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딱 일년에 6번만 봐야 한다.
설날, 추석, 어버이날, 엄마생신, 아빠기일, 아빠생신
근데 지난번 3월 1일 아빠 생신 때 아빠에게 다녀오면서 점심으로 짱개집에서 낯술 좀 먹다가
괜히 친한 척 하느라 지리산에 같이 간다고 약속해 버린 것이다.
어쨌든 이번 동행으로 숙제는 했다.
스님은 동네 사람들과 (항우씨를 비롯한 그 주변인들..)울릉도 가셨다가 바로 어제 밤 늦게 도착하셨다 했다.
우리와 함께 다니는 중에도 스님을 찾는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알고 보니 울릉도 맴버들 중 아직 회포를 덜 푼 사람들이 모여 여행 정리를 빙자한 거나한 술자리를
하고 있었던 것.
수월암 들어가기 전 소풍에 들렀다.
항우씨와 그의 동반자가 될 뻔 하다가 지금도 그냥 동반자처럼(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지내는 분,
그리고 내가 처음 뵙는 분이 함께 계시다 스님을 보고 반색하며 맞이한다.
커피를 주문했는데 커피집에 커피가 떨어졌단다 ㅎㅎ
항우씨는 소주 손드세요..맥주 손드세요...이러더니 한보따리 사오신다.
그의 동반자는 오징어를 굽고..
무슨 커피집이 이러냐...저녁 7시도 되기 전에 커피 떨어졌다고 안 팔고 주인이 가게 가서 술 사와
커피 대신 술 마시라고 하고 ㅎㅎㅎ
짱개집에서 빼갈 7병을 마시고 온 그분들...다시 소주를 마신다..안주로 고로쇠물을 겸해서..
처음 뵙는 분은 알고 보니 오빠와 동갑이었는데 그 맴버들 중 가장 막내이고 스님의 귀염둥이란다.
항우씨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전작이 있었는지 티도 안나는데, 그 분은 취기가 역력하고 발음이 꼬인다 ㅋ
스님 옆에서 연신 껴안고 가슴을 파고 든다...
스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셨을 때 울릉도 여행 재미있었느냐는 질문에 다시는 안 갈 거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모두 있는 자리에서는 울릉도가 너무 좋아서 다시 가고 싶다나?
내가 찔렀다.
아까는 다시는 안 가신다면서요?
아니..그게...스님이 너무 걸으니까 힘들어 죽을뻔 해서 그렇지....
그러자 항우씨도 동반자분도 거든다.
스님 너무하셨어..한 5킬로가 넘는 길을 30분도 안 걸리게 걸었으니..
헉!!
버스 기다리느니 그냥 걸어간 것이지...누가 오라 했나..
스님이 말씀하신다.
스님은 전에전에 용가리와 내가 갔을 때
우리 반야봉 가서 철쭉이나 보고 올까? 요새 철쭉이 한창인데..
라고 하셔서 난 반야봉이 뒷동산 정도 되는 줄 알았다.
그때 안 간 것이 너무너무 다행이다...
그런데 그 막내분이 자꾸 오빠에게 안티를 건다.
오빠는 까칠하다.
사람들은 취해서 그러니까 이해하라고..그러면서 막내분을 나무란다..
나도 있고 용가리도 있었는데 유독 오빠에게 계속 그런다.
오빠는 유연하려고 한는 것 같았지만 그곳에서 튄다.
스님은 처음 그분들에게 오빠를 소개할 때 큰형님 아들, 우리집 장손이라 했다.
항우씨는 '너희는 조카지만 나는 스님을 아버지라 생각하니 내가 형님이다.'
그러면서 말을 놓으셨다. 여지껏 봐왔지만 깍듯이 존대를 하던 항우씨가 형님이라며 말을 놓으셨다.
물론 술기운도 있으셨겠지만...그러나 맨정신으로 본 것도 몇 번 안 된다...
장손...뭔가 달랐다...그게 뭘까....
한판 웃고 떠들다(오빠만 빼고) 항우씨와 막내분은 푹....
밑에 있는 소주병과 비교해 보면 꼬리겨우살이 술병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을 듯...
수월암으로 돌아왔다.
기나긴 밤, 특별히 장손이 왔으니 엄청나게 긴 병에 담긴 '꼬리겨우살이'로 담근 약술을 내주셨다.
겨우살이 중에 꼬리겨우살이는 뭐 어쩌구..하여튼 더 특별하고 귀한 것이라며 누군가 스님께 드린 것이란다.
저거 들고 오기도 힘들었겠다...
오빠가 말한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삼촌에 대해 공부 좀 했습니다.
스님 말씀하시길, 그거 다 뻥이야..믿지 마...
여기저기 나눠드리고 정견스님 몫으로 남은 던킨도너스를 안주 삼아
우리가 모르는 젊은 날의 삼촌들 이야기(아빠는 5형제가 있으시다),
나와는 입장이 달랐더 오빠가 아는 삼촌들 이야기로 밤은 깊어갔다.
할아버지에게 엄청 맞으신 적 있으시다면서요? 오빠가 묻는다.
내가 맞을 짓을 했지...
학교 수업료를 써버렸단다. 학교에서 연락이 오자 처음 한 번은 할아버지가 쿨하게 봐주시고
어렵게 어렵게 할머니가 다시 마련해 주셨단다.
당시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이셨는데 자식들에게는 학교수업료와 굶지 않을 정도의 생활수준만을 제공하시고 나머지는 학교 아이들에게 다 쓰셨단다.
지금도 그 초등학교에 가면 기념비(?) 뭐 이런게 있다는데...
어쨌든....근데 또 수업료를 써버렸단다.
그때는 방문 잠가 놓고 엄청 맞으셨단다..간도 크시지 열일곱 어린 나이에 수업료를 빼돌리다니..
왜그러셨어요?
그냥...그게 내 길이 아닌 것 같았어...
돈으로 뭐하셨어요?
빵사먹고 영화보고 책 사보고 산에 다니고 그랬지...
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 간이 크시다.
수업료 삥땅에, 가출에..가출하여 무전여행 말 그대로 무전!
산에 가는 것이 좋았고 시 읽는 것이 좋았고
학교 다니면서 그래도 열심히 한 것은 문학이었단다. 문예지에 당선도 되고...
가출하여 항구터미널에서 자면서 친구도 만났다.
서로 잘 통하고 친해졌는데 어느날 대학생 등산부를 따라 겨울 산에 올랐다 동사하고 말았단다.
그 후 해인사로 출가하시고 처음으로 받은 일이 일꾼들에게 밥을 져 나르는 일이었는데
출가하시고 처음 밥 져 나르다 만난 속인이 바로 죽은 친구와 함께 산에 오른 등산부 사람들이었단다.
스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싸해지고 저 깊은 곳에서 큰 숨이 나오기도 한다.
운명...인연...세상...사람....
아침, 좋은 술에 좋은 공기로 숙취 없이 자고 있는데 오빠가 난리다.
새벽(?)부터 혼자 일어나 지금 떠나자고 깨운다.
모른척하고 안 일어났다..혼자 슬그머니 나간다..
왜저래 왜저래 잠깼으면 산책이라도 하던지, 어제부텀 실상사 아는 척 하더니 거기나 가던지..
속으로 계속 욕하면서 눈 감고 안 일어났다.
다시 들어와 난리다.
짜증나 짜증나...못 견디고 일어났다..
그래서 결국 7시 좀 넘어 수월암을 나왔다.
순한 용가리도 이 시점에서 다시는 오빠랑 오지 말자...이랬다.
스님은 장손 간다니까 어제 가져가라 하셨던 꼬리겨우살이 술을 그 아침에 손수 병에 담아 주신다.
폐만 끼치고 갑니다. 다음에 꼭 처자식 데리고 찾아 뵙겠습니다.
저 입에 발린 가식적인 멘트...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들리건만
스님은 폐는 무슨..그런 말 하지 마라..이러시며 그윽한 눈으로 오빠를 바라본다.
머리가 복잡하다.
혈육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함양 터미널에서 만나는 순간부터 터미널에 다시 내려주는 순간까지 함께 했던
오빠에 대해 실컷 욕하고 나니까 속이 좀 풀린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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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전에 말했던 중미산인가 유명산인가의 일화가 생각나는걸요.
갑자기 비 쏟아지길래 고기 궈먹고 집에 왔더니 아침 아홉시더라는..
우린 어떻게하면 조금 더 뭉기적거리며 지리산 안에 있을까 궁리하는데, 아깝다`~~
다음번 지리산행에는 꼭 우리집 마당의 회화나무 창원마을로 옮겨 가도록.. 올해의 숙제.
집 자리 좀 잡으면 가져가려고요..
나무도 자리 여러번 옮기면 안 좋다고 해서 딱 자리 봐서 심으려고요.
전 아직 지리산 근처도 못 가봤어요. ㅎ...원래 산이라면 그저 그곳에 절이 있어 가는 정도에다 딱 절까지만 갔다가 내려오는 게 전부거든요. 산은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기'위해서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
저도 오빠가 있지만, 1년에 두 번 전화로 안부나 묻는 정도지요. 무소식은 희소식이고, 서로 모를 수록 편하다가 불문율입니다. 자라면서도 셋이 다 제 각각...ㅎ...오히려 부모님 가시고 편해진 부분도 있어요. 이젠 정말 서로 제 인생만 알아서 살면 되는 구나, 더 할 것고 덜 할 것도 없이 같이 늙어가니 말입니다. 거의 남남처럼 독립적으로 살지요. 그게 맞고 편한 집도 있어요.
저도 지리산 한 번도 올라가지는 않았어요.
항상 그 언저리에서 맴돌지 ㅎㅎㅎ
더 많이 늙으면 오빠가 밉지 않을까요..
오빠는 결혼하면 남보다도 못해요. 지네 식구만 챙기거든요.
암튼 이상한 種 ㅎㅎ...
지리산에 가서 더 안겨있다 오시지 흰새벽부터...참...
우리 오빠는 차라리 지네 식구만 챙기는 그런 면이라도 있었으면 좋겄어요...
그도 나를 보면 이상하겄지만 참 이상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