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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호미와 장화 2017/03/24

by jebi1009 2018. 12. 28.

       

호미와 장화의 시즌이 돌아왔다.

지난 2주 간 가열찬(?) 노동으로 온 몸이 욱신욱신....

마당 돌담 너머 비탈에 수레국화 꽃씨를 뿌리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엄청 힘들었다.

거의 산비탈 개간 수준이었다.

옛날 화전민들은 산비탈에서 다랭이논 일구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이런 생각까지 났다.

비탈에서 삽질을 하다 허리가 삐끗..

용가리에게 sos를 했다.

용가리는 돌담을 쌓거나 목공을 하는 일은 좋아하지만 밭을 일구거나 땅을 다듬는 일은 별 관심이 없다.

사실 내가 일을 시켜봐도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밭이랑을 만들 때도 땅은 나보다 잘 파지만 잡초나 돌은 잘 골라내지 않고 그냥 엎어버린다.

그래도 힘든 일은 함께 해야 하니 살살 달래가며 해야지 뭐...

내 허리도 마찬가지로 살살 달래가며 해야지...심하지는 않으니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믿는다.



수월암에서 온 복수초는 하도 피지 않아 잘못됐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날 정말 '짠~'하고 피었다.

함께 수월암에서 온 수선화도 많이 올라왔다.



홍매가 청매보다 먼저 피기 시작했다. 홍매는 수월암에서 이사와 한 3년 몸살을 했는데 그래도 잘 살아 주어 대견하다. 본 가지는 죽고 그 곁가지가 살아나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잘라낸 죽은 가지에서만 꽃이 핀다. 죽은 것이 아니었나....



보통 쪽파는 늦여름에 심어 김장 할 때 쓰는데 우리집 쪽파는 이상하다. 나도 분명 8월 말에 심었는데 조금 자라다 누렇게 되어 먹지 못했다. 그런데 겨울 지나 봄이 되니 다시 자라는 것이다. 우리집 쪽파는 봄에 수확하는 것인감? ㅎㅎ


부추도 그 잔해에서 파릇파릇 올라오고 있다. 참 신기하다...




그냥 꽃씨나 뿌리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래도 본격적인 잡초들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시작한 것인데도

땅 속에는 얽힌 풀뿌리들이 이미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여름이면 칡넝쿨과 온갖 잡초로 뒤덮여 마당까지 침투하는 곳. 이 곳을 다듬고 수레국화 씨를 뿌리는 것은 힘들었다. 얽힌 칡뿌리와 백년은 묵었을 것 같은 잡초 뿌리들....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잡초와 칡들은 또 나올 것이다. 수레국화들이 힘내서 싸워주길 바랄 뿐이다.




마당 왼쪽 가장자리에는 양귀비씨를 뿌렸다. 이 곳 또한 쇠뜨기 같은 잡초들로 뒤덮이는 곳이다. 빨간 양귀비꽃을 볼 수 있을까...제발...



마당 오른쪽 길 가에는 키 작은 꽃씨들을 뿌렸다. 해당화는 작년에 이사왔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 지켜봐야겠다.


뒷마당 축대 밑에도 여러가지 꽃씨를 뿌렸다.




전에는 꽃씨를 뿌리면서 금방 예쁜 화단이 될 것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건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한 두 해 다듬어서는 되는 일이 아니다.

그저 이번에 뿌린 씨앗들이 조금이라도 살아 남아 계속 보살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한련화, 팬지, 패랭이, 맨드라미. 채송화, 매발톱, 개양귀비, 수레국화,  바이칼에서 온 나팔꽃까지...

이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의도치 않게 도라지를 많이 심게 되었다.

지난번 마을 할아버지께서 주신 도라지는 수월암 도라지 옮겨 심으면서 함께 심고

더덕도 얼마 되지 않은 살아 남은 더덕 옆에 함께 심었다.

반찬해 먹으라고  튼실한 도라지도 한아름 주시고 해서 감사한 마음에 작은 케잌을 사다드렸다.

다음날 마당에는 산딸기나무(?)가 있었다.

늦잠꾸러기인 우리들이 일어나기 전에 몰래 마당에 놓고 가신 듯했다.

우리가 마당에 나갔을 때는 이미 오전 일을 마치고 내려가시는 중이었다.

우리를 보시고는 또 도라지 한아름을 주시면서 심으라 하셨다.

내가 극구 사양해도 땅이 넓으니 심어 놓으면 좋다고 주시고 가셨다.

고민 끝에 마당 돌담 안쪽으로 도라지를 모두 심었다.

그렇다고 마당 한 가운데 심을 수도 없고 위 아래 다른 땅을 건드리자니 그 원시적인 땅을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가지 걱정은 돌담 쪽으로 다니는 두더지 때문에 마음이 쓰인다.





도라지와 더덕밭(?) ㅎㅎㅎ




할아버지께서 심으라고 주신 산딸기 나무다. 올해 딸기를 먹을 수 있을까...


비 오는 날 우엉과 도라지를 튀겼다. 냉동실에 반건오징어가 있어서 오징어도 함께 튀겼다. 튀김에는 맥주지만 비 오는 날엔 역시... 소주로 갈아탔다.ㅋㅋ



할아버지께서 주신 튼실한 도라지는 다 다듬어서 새콤달콤 무쳐도 먹고 우엉이랑 튀겨먹기도 했다.

도라지 우엉 튀김은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식재료를 많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은 반찬보다는 튀김이나 전이 최고다. ㅎㅎ





이미 풀들은 마당 곳곳에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아직 지리산 골짜기에는 하얗게 쌓인 눈이 보이고 꽃도 늦게 피지만 하루하루 땅의 기운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 꽃씨만 뿌려놓고 밭은 일구지도 못했는데 잡초는 점점 무성해지고 있다. ㅠㅠ

이래저래 마음이 바쁜 3월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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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ippy 2017/03/24 21:57

    좋군요...ㅎ, 봄이 와서. 그런데 여긴 지금 눈이 내립니다. ㅎ...비와 섞이면서 오늘과 내일 계속 된다는 예보네요. 스산하고 우울한 회색이 차고 넘칩니다만...그래도 봄은 봄이지요. ^^

    • 제비 2017/03/29 16:54

      여기도 새벽에는 진눈깨비 같은 것이 내릴 때도 있어요...그래도 계절은 참 신기해요.. 되돌아가는 법은 없으니 ㅎㅎㅎ

  2. 너도바람 2017/03/26 14:48

    저토록 봄은 어김없이 오는데, 왜 나는 이 계절만 되면 펄펄 신열이 끓는지..
    아주 오랜 직장의 습? 간청재에 가고파요.

    • 제비 2017/03/29 16:55

      간청재에 오고프면 오시면 되지 새삼스레...

  3. WallytheCat 2017/03/27 04:21

    일을 엄청나게 하고 계시는 군요. 땅은 또 그만한 보답을 해주니, 행복한 일이긴 합니다.
    뭐니뭐니 해도 매화가 가장 많이 제 눈에 들어오네요. 예뻐요~.
    허리를 다치셨다니 걱정이네요. 쉬어가며 일하시라는 메시지라 여기시고 며칠 푹 쉬셔야지요 뭐.

    • 제비 2017/03/29 16:57

      어제 옆 골짜기 스님 암자에 다녀왔는데 매화향이 아주 좋더라구요..거기에는 매화나무가 아주 많거든요..정말 봄을 확 느끼고 왔어요

  4. 벨라줌마 2017/03/28 22:53

    저도 전에는 씨를 뿌리면 예쁜 꽃 화단이 그냥 저절로 만들어주는 줄 알았어요.... 시아버님의 노고를 몇 해가 넘게 보며 이것저것 물으며 알게된 진실..... 쉽. 지. 않. 다.! ㅎㅎㅎ
    고생하시며 얻으시는 눈호강을 이렇게 공유하시는 제비님 최고!

    • 제비 2017/03/29 17:04

      벨라님 시아버님의 화단은 얼마나 예쁠까...
      저는 마음 느긋하게 먹기로 했습니다.
      올해 안 되면 내년에 또 하고...
      이렇게 풀도 뽑고 땅도 자꾸 뒤집어주다 보면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언젠가는 자리 잡히겠지..
      이러면서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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