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떠나셨다.
실상사 극락전에 계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봉암사로 떠나셨다.
지리산으로 내려온지 한 달 만에 스님은 휑 하니 떠나셨다.
'우리가 귀찮게 할까봐 도망가시는거죠?'
섭섭한 마음에 심통도 부리지만 '어찌 그리 되었네...' 하실 뿐...
봉암사는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
담벼락 높은 수도원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딸아이 내려왔을 때
스님할아버지는 이제 공부만 하는 곳으로 떠나신다..했더니
'어 끔찍해' 이런다.
전화도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공부만 해야 한다니 딸아이 입에서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말 ㅎㅎ
비오는 수요일 스님과 점심을 함께 했다. 옆 골짜기 스님도 오셨다.
'느 집에 먹을 것도 없는데 그냥 한 그릇 사 먹지...'
스님 말씀대로 뭐 사실 먹을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지만 교자상 한 번 펴 드린다 약속 했으니,
그리고 우리집에서 식사 한 번 해 드리고 싶어서 집에서 먹었다.
특별한 음식 솜씨가 필요하지 않은 월남쌈..
그릇도 몽땅 버리고 내려와 옹색하지만 나름 고군분투했다.
비가 내려 따끈한 멸치국물 국수도 준비했다. 특별히 손님맞이 고명도 만들었다.
달걀지단과 표고버섯, 호박, 김...
용가리가 놀란다. 절대로 우리가 먹을 때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ㅋ
우리는 아무것도 얹어 먹지 않는다. 왜? 귀찮으니까...
월남쌈은 차가운 음식이라 비 내리는 날에 딱 들어 맞는 음식은 아니지만
스님이 유난히 비 오는 것을 좋아하시니 음식도 분위기도 다 좋았다.
남인수의 '봄비'도 함께 듣고 비 오는 소리도 함께 듣고...
이번에 출간하신 '석정집'...스님 책 출간하실 때마다 챙겨 주시는데 처음부터 끝가지 읽은 책이 없네..ㅠㅠ 언제쯤이면 나도 스님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휘휴~
세상사 알 수 없는 것이
지리산 골짜기로 내려오면서 스님과 더 자주 볼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네...
까칠한 성품에 뭐 그리 자상하지도 않으시지만 그래도 조직의 큰 형님 밑에 딸린 쫄따구 같은 마음이었는데
이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구나....힝~
스님 봉암사로 이사하는 날 함께 가려고 했는데 스님이 말리셨다.
'느그들은 일도 못하는데 뭐 하러 와...여러 사람 올 필요 있나..'
그래서 떠나시기 전 날 잠시 뵙고 오는 데 용가리가 그런다.
'어제 오늘 괜히 우울했는데 스님 가시는 것 때문에 그랬나...'
해질녘 산그림자가 붉게 물드는 것을 보면서 용가리와 나는 소주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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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법이 어딨냐고, 술 왕창 마시고 꼬장 부릴려고 했는데 이마저 허락치 않는 나의 현실.
그 좋은 비오는 날, 비 오닌 환자들 너무 쳐지고 잠만 자서 우울해져 '비야 제발 오지마라'고 빌었단 사실.
재봉털 보살님이 꼬장 한 번 부려 주셔야 했는디 ㅎㅎ
너무 지치지 않게 잘 조절하시며 간병하셔요
상차림이 정갈하고 예뻐요.
보기 좋아 맛도 좋을 듯합니다.
맛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맛입니다. 원 재료의 맛 ㅋ
어쩌나요, 그리 멀리 가셨다니, 제 마음이 다 허전하네요. ㅜㅜ
연줄을 아주 튼튼하고 긴 걸로 바꿔 매셔야겠어요.
아...연줄을 아주 튼튼하고 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