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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나한테 왜 그래 ㅠㅠ 2017/05/24

by jebi1009 2018. 12. 28.


       

시금치, 상추, 치커리, 겨자채, 청경채 등등의 잎채소들이 자라서 이제 막 개시에 들어가고 고추, 토마토, 오이, 호박은 모종을 사다 심어 이제 막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비가 오지 않아 모종들이 비실비실하여 엄청 신경을 썼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고 보살폈다.

고추가와 오이가 비실거려 걱정하자 '고추 만큼 나도 그렇게 신경 좀 써줘'라고 용가리가 시비를 걸었다.ㅋ

그렇게 신경을 써도 토마토 한 개, 오이 두 개는 회복하지 못했고, 호박 다섯 개 심은 것은 전멸하였다.ㅠㅠ

게다가 엊그제 아침에는 놀랄 광경이 펼쳐졌다.

나의 관심을 듬뿍 받고 이제 막 자리 잡아 꽃도 피우고 아기 오이도 달렸던 오이모종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게 뭥미??

주변에는 똑똑 끊어 놓은 오이가 널부러져 있었다...

정신이 아득하여 다른 곳도 살펴보니 내가 개시하지도 않은 치커리, 오늘쯤 맛 봐야겠다고 생각한 치커리들을 야무지게도 다 뜯어 먹었다.

겨자채는 뿌리째 뽑고 뜯어 놓고 청경채도 다 뽑아 놓았다.

잘 건드리지 않던 상추도 먹은 흔적이 보였다.

누구인가.....? 99.999999프로 고라니이다.

작년에 이사 오고 그 전에도 간청재에 오가며 간단한 텃밭을 했었어도 이렇게 고라니가 적극적으로 나선 적은 없었다.

고라니가 다녀간 흔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초토화시킨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때만 해도 그래..고라니가 상추는 많이 안 먹었으니까 고라니가 남긴 것만 먹지 뭐...했었다.





고라니가 전멸시킨 오이들.


치커리잎을 야무지게도 뜯어 먹었다.


먹지도 않고 다 뽑아 놓은 청경채




고라니가 엉망으로 만든 텃밭으로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땅콩과 대파 모종을 사기 위해 장으로 갔다.

땅콩과 대파를 사고 전멸해 버린 오이와 호박도 다시 샀다.

아자아자!!  기운을 내서 밭을 고르고 땅콩과 대파를 심고 비어버린 오이와 호박밭에도 모종을 다시 심었다.

장에서 돌아와 늦게까지 정성스레 모종을 심고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그. 러. 나. 다음날 아침 마루 덧문을 열던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눈 앞에 있어야 할 땅콩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내 얼굴은 노래졌다. 머릿속에서 콰과광!! 천둥이 쳤다.

파자마 바람에 마당으로 내려섰다. 정말 사라졌다. 땅콩모종 두 판이 모두 없어졌다.

주변에는 어지러운 고라니 발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

아직 자고 있던 용가리를 깨워 거의 울다시피 난리를 쳤다.

용가리 하는 말 '난 땅콩 안 먹어도 돼'

뭐라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아니 마누라가 아침부터 속상해가지고 말하는데 땅콩 안 먹어도 된다니...

그러면서 어제 땅콩 심을 때부터 고라니가 좋아할 것 같았다나?

참 내...그걸 말이라고...그럼 대책을 세우던가 했어야지...

한 번 두고 보려고 했단다...허허허...내가 웃음이 다 나온다.

티격태격하다 일단 이른 아침부터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용가리는 고라니에게 짜장면 한 그릇 사 준 셈 치라고 했지만 난 한 번은 더 해봐야 한다고 우겼다.

집싸게 준비해서 인월장으로 갔다.

'어제는 함양, 오늘은 인월' 두부 파는 아저씨가 나한테 소리친다. 어제 함양장에서 나를 봤나보다.ㅋ

땅콩모종 파는 할머니에게 어제 심은 땅콩 고라니가 다 먹었다고 했더니

'이 어린 게 뭐 먹을 게 있다고 아주 못된 놈이네' 하신다.

요즘엔 고라니가 안 먹는 것이 없이 다 먹고 다 잘라 놓는다 하신다.




하룻밤 자고 나니 눈 앞에서 사라져버린 땅콩들.





고라니 막는 방법을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정말 굉~장했다.

너도 나도 고라니 때문에 죽겠다고 난리들이었다.

방법도 엄청 많았다.

울타리 치는 것은 기본이고 반짝이곰 설치, 깡통 달기, 점멸등, 경광등, 호랑이 소리, 라디오 크게 틀기, 허수아비 달기, 초음파, 적외선 감지기 등등....

하지만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은가보다.

고라니도 곧 학습을 해서 유유하게 또 와서 다 뜯어 먹는단다.

진돗개를 기르는 방법도 있는데 밥 많이 먹고 덩치가 큰 개여야 한단다 ㅎㅎㅎ

개도 고라니를 잘 막지 못해서 괜히 화풀이만 하게 된다고...ㅋㅋ

다 해 보고 안되면 마지막 방법 '기도하기'

'고라니도 광합성염록소보다는 고기 맛을 알게 하사 고기만 먹고 살게 해 주세요~요요요~'

웃겨 죽는 줄 알았다 ㅋㅋㅋ

그래도 다들 효과가 괜찮다는 방법을 보니 크레졸 비누액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고라니가 그 냄새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다시 도전할 땅콩모종, 크레졸액, 울타리 용 고춧대를 사서 돌아왔다.


그래! 이제 고라니와 전면전에 들어간다!

다시 정성스레 모종을 심고 울타리 치고 크레졸액 담을 용기를 만들었다.

'너 고리니 이쁘다며? 전에는 고라니 봤다고 좋아라 하더니 지금은 안 이쁘냐?'

용가리가 시비를 건다.

'이제는 1도 안 이쁘다'

그냥 조금이면 나눠 먹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초토화시키면 곤란하지...고라니 너도 양심이 있어야 할 거아냐?

너 나한테 왜그래...ㅠㅠ



다시 심은 땅콩.



.

대파는 아직 고라니의 관심 밖. 그러나 언젠가는 대파도 먹게 될지도...





크레졸 비누액을 물에 희석하여 넣어 둘 용기. 나름 머리 썼다. 빗물은 들어가지 않고 냄새는 나와야 하므로 플라스틱 컵 두 개를 붙여서 만들었다.



크레졸액을 밭 군데군데 흙에 묻어 두었다







밭을 재정비하고 방어막도 쳤지만 떨린다...오늘 밤 무사할 수 있을까?

자다가 고라니 울음소리에 밖에 나가 불을 켜기도 했다.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날이 밝자 파자마바람으로 마당에 내려서니....

짜잔~ 땅콩들이 이쁘게 다 제자리에 있었다.

오이도 무사하고 잎채소들도 더 헤집지 않은 것 같았다.


역시 나만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 세상 이치.

남들이 고라니 얘기할 때 그냥 난 뭐 별로...이러면서 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우리집 근처 고라니는 착한 아이인가? 이러면서 되도 않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심하기 짝이 없다.

별 것 아닌 텃밭농사이지만, 그리고 수확물을 다 소화하지도 못하지만

잘못되면 엄청 속상하고 잘 자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앞으로 고라니와의 끊임 없는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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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allytheCat 2017/05/25 00:44

    이런 이런... 어쩌나요. 엄청난 피해를 보셨네요.
    제 경우를 보니, 부추, 마늘, 고추, 깻잎 같은 건 먹지 않더라고요. 꽃도 좋아하는 게 있어서, 똑똑 다 따먹기도 하고요. 사슴이 마늘을 싫어한다고 해서 싹 난 마늘을 화단 가장자리에 군데군데 심었더니, 효과가 있는 것 같더군요. 예전에 어떤 분이 사슴이 싫어한다며 달걀 노른자 물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밭 가장자리에 둘러가며 뿌리는 걸 본 적 있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초음파 기기(ultrasonic deer repellent)란 것도 써봤는데, 그리 효과적이진 않더군요.

    • 제비 2017/05/25 10:05

      일단 울타리와 크레졸냄새로 요 며칠은 괜찮은 것 같은데 요놈이 또 익숙해지면 어떻게 습격할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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