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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비 오는 날 2016/05/04

by jebi1009 2018. 12. 27.


       

그저께 밤부터 비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어제는 하루종일 강풍이 불고 비가 내렸다.

간청재에서 듣는 바람 소리는 내가 살면서 들었던 바람 소리와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간청재 구석구석에서 나는 여러가지 소리와 맞물려 자연현상의 생생한 음향을 온 몸으로 느낄 수있다.

잠시 밖으로 나가면 산에 있는 나무들이 흔들리며 거대한 파도 소리가 들린다.

이 파도 소리가 들리면 아직 간청재에는 큰 바람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잠시 후면 거대한 바람이 간청재를 후려친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그렇게 후려치는 바람 소리를 듣다 보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지붕이 날아가면 어쩌지? 지붕 새로 하려면 2,3천은 든다는데....그럼 그 정도 돈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하나?

누구는 자신의 장례식 비용 3백만원만 통장에 있으면 된다고 그 이상의 돈이 필요치 않다고 했는데

지붕값 2,3천만원이면 너무 많은데 어쩌지? 그 정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큰 태풍 때(태풍 이름 까먹었다) 도솔암 지붕 날아가 헬기 띄워 공사하던 것을 생각하면서 걱정은 꼬리를 문다..

그러다 까짓거 지붕 날아가면 비닐 덮고 살지 뭐... 한 방에 걱정의 꼬리를 자른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익숙해지는 것이다.

지난번 바람 불 때는 무섭고 걱정이 되어서 잠을 설쳤었는데 이제는 가끔 큰 바람 소리에 우와~ 하면서 잘 잔다.

비 내리고 바람 불면 바깥 일을 못하니 집안에 콕 박혀 있는다.

어제 용가리는 기타를 6시간 이상 맹연습을 했고, 나는 뜨거운 물 받아 반신욕하고 책도 읽고 인터넷도 하고...


비가 오면 이상한 흥(? 기분이 가라앉으면서도 설레고 싱숭생숭하고..)이 생겨 들뜨게 된다.

저번 곡우穀雨때는 비가 참 예쁘게 왔다.

바람도 없고 촉촉하게...텃밭의 아이들에게 골고루 골고루... 예쁘게 내렸다.

곡우에 비 내리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니...인간 황** 많이 변했다. 이런 날이 내게 올 줄이야!!

언젠가 용가리는 일하러 나갈 때 양말 속에 바짓가랑이를 집어 넣으며(장화 신기가 편하다) 그랬다.

인간 박** 많이 변했다. 양말 속에 바지 집어 넣을 줄 누가 알았어..이런 날이 올 줄이야!!

어쨌든 비오는 날의 흥을 주체 못해 청요리에 한 잔 했다.

그것도 인월 산수림 고급 청요리 ㅎㅎ

전화 해서 주문하고 출발~ 인월까지는 30분 조금 넘는다.

양장피가 딱이었지만 어째 이 날은 해물누룽지탕이 먹고 싶어졌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뜨끈한 소스와 해산물....물론 집으로 가져오니 치익 소리는 못 듣겠지만 그래도 해물누룽지탕에 삘이 꽂혔다. 양장피 보다 1만원이나 더 삐싸 거금을 투척했다.

매번 북적거려 오래 기다리고, 예약 손님 두어팀 있으면 요리도 먹을 수 없었던 산수림이랑 달리

한적한 시간에 가니 좋았다.

마무리 되는 요리를 기다리니 아들의 요리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주인 할아버지가

마침 오늘 좋은 송이가 들어 왔다며 송이를 직접 보여 주신다.

그리고는 주방에 대고 '송이 넣었냐?' 소리치신다. '네 넣었어요' 아들의 대답.

향 좋은 자연송이가 들어간 해물누룽지탕...비가 내리지만 속도를 조금 더 낸다.

이렇게 곡우의 비 오는 날 흥을 고급스럽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강풍을 동반한 비 내리는 날은 좀 다르다.

집 안팎을 여러 번 살피고 살짝 긴장한다. 뭐 그 긴장이 금방 풀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ㅎㅎ

그리고 비 내리는 날의 흥을 그냥 집에 있는 것들로 풀어야 한다. 주종 불문, 안주 불문...아무거나...


간정재에 내려오면서 또 달라진 것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오전에 전화가 온다.

'지리산에 비가 많이 온다는데 괜찮냐?'

'지리산에 바람이 많이 분다는데 괜찮냐?'

우리 엄마 전화다. 독거 노인이 사지육신 멀쩡한 딸내미 걱정은....

난 항상 퉁명스럽게 '난 괜찮으니 엄마나 잘 챙기시라'고 말한다.

그러면 옆에서 용가리는 어머니에게 말 좀 이쁘게 하라고 핀잔을 준다.

그런데 어제는 엄마 전화 말고 여러 통의 전화가 왔었다.

내 휴대폰에 오빠 대신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오빠.

이번 주말 양쪽 부모님께 얼굴 보여 드리러 서울에 가는데 어버이날도 있으니 함께 밥 먹자는 전화.

'너 뭐 먹고 싶냐?'

엄청 다정하게 물어보지만 나는 다 안다. 말 해도 소용 없다는 것을...

자기가 먹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으로 예약할 것이라는 걸....

'니 딸이 너희들 산 속에 살아서 회 먹고 싶어한다던데'

'어 나 회 먹고 싶어'

'근데 내가 아는 일식집이 어쩌고 저쩌고.. 그 날은 어버이날이라 예약이 어쩌고 저쩌고...'

'아무거나 먹어'

그래서 결국 갈비집이다. 그냥 갈비집에 예약 하면 될 일이지 뭐하러 물어봐?


그리고 또 한 통의 전화. 소풍 주인장의 전화였다. 커피 주문 전화인가?

조금 의외였고 당황했다.

비바람 몰아치는 날 오전에 이미 거나하게 취하셨다.

스님이 안 계시니 너무 허전하고 힘들다....

휘휴~ 그냥 한숨만 나오고 아저씨에게 건네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스님이 여러 사람 힘들게 하네...

함양의 요가보살도 한의원 원장님도 천재조각가도 다 힘들 것이다...


스님 떠나시기 며칠 전 천재조각가(불상을 조각하는데 우리가 부르는 별명이다)를 잠깐 만났었다.

친구 한 분 없어지는거죠 뭐....

천재조각가는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리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아니 절대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적당한 말대접도 없고 필요한 말만 한다. 그냥 하는 말은 없다.

당연히 객관적 용무가 없으면 먼저 전화하는 일도 없다. 아니 없을 것이다...내가 다 아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아무 용무 없이 스님께는 전화한다. 이것은 내가 스님 옆에서 슬쩍 봐서 안다.

일도 끝나고 날도 그러니 어디어디 가자...밥 먹자... 대충 이런 내용으로 전화한 것 같은데

천재조각가에게 이런 면이 있다니...했었다.

스님 이사하시는 날 직접 만들어 드린 책상과 작은 수납장, 그리고 몇 개 안되는 보따리를 자신의 트럭에 싣고 함께 다녀왔다.

스님과 친구 먹은 30대 젊은 천재조각가도 비 오는 날 힘들겠지...


오늘은 화창하게 개었지만 바람의 기세가 여전하다.

잠시 나가 보니 거대한 파도 소리와 순식간에 후려치는 소리가 내 한 몸 휙 날려 버릴 것만 같다.

고추와 토마토 모종이 하나 씩 부러졌다 ㅠㅠ

그 와중에 꽃이 피었다.

올해 첫 수레국화다. 분명히 그저께는 안 피었었는데 어제 비바람 속에 핀 것이다...

스님이 심어 주신 홍매도 오랜 몸살 끝에 꽃이 피고 그 자리에 첫 매실이 달렸다.








정말 자연은 감동할 거리를 계속 준다.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

이렇게 사람을 갖고 노니 어쩌겠는가..그냥 깨갱하고 살아야지...


기타 치던 용가리가 밖에 나가 바람 세차게 맞으며 모종들 넘어지지 않게 대를 세우고 끈으로 묶어주고 있다.

나는 이 바람을 뚫고 고사리를 꺾으러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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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allytheCat 2016/05/05 22:47

    비바람이 심하게 불 때 지붕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지붕을 소유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걱정거리인 모양입니다. 저도 걱정 좀 하다가, '그래, 그런 자연재해는 집보험이 해결해 준다니 걱정하지 말자' 하고 맙니다. 청색 잉크빛 수레국화가 신통방통합니다. 전 그 색의 수레국화가 가장 예쁜 것 같아요. 이 다음에 지리산에 가게 되면 비사교적인 불상조각가는 못 만나더라도 그 작품은 구경하고 싶네요. ㅎㅎ

    • 제비 2016/05/16 10:44

      지붕을 소유한 사람들..왠지 멋져보이는데요 ㅎㅎ
      지금은 수레국화가 여러가지색 예쁘게 피고 있어요..
      전에는 꽃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은 눈길 가는 곳에 꽃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왈리님 감사!

  2. 알퐁 2016/05/06 15:12

    두번째 사진 캬~ 마치 공룡의 눈을 본 듯합니다 캬~

    • 제비 2016/05/16 10:45

      공룡 만나보셨나봐요 ㅎㅎ

    • 알퐁 2016/05/1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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