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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비 오는 날 2015/07/18

by jebi1009 2018. 12. 27.


       

지난번 간청재에는 고급인력(?)이 둘씩이나 합류했다.
특히 풀 뽑기를 매우 좋아하는 설님을 위해 무성한 풀을 자랑하는 한 구역을 남겨 두었다.(우리는 그곳을 A구역이라 부른다)
사실 뽑다 뽑다 지쳐 그 곳은 손 대지 못한 곳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숨긴 채 설님과 너도님을 위해 특별히 남겨 두었다며
풀을 뿌리째 뽑아 내는 쾌감을 느끼려면 500원 씩 받아야 한다며 큰 소리 치고 A구역을 내어 주었다. ㅎㅎ
사람 손이 무섭다고..오후가 들어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서도 A구역을 깨끗이 정리하였다.
훌륭한 '놉'을 데려왔다고 만족해 했다. ㅎㅎ


  A구역을 접수해 가는 두 일꾼.


아쉽게도 오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다음날까지 하루 종일 비가 내려 훌륭한 '놉'은 거기까지였다.
대신에 아침에 일어나 눈꼽도 떼지 않고 파자마 바람으로 누마루에 앉아 비 구경을 실컷 하였다.
서로 궁뎅이 붙이는 자리만 바꿔가며 하루 종일 비 구경하며 수다를 떨어댔다.
출출하면 감자를 강판에 갈아 감자전도 부쳐 먹으면서 말이다.
완벽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비 내리는 것만 보며 하루를 보냈다.
비 내리는 날은 누마루가 짱이다.

비가 내리니 다른 '마당쇠'가 등장했다.
태풍이 다가오고 비가 하루 종일 내리자 용가리는 앙증맞은 내 물방울무늬 비옷을 빌려 입고
쓰러진 토마토를 세우고 아궁이에 물이 차는 것을 걱정하며 물 빠지는 고랑을 파고
우수구를 파 내며 집 주변을 살폈다.
그 모습을 누마루에서 지켜보며 '마님'의 기분을 한껏 내었다. ㅎㅎ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용가리는 점점 바빠지고...



  마당쇠가 누마루에서 지켜보던 마님께 따다 바친 오이 ㅎㅎ



마을 까페 '안녕'에 새로운 메뉴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침 첫차로 내려오는 설님을 픽업해서 오랜만에 까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용가리와 둘이 있을 때는 간청재에서 바로 지척인데도 팥빙수 한 번 먹으러 가게 되지가 않는다.
안녕에 가 본지 거의 일년은 되는 것 같다.
까페 주인 보름씨는 이제 안주인티가 팍팍 나며 훨씬 더 여유있어보였다.
남편이 아내에게 바치는 결혼 1주년 기념 시는 이제 2주년 기념 시로 바뀌었다.
이 젊은 부부의 향기가 이제 점점 더 그윽해지는 일만 남은 것 같다.



팥빙수와 수제 요구르트. 




샐러드 국수가 나오자 우와~
꽃밭처럼 이쁜 국수가 나왔다.
간청재에서 지내면서 오랜만의 호사다.
예쁘고 맛도 좋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예쁘게 만든 음식은 예뻐보이기는 하지만 맛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샐러드 국수를 먹고 와서 저녁에 누마루에서 부추 깻잎 팍팍 썰어 넣고 부침개를 부쳐 먹으니
설님 너도님이 '너도 안녕처럼 꽃도 얹고 요사를 좀 부려봐라..ㅋ'하신다.
글쎄...
나는 옛날부터 커다란 접시에 잘 차린 음식보다는 양푼이나 냄비째로 먹는 것을 더 좋아했다.
엄마가 돼지고기 수육을 하는 날이면 도마 위에 썰어 놓은 고기를 집어 먹는 것이 더 맛있었다.
수육을 예쁜 접시에 담아서 상을 차리면 나는 별로 먹지 않았다.
부침개도 한 장 부쳐 후라이팬에 그대로 놓고 뜯어 먹는 것이 더 맛있다.
반듯하게 잘라서 예쁜 접시에 담아 놓으면 별로 땡기지 않는다.
라면을 먹을 때도 그릇에 담아 먹어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뚝배기 냄비 양푼이가 그냥 밥상에 오른다.
양은 냄비에 먹는 라면, 이 빠진 사발에 마시는 막걸리가 더 맛있는 것을...
우아하고 이쁘게 차려 먹기는 틀린 것 같다.
설거지 거리를 줄이려는 게으름도 한 몫하고 말이다...ㅋ







  꽃밭 같은 밥상과 매우 비교되는 밥상이다.
  하지만 생긴 대로 살아야지 뭐 어쩌겠나....쩝...


태풍이 지나가던 날 간청재 구들방에서 잠들면서 정말 큰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잠결에도 이렇게 태풍의 언저리가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는 비가 그쳤지만 깻단이 두 개 넘어가고 수레국화는 모두 누워버렸다.
비가 너무 내리지 않아도,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해도 모두 걱정되고 힘든 것이 시골살이다.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비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좋아하는 것 또한 시골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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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ippy 2015/07/19 00:22

    시골살이에 멋이나 예쁜 짓(?)은 아주 가끔 하는 것이 정상 아닐까요? ㅎ...저도 시골로 구경가면 까페 '안녕' 같은 곳도 좋겠지만, 평상에 퍼질러 앉아 장작 냄새 베어 나오고 슥슥 대충 덤펑덤펑 담아 나오는 밥상을 받는 것이 더 좋은 걸요. ^^

    • 제비 2015/07/29 14:17

      저도 가끔은 예쁜 짓을 좀 할 날이 오겠지요? ㅎㅎ

  2. 노랑기자 2015/07/19 08:40

    음식 솜씨가 좋아 보입니다.

    • 제비 2015/07/29 14:19

      네..까페 '안녕'의 샐러드 국수, 팥빙수 다 맛있어요~

  3. 알퐁 2015/07/20 21:01

    음식이 다 맛있어 보입니다. 스텡 쟁반 짱입니다. 주막 같아요. 그럼 제비님은 주모?

    • 제비 2015/07/29 14:22

      정말 스텡쟁반 짱입니다. 다리가 달린 것도 샀는데 밥상으로도 짱이고요...그런데 이번에 잠시 방심하는 사이 바람에 날라가서 개골창에 빠졌네요 ㅠ
      내가 아끼던 밥상이었는데 흑흑흑..

  4. 벨라줌마 2015/07/20 21:13

    너도님이 이곳에서 고급인력이시라니 터무니없이 그냥 반가운 마음입니다 ㅎㅎㅎ
    예쁘게 꾸며진 밥상도 소박한 밥상도 내어 오는 사람 마음을 받아 먹는 것이니 모두 맛나지요.
    근데 저도 늘 그립다 그립다 노래를 부르는 밥상은 시골 외할머님이 차려주시던 그 소박하다 못해 투박 했던 밥상이랍니다 ^^
    제비님 밥상, 너무 맛있어보여 그냥 숟가락 얻고 낑겨 앉고 싶은 마음입니다 ㅎㅎㅎㅎ

    • 제비 2015/07/29 14:24

      그럼요 남이 차려주는 밥상은 다 맛있지요 ㅎㅎ
      그리고 저는 밥상 보다는 술상을 차리는디요..괜찮으시다면 언제나 낑겨 앉으시는 것 환영입니다~~

  5. WallytheCat 2015/07/23 01:04

    '시골살이'란 표현이 자연스러운 걸 보니, 이제 제비님도 시골살이에 익숙해지신 것 같네요.
    씨 뿌리고 힘들게 돌본 후 얻은 싱싱한 채소를 밥상 위에 올릴 수 있으니, 복 받으신 삶 맞습니다.
    제비님 생각하면 괜시리 노란 양은주전자와 막걸리 잔은 잘 있을까를 떠올리며 웃습니다. ㅎㅎ

    • 제비 2015/07/29 14:26

      노란 양은주전자와 막걸리 잔 잘 있습니다 ㅎㅎ
      뽀얀 막걸리 담아 왈리님과 한 잔 할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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