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이 없다.
물론 서울에서의 하루하루도 무슨 일인가 끊임 없이 일어났겠지만 그날이 그날인 것처럼 느꼈는데
이곳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고 너무도 조용하지만 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바닷가의 오두막을 열면서 온 몸으로 새로움을 느꼈듯이...
태양이, 하늘이, 바람이, 파도 소리가 조르바에게는 날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웠듯이 말이다.
조용한 가운데 엄청 큰 사건이 있기는 했다.
잠시 외출하고 돌아오니 툇마루에 새 깃털이 조금 흩어져 있었다.
얘네들이 서로 싸웠나....가끔 새들이 서로 티격 태격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그리고는 무심코 마루 위를 오르다 정말 간 떨어질 뻔 했다.
마루 아래에 새 한 마리가 누워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니 죽은 것 같았다....
가까이서 죽은 새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측은하거나 안타까운 마음 보다는 무섭고 끔찍했다.
어찌 해야 하나....어떻게 옮기나....
일단 집 옆에 있는 산 비탈에 가서 새 묻을 자리를 마련했다.
땅이 어찌나 안 파지는지 용가리는 땀을 됫박은 흘렸다.
일단 어찌어찌 땅은 팠는데 어떻게 옮기지?
고민 끝에 용가리가 삽에 얹어 이동했다.
나는 가까이 가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용가리가 묻어 주고 내려 오는 것만 봤다.
좋은 곳에 잘 가라는 말을 해 주고 내려 오는 용가리를 보자 그제서야 나도 새의 죽음이 죽음으로 보였다.
그제서야 마음이 짠했다. 어찌 그리 되었니...잘 가라....
정황을 살펴보니 아무래도 유리창에 부딪힌 것 같다. 에휴~
다시는 이런 것을 보고 싶지 않지만 내 뜻대로 되지는 않겠지...이런 것도 익숙해져야 하나....
누마루 앞에 항상 쥐똥(?)이 한 바가지다.
똥을 잘 분석하지 못해 확실히 쥐라는 것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쥐 비슷한 것이 밤바다 와서는 똥을 한 바가지 씩 싸 놓고 간다. 여러 마리가 와서 쌀 수도 있다.
왜 하필 누마루 앞인가...그곳이 편안해서 똥이 잘 나오남?
용가리와 나는 겁이라도 주려고 쥐덫을 놓으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혹시 정말 쥐덫에 걸리면 그 생명체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너무도 끔찍하여 그만두었다.
그래서 제발 다른 곳에 가서 똥을 싸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벌레라도 죽음을 보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다.
조용조용한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잡초가 쑥쑥 올라오기도 하지만 뿌린 씨앗에서 싹도 틔우고 어느새 열매도 맺는다.
모르는 사이 어느날 매달린 열매에 화들짝 놀란다.
피망
쌀집에서 사다 뿌린 들깨가 올라왔다. 정말 땅이 엄청 딱딱한데 어찌 뚫고 올라오는지....
열무씨도 싹이 올라왔다.
우여곡절 끝에 심은 대파가 쑥쑥 자란 것 같아 하나만 뽑아 보았다. 기념으로 골뱅이 파무침 해 먹었다.
사람도 움직인다.
용가리와 내가 사부작사부작 움직여 앞쪽 툇마루를 보수했다.
칠이 벗겨진 부분을 사포로 잘 다듬어서 오일스텐을 칠했다.
창고 벽을 칠하고 남은 것을 사용했는데 색깔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별한 일을 계획하거나 바쁜 일도 없지만 하루의 시간은 정말 빨리 간다.
그리고 매일 새로운 날이 또 찾아 온다.
정말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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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농사꾼이 다 되신거 같아 제가 다 흐뭇합니다.
너무 보기 좋아요!
잘 지내시죠? 이제 하동 어디쯤 자리 잡으셨나요?
농사꾼이라니 지나가던 벌레들이 웃겠습니다 ㅎㅎㅎ
새 한 마리의 죽음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사시는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가끔씩 유리창에 머리를 심하게 박고 어질어질 헤매다 다시 날아가는 새들이나 곤충들을 보자면 유리창을 달고 사는 게 미안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주말 농부로 사실 때와 풀타임 농촌 거주자가 되신 지금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네요. 어떤 분 말씀대로 집이며 밭이며가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첫 해에 너무 무리하면 지치실지도 모르니, 쉬엄쉬엄 살살 하세요~. ㅎㅎ
내년에는 손 놓고 에라 모르겠다 할지도 모르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