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다니다 보니 함양도 그리 멀지는 않은 듯...오전 10시가 안 되어서 도착했다.
일단 수월암에 들러 스님 뵙고 실상사 앞 항우아저씨와 함께 창원마을로 출발했다.
막걸리는 남원막걸리가 최고라는 고견을 들어 항우아저씨가 준비해 주신 남원막걸리를 싣고..
동네분들에게 드릴 것은 양이 적은 것 같아 가는 길에 유림에 들러 유림막걸리를 한 말 사고,
아는 사람만 아는 간판도 없는 유명한(?) 두부가게에서 두부도 사서 창원마을로 갔다.
이장님 댁에 들러 준비해 간 떡과 고기 막걸리를 내려 놓고 집터로 갔다.
날씨가 너무 좋아 천왕봉이 확연히 보였고 구름도 너무 예뻤다.
죄송스럽게도 이웃 스님이 먼저 와 계시고 시공해 주실 진주 목수분도 와 계셨다.
돗자리 깔고 하얀 종이 깔고 주섬주섬 챙겨 놓았다.
'지리산 할매는 많이 차리는 것 좋아한다. 이것 저것 다 올려 놔라..' 스님 말씀에
먹으려고 가져갔던 오렌지도 올려 놓고 새우젓도 올려 놓았다 ㅎㅎ
너도님이 뜯지도 않고 가져오신 갓김치장아찌도 올려 놓고..(갓을 장아찌로 담근 것이다.)
설님과 너도님이 준비해 주신 고사상
천왕봉을 바라보며 막걸리 따르고 절 올리고 집 터 여기저기 막걸리를 조금씩 뿌렸다.
설계하신 임소장님 노소장님도, 현장 소장님도,
너무나 고마운 설님 너도님도 함께 절 올리고 막걸리를 뿌려 주셨다.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면서...
비가 올까 걱정했는데 날씨는 너무나 쨍쨍했고 그 아래 앉아 소풍 온 기분으로 음식도 함께 했다.
서로서로 덕담을 건네고 간간히 싱그러운 바람이 불고 햇살은 눈부시고...
떡과 고기 오렌지를 조금씩 담아 앞으로 이웃이 될 쌍둥이네와 하늘길집에도 친히 방문하여 드렸다.
동네분들 것은 이장님댁에 따로 드렸지만 특별히 두 집은 챙겼다. ㅎㅎ
생각해 보니 내가 살면서 음식 갖고 남의 집 방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사 올 때는 아파트 양 옆집에 오렌지 주스 한 병씩 드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음식 싸들고 남의 집 방문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기분 좋았다.
다들 헤어지고 핵심 멤버들은 뒤풀이를 갔다.
일단 마천 짜장면 집에서 우동과 짜장면을 한그릇씩 먹고(배가 엄청 불렀지만 또 먹었다)
스님의 안내로 밤머리재를 넘어 차로 갈 수 있는 청왕봉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갔다.
밤버리재는 그 고개를 넘으려면 밤을 한 말 까먹고 넘어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밤을 한 말씩 먹어야 할 만큼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곳은 희안하게 가을풍경이다. 붉은 단풍이 지천이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도 선선한 것이 계절을 착각하게 만든다. 이 붉은 단풍은 가을이 되면 파랗게 된다고 한다.
붉은 단풍숲은 '어머나'만 하면서 사진 찍을 생각도 못했다.
꼬불꼬불 계속 올라갈수록 공기는 점점 청량해진다.
청정하다, 청량하다...그 곳의 공기를 들이쉬면, 아니 얼굴과 온 몸에 스치는 공기들이 바로 그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에나.....그렇게 높은 산골짜기에도 펜션이....이 곳에 있는 펜션들을 보니 우리 집터에 집 짓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곳에서 시작하면 천왕봉까지 2시간정도면 간다고 한다.
근데....자꾸 말이 달라진다.
처음 스님은 2시간 정도... 용가리와 내가 의욕에 차서 그럼 정말 여기다 차 세우고 다녀오자..하니까
아니 3시간 정도? 그러자 옆에 있는 항우아저씨가 아마 4시간 정도는 잡아야 할거야..
내 생각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면 한 대여섯시간 걸릴 것 같다 ㅠㅠ
물론 스님이야 두세시간이 맞겠지만 말이다.
죽기 전에 천왕봉에 오르는 날이 오겠지....
우리는 그 곳에서 영업을 하지 않는 빈 민박집 마당에 자리 잡고 풍류(?)를 즐겼다.
그런 곳에 있으니 옛날 사람들이 왜 소리 하는 사람, 악사들을 데리고 다녔는지 알 만 하다.
우리 중에 소리할 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아쉬운 대로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사철가'를 들었다.
그러면서 또 옛날 양반들 나쁜 새끼들이라는 성토도 잊지 않았다.ㅎㅎ
이런 험한 곳에 오면서 지들은 가마타고 하인들은 솥단지에 술단지에...
악사들은 악기에..을매나 힘들었을꼬..하면서
다시 실상사 앞으로 돌아오니 하늘의 별들이 내 마음까지 빛나게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가뿐한 몸상태!
전날 과음하고 피곤했을텐데 수월암 부엌방은 마치 말 그대로 회복실 같다.
수월암 뒷동산 아지트에 가서 지리산 공기 담뿍 담고..그 아지트는 멋진 나무와 바위가 있어 정말 환상적이다.
전에 왔을 때는 쨍 하고 추운 날 왔었는데 지금은 울긋불긋 꽃들과 신록이 화사한 계절이다.
어쩜 이렇게 느낌이 다를까...
금대암에서는 지리산 봉우리를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너도님은 이제 자신 있게 천왕봉을 찾을 수 있다 하시지만 나는 아직도...
일요일에는 전날 만큼 선명하게 능선들이 보이지는 않았다. 역쉬 나는 주일에 꼭 절에 들른다 ㅎㅎ
함양 죠샌집에서 조금 이른 점심으로 어탕국수를 한 그릇씩 먹고,
설님의 제안으로 함양 베스킨라빈스에서 입가심으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설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이스크림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소주 반주 하고..용가리는 운전, 설님은 비주류..소주 반 병은 남겨서 가지고 온다.
옛날에는 피같은 술 남기지 않고 죽을 힘을 다 해 마시거나 아님 좀 늙으서는 그냥 남기고 왔는데
이제는 남은 소주 악착같이 들고 나온다.
대낮에 소주 반 병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맛도 괜찮다 ㅎㅎ
남은 소주는 차에 두었다가 서울로 입성할 때 우울함을 달래며 한 잔씩 하는데
이번에는 왠일로 길이 막히지 않아 너무 해가 쨍쨍한 관계로 생략했다.
지금 우리 냉장고에는 '좋은데이' 반 병이 있다 ㅎㅎ
이제 시작이니 산 넘어 산..할 일이 태산이지만 그냥 다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는게 뭐 별거냐...순리대로 되는 대로...
6월 상량식 때에도 즐겁게 잔치를 했으면 좋겠다.
p.s
일욜 우리는 아침에 길을 나서기 위해 복장을 챙기면서 다들 웃었다.
너도님이 '야 내 썬글라스에 시루떡 팥이 범벅이야'
그러자 내가 '내 썬글라스 렌즈에는 장아찌 간장이 눌러 붙었어요'
용가리는 '나는 막걸리' 이러면서 바지에 허옇게 묻은 막걸리를 보여준다.
옆에 있는 설님은 'ㅎㅎㅎ 남들이 보면 잔치 마당에서 질펀하게 뒹굴다 온 사람들인 줄 알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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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축하드립니다. 얼마나 신나고 즐거우실지...까잇 추가 공사비야 또 우찌 되것지요. ^^
천왕봉에 쓰레빠 신고 올라 댕기실 날도 머지 않았네요.
저는 반대로 북쪽으로만 댕겼는데...기대하고 있겠심다. ^^ 고시래~~~
맞아요..까잇꺼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ㅎㅎ
시작이 반 ^^
집은 주인따라 간다는데
아마도 예쁜 집이 나올거 같은데 미리 추카드립니다.
감사드려요~~
편육과 겉절이...ㅠㅠ...너무 맛있겠다. 화창한 날씨에 넉넉한 인심까지 더해져서 즐거우셨겠어요. 피곤도 하시겠고. ㅎ...
축하드리고 산신령님 돌봄으로 무사히 공사가 잘 진행되기를 빕니다. ^^
네 chippy님 덕분으로 잘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