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밭 갈고 밤에는 바느질?
요즘 일과는 밭에 나가고 들어오면 바느질하고...
단지 저녁에 바느질은 눈이 침침해서 잘 할 수가 없어 대부분 오전에 한다.
커피 마시고 음악 들으며 바느질하다가 오후에는 밭에 나가 풀 뽑고 물도 주고...
비가 오지 않아 매일 한 두시간 씩 물을 주는데도 땅은 매일 바싹 말라있다.
그나마 모종으로 심은 것은 지극정성(?) 돌봐서 뿌리를 내린 것 같아 어느정도 잘 버티고 있지만 씨앗을 뿌린 쪽은 영 신통치가 않다.
4월 조금 일찍 씨앗을 뿌린 상추와 청경채 시금치 등은 그럭저럭 잘 먹었다.
상추는 지금도 잘 먹고 있다.
시간차를 두어 잎채소들을 오래 먹고 싶어 비워둔 이랑에 5월 중순에 씨을 뿌렸는데 거의 싹을 틔우지 못했다.
열무는 5월 말에 씨앗을 뿌렸는데 싹이 몇 개 올라오지 않아 다시 조금 더 뿌리고 기다리고...
그러다 얼마 전 비가 한 번 오니 싹이 올라왔다.
6월 초 다시 물을 흠뻑 뿌리고 쌈배추, 비타민, 겨자채, 청경채, 상추 씨앗을 다시 뿌렸으나 영 신통치가 않다.
특히 쌈배추와 비타민은 땅이 이상한지 전혀 기미가 없다.
내 기억으로 5월부터 지금까지 비가 온 날은 딱 한 번이다.
그것도 그리 많이 오지도 않았다.
난 하루도 빠짐 없이 물을 주었다. 그래도 비 잠깐 내리는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
매일 물을 주고 매일 들여다 보아도 싹이 올라온 것들은 비실거리고 아예 기미도 없는 곳이 많다.ㅠㅠ
동네 할아버지께서 주신 산딸기 나무. 작년 심었는데 올해는 산딸기가 열렸다. 지금 아끼고 있는 중이다 ㅋㅋ
시골 살아보니 날씨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일과와 일주일, 한 달의 계획이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것에 따라 하다 못해 빨래 하는 계획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이사 오기 전부터 씨앗을 뿌리고 했지만 이렇게 속을 태운 적은 없었다.
씨앗은 뿌려 놓으면 특별히 물을 주거나 하지 않아도 무성하게 잘 자랐다.
그래서 처음 씨앗을 뿌렸을 때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물도 주지 않았었다.
그러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물을 주고...그래도 소식이 없자 다시 씨앗을 뿌리고....
이제 마음을 비워야겠다.
비가 오지 않으면 계속 물을 주겠지만 잘 되지 않더라도 너무 상처 받지 말아야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면서 살려고 하지만 자꾸 옛날의 못된 습관이 나오려고 한다.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내가 그린 그림대로 되어야하고
온통 그것에 신경 쓰느라 새벽마다 배가 아프고...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고 웃기는 일이다.
어찌 계획대로, 내가 그린 그림대로 될 수 있단 말인가...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살피지 못한 것은 없나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자꾸 생각하게 된다.
지나가는 동네 할머니께서 '그래도 매일 물을 줘쌌더니 밭이 잘 되었네.. 꽃도 이쁘고..' 칭찬해 주셨지만
내 마음속에는 보름이 되어도 싹이 올라오지 않는 밭이랑만 생각하며 안달을 하였다.
99가지가 잘 되어도 1가지 안 된 것에만 눈을 돌리고 모든 것을 실패로 단정하려고 하는 이 못된 버릇!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것이 욕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 가뭄 속에서 올라온 싹들을 선물로 여기며 감사해야지 어찌하여 자꾸 싹이 없는 이랑에만 눈길을 주는지...
올해 안 되면 내년에 또 하면 될 것을....
또한 자만심도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대충 남들 씨앗 뿌릴 때 뿌리고 남들 모종 사다 심을 때 심어만 놓으면 잘 되었었다.
그래서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은 없다.
동네 어른들이 때 되면 퇴비 주고 비료 주고 약치고 그렇게 관리하시는데
그런 일들 없이 그냥 맨 땅에 씨앗 던져 놓고 잘난척이라니....
처음에는 싹이 나는 것만도 신기했고 수확 자체의 기쁨이 있었다.
조금 익숙해지자 수확은 놀라움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제 뭣 모르고 했던 시절의 운빨은 다 했고 나는 겸손해졌다.
싹을 틔운 씨앗도 싹을 틔우지 못한 씨앗도,
탐스러운 열매를 달고 있는 모종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버린 모종도
모두 선물이고 감사하다.
'음풍농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발장 2017/07/02 (0) | 2018.12.28 |
---|---|
마음이 안 좋아서... 2017/06/22 (0) | 2018.12.28 |
어느날 오후 2017/06/09 (0) | 2018.12.28 |
여름 컬렉션 2017/06/05 (0) | 2018.12.28 |
꽃 2017/05/29 (0) | 2018.12.28 |
땅은 말라도 작물은 건강해 보여요. 여긴 비가 평년보다 많이 내리는 봄이라서...여름 내 이러려나 싶어요. 들깨도 고작 손바닥 길이만큼 자랐어요. 곧 탄력이 붙으면 쑥쑥 자라려니 합니다. 그래도 작약이 만개해서 좋아요.
작약이 피었군요^^
전 올해 처음 작약을 보았어요.
이제는 그 화려함이 모두 사라졌지만 참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자연과 더불어 사시니 자연을 통해 마음 비우는 법을 배우게 되시는 군요.
사진으로 보기에는 넉넉하고 푸르러 보이는데, 아직 비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사진에 등장한 아이들은 그나마 잘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고 나머지는 아직도 위태위태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