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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부처님과 사람 2013/05/20

by jebi1009 2018. 12. 25.






3일 간 연휴는 무서웠다.
아침 6시 조금 넘어 출발했지만 올림픽대로부터 심상치 않았다.
보통 한 번 쉬는 인삼랜드휴게소는 들어가기도 힘들었고, 덕유산 휴게소에 그렇게 사람 많은 것은 처음 봤다.
여자 화장실은 밖에까지 줄을 서서 그냥 참고 갔다.
지리산 다니면서 가장 오래 걸린 6시간이 조금 넘어 도착했다.
초파일에 수월암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언니가 군대간 조카와 함께 오고 싶다 해서 나선 길인데,
조카는 비상이 걸려 나오지 못해 언니와 우리식구가 함께 했다.
초파일에는 항상 산으로 가버리시던 스님도 언니가 간다니 꼼짝 못하고 수월암에 계셨다.
스님이 신기하게도 초파일에 사라지지 않으시고 계시니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례에 사시는 내외분, 동네분들, 인월에서 오신 분들, 서울서 오신 분들....
손바닥 만한 수월암 마루가 사람들로 넘쳤다.
차 한잔씩을 대접하시던 스님은 사람들이 조금씩의 간격으로 찾아오자
'다방 마담이 하루에 커피를 몇 잔 마신다더니..'
사람들은
'아이고..차 설거지 하기 전에 사람들이 오면 괜찮을텐데..ㅎㅎㅎ'

항우아저씨가 새로 만들어 오신 등도 있고 부처님 앞에는 과일도 있고 떡도 있었다.
떡을 내려 나누면서
'실상사에서 보살이 떡을 가져오길래 여기 떡 먹는 사람도 없고 필요 없으니 가져가시오..했더니
아 그 보살이 누가 스님 드시라 가져옵니까 부처님 드시라 가져왔지 하지 뭐야..그래서 내 암 말도 못했다.'
떡을 나눠 먹으며 사람들은
'그럼 우리들이 다 부처님이네요 ㅎㅎㅎ'



주희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찾아 스님과 함께 보며 웃고...기타 소리는 우아하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아이고 스님 계시네요 항상 초파일에는 안 계시더니..하시며 들어와 인사를 드렸다.
게다가 오늘 저녁에는 실상사에서 하는 초파일 저녁 잔치에 인월한의원 원장님 딸이 특별 출연하여 클래식기타를 연주하기로 되어 있어 전주예고에 다니는 따님과 함께 오셨다.
모인 사람들은 박주희와 원장님 딸을 번갈아 보며
아이고 미래의 예술인들을 만난다며 우리 잊으면 안된다고...니들은 서로 파리에서 만날 것이냐..이러시며 즐거워하셨다.
역시 어딜 가나 젊은 아이들은 사람들에게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준다.
기타리스트가 가지고 있는 기타가 천오백만원이라는 말에 모두 놀라며 한번만 보여달라고..ㅎㅎ
그러다가 소리 좀 듣자고..ㅎㅎ 그래서 결국 저녁 공연 리허설을 수월암에서 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구례에 사시는 내외분들은 올 1월에 결혼식을 올렸단다.
눈이 하얗게 펄펄 내리는 1월 1일 지리산 도솔암에서 스님 앞에서 결혼식을 했단다.
송처사님과 단 둘이 동안거 가셨던 곳이라 하객은 송처사님 한 분.
사진은 스님이 전화기로 찍어 주셨어요...하신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내 가슴이 뭉클한다..
산에 계셨던 그 분은 스님이 워낙 산에 다니시니 산에서 만나셨단다.
지리산 산장에도 계시고 그러다 이제 각시 만나고 구례 섬진강에 자리 잡고 사신단다.
그런데 인상이 좀 이국적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 분 성이 동씨라 하길래 아..동씨요..하니
'이름은 남아입니다.' 하신다. 동남아. 푸하하..
그 분이 ' 원데이 원달라. 사장님 나빠요. 돈 쪼끔 일 많이..'이러신다 ㅋㅋㅋ
실제로 동네 할머니들이 열심히 살라며 김치 같은 것도 주시고 하신단다 ㅎㅎ
유시민 닮았다는 이야기도 듣고 오바마 동생 아바마라는 이야기도 듣는단다.
근데 정말 어찌 보면 유시민 같고 어찌 보면 오바마 같다. ㅎㅎ
옆에 있던 한의원원장님은 난 성이 탈씨요..네?
이름은 북자..인상이 꼭 탈북자 같아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단다.
'얘는 동씨고 나는 탈씨야..근데 이름이 북자 하면 너무 여자 같아서 북철이로 바꿀까 생각 중이야.'

원장님은 얼마 전에 개한테 물렸는데 그 이야기를 하자 그 사모님이 물릴 짓을 하니까 그렇지..이러신다.
원장님은 '아니 남편 편을 들어야지 개편은 드냐...'
'그 개가 쌍거풀이 졌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괜찮던데 자꾸 웃기다고 놀리니까 개가 문 것 아니야.'
'아니야 처음에는 내가 아는 체 하니까 와서 애교를 막 부리다가 갑자기 무는 것은 뭐야 ' 이러시며 토닥거리신다.
아니 개도 쌍거풀이 있어요? 내가 물으니
있어요..좀 코믹해요..
그러자 스님은 쌍거풀 못써..꽃도 그렇고..아 왜 있잖아 겹사쿠라..그건 꽃도 아니야...
이상하게도 그 곳에 쌍거풀이 나밖에 없었다. 나만 뻘쭘했다.

결혼한다고 인사 왔을때 스님께서 신부를 지리산 최고 미녀라 했단다.
그러자 원장님 사모님은
'나도 지리산 최고 미녀인데...스님 저한테도 그러셨잖아요..'
스님은' 아니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니에요 진짜그러셨어요..'
근데 그게 누구 입에서 나왔느냐가 중요하단다. 남편 입이나 본인 입은 안되고 스님 입에서 먼저 나와야 한단다.
누군가 '아니 누구도 결혼 인사와서 스님한테 지리산 최고 미녀 소리 들었다던데..' 하니
사모님은
'내가 가만히 보니 이 타이틀이 계속 되는게 아니고 1기 2기 이렇게 넘어가는데 갈수록 기간이 짦아지네..'
'지리산 최고 미녀면 전라도 경상도를 통틀어 최고 미녀 아닌감?'
너무 웃겼다. 계속 느끼는 것인데 사모님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구례사시는 분을 보며 스님이 그러신다.
'얘랑 산에 다니면 나는 참 안심이 되지 그리고 편하고 물도 갖다주고 밥도 해 주고..'
옆에서 우리가
'사장님 나빠요. 일 많이 돈 쪼끔..ㅎㅎㅎㅎㅎㅎ' 하고 깐죽거리니까
그 분이 그러신다.
'전에 산에 있을 때 제가 생일이었거든요..근데 그 날이 스님 종주 끝내시고 내려가시는 날이었어요.
내려가실 때 오늘 제 생일이라고 했거든요.....그런데요 스님이 내려가셨다가 케이크를 머리에 이고 다시 올라오신거예요. 거리가 9킬로가 넘었거든요..완전 감동이었지요...정말 머리에 이렇게 케이크 상자를 이고 오셨다니까요 그 거리를.....'
아..며칠 간의 고생스러운 산행을 마친고 내려가셔서는 다시 케잌을 사 들고 올라오셨다니
게다가 그 케잌 상자를 들고 산을 오르기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머리에 이고..
그래서 그 생일에 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즐거운 생일 잔치를 했단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수월암 마당에 해당화가 피었다


조금 있으니 동네에서 일 잘 하기로 소문나신 분이 오셨다. 이번에 우리 구들을 놔 주실 분이기도 하다.
그 분도 스님과 산에서 만났단다.
스님이 잘 구슬려서 실상사 귀농학교에 넣어 주셨단다.
'실상사 귀농학교 들어가기 힘들어 내가 빽을 써서 넣어줬지..'
꼭 스님의 빽이라는 것을 강조하신다. ㅎㅎ
그 귀농학교에서 각시도 만나고 아이도 셋이나 낳아 실상사 근방에서 잘 사신다.

우리가 집 짓고 내려 오는 것이 화재가 되자 지리산 근처 땅 이야기가 나왔다.
악양은 지리산 강남이고 이 곳 산내는 분당쯤 된단다.
산청은 어떻고 어디는 수유리 쯤 되고...너무 재밌게 말씀들 하신다.

항우아저씨도 잠깐 들러서 스님께 인사하시고 오늘 대목이니 확 땡겨서 수익 좀 내야 한다고 하시며 가시고,
바쁜 중에도 잠깐씩 들러 스님께 인사를 나누시는 분들이 많다.
나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이런 분들, 이렇게 스님과 인연되어 살아가시는 분들이 모인 곳이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말씀하시는 한마디, 얼굴 표정들이 다 정겹고 따뜻하다.
오바마 동생 아바마 되시는 분은 구례에 꼭 한 번 놀러 오시라며 새집에 놓게 차탁을 예쁘게 깎아 주시겠단다.
지금 시작했는데 우리를 주겠다고 하신다..
나는 도솔암 결혼식부터 머리에 이고 오신 케잌 이야기까지 가슴이 뭉클한데...
사람들은 스님께 너무도 공손히 절하고 그러면서도 어리광도 부리고 즐겁게 농담하고....
정말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가슴이 따뜻하다.
이 분위기. 이 느낌은 뭐지?


  1. 너도바람 2013/05/20 17:27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지리산 준주민 너도바람 올림.

    • 제비 2013/05/21 17:31

      여기서 더 어떻게 친하게 지내지? 고민고민....

  2. chippy 2013/05/20 23:20

    와...저렇게 좋은 이웃들과 앞으로 가까이 사신다는 것 아닙니까? ㅎ...부러버요~~부러버~~

    • 제비 2013/05/21 17:35

      처음 보면 좀 무섭기도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나..하고 조심스럽지만 조금 이야기해 보면 배운거 자라온 환경 이런 것들 아무 소용 없이 그냥 선한 마음 하나만 보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태껏 내가 배웠다는 모든 것들이 정말 넓은 모래사장의 모래 한 알 만큼도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요....

  3. 뮤즈 2013/05/21 17:58

    우와...저도 이미... 모두가 이웃이네요. ^^

    • 제비 2013/05/23 20:13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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