉지를 다 넣어버릴까보다..흥!




 

아.....사랑스러운 옥수수. 열 개는 집어 먹은 것 같다.


서랍장 두 개 놓았더니 제법 사람 사는 집 같다. 한편으로는 집이 좁아진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여름 지나면 여름 옷 정리 시작하고 그릇들도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사부작사부작 옮기면 나중에 큰 차 안 쓰고 이사할 수도 있을라나....ㅎㅎ

어제 오늘 아침 저녁 바람에 제법 찬 기운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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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allytheCat 2015/08/14 01:35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다 보면 가끔씩 잘못된 그림이나 부품이 한두 개씩 모자랄 때가 있는데, 문제 없이 잘 조립하셨나 봅니다. ^^

    한솥 가득 삶으신 옥수수랑 석쇠에 잘 구운 가래떡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치 제비님 댁에 들러 잘 얻어먹은 기분이 드네요. 얼마 전 시카고에 갔다가 들른 한국 마트에서 노오란 양은 대접을 보면서 제비님 생각이 났더랍니다. 몇 개 살까 하다가 꾹 참았지요.

    • 제비 2015/08/20 13:58

      처음이라 그냥 덤볐는데 이제는 조립 전에 차분히 살펴야겠어요...흠집이 났는지 부품은 다 있는지..
      언제 오시면 양은 대접에 막걸리 한 잔 하시지요 ㅎㅎ

    • WallytheCat 2015/08/24 11:24

      네, 기쁘게 접수합니다. 고마워요. ㅎㅎ

  2. 알퐁 2015/08/15 07:45

    옥수수를 사카린대신에 소금을 넉넉히 넣고 삶으시면 단맛이 더합니다.
    과일, 특히 수박은 단연 우리나라 것이 훨씬 맛있는데, 단 하나 옥수수는 뉴질 것이 맛있습니다. 찰지지는 않지만 물이 많아서 옆사람한테까지 튈 정도입니다.부드럽고 단물 많고 아기속살 같이 여릿여릿한 단맛이에요. 뜨거울 때 버터를 척 올리면 바로 녹으면서 구수한 버터와 달큼한 옥수수가 ....얌얌!
    몇 년 전 우리나라 갔을 때 거리에서 강원도 찰옥수수 사서 너무 딱딱해서 다 못 먹었던 기억이...

    수박... 가슴이 애릿해집니다 ㅜㅜ 언제 가서 먹어 보나 ㅜㅜ

    • 제비 2015/08/20 14:04

      거리에서 파는 옥수수가 딱딱했다면 따 놓은지 오래된 옥수수라서 그럴 거예요..그런 옥수수는 아무리 삶아도 부드러워지지 않아요.
      옥수수는 바로 따서 삶으면 찰지고 부드럽고 맛나지요..푹 삶아서 알이 툭툭 터지는 찰옥수수..전 찰옥수수 광팬입니다 ㅋㅋ
      수박 한 덩어리 보내드리고 싶네요 ㅠㅠ

  3. huiya 2015/08/21 17:57

    창고에 넣을 선반은 저도 썼던 거네요.

    여름엔 옥수수와 수박 좋지요...요전에 수박을 사러 갔더니,
    크기는 형편없이 작아졌으면서 가격은 엄청 올랐더군요.
    수박시즌이 끝난 걸로 했어요.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큰 수박을 봤더니, 가격이 7800엔이라,
    누가 저런 수박을 살까, 마음이 복잡해졌어요.

    • 제비 2015/08/29 22:03

      이제 가을이면 또 맛난 것들이 줄줄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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