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데 동네 할머니께서 부르셨다.
우리집 앞으로 다니시는 몇 안 되는 동네 분이시다.
우리집 위 쪽으로 밭이 있어 밭일을 다니시며 가끔 말씀도 하시고 도라지며 산딸기며 나줘주시는 분이시다.
물을 좀 담아 가겠다는 말씀이셨다.
위 쪽으로 밭일 가시는 분들은 약을 치거나 할 때 밑에서부터 물을 지고 오면 너무 무거우니까
간혹 우리집에서 물을 담아 가시기도 한다.
요즘은 날이 너무 가물어서 못보시던 분도 경운기를 몰고 와서 물을 몇 통 씩 담아가시기도 했다.
위 쪽에 물이 있었는데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물 쓰는 것은 흔한 일이라 당연히 할머니께 그러시라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물을 담아 머리에 좀 이어 달라 하셨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할머니는 커다란 플라스틱 석유통을 가져오셔서는 거기에 물을 채워 머리에 올려 달라 하셨다.
'날이 가물어서 엊그제 조카가 물을 몇 도라무통 갖다 부었는데 그래도 안 돼'
'오늘은 그래도 날이 꾸무리 해서 내 물 좀 부어 줄라고'
'살아 있는 놈만 물을 쬐매 줄라고'
'죽은 놈은 할 수 없지만 살아 있는 놈은 우째...내 마음이 안 좋아서 물 줄라고 나왔다'
자그마한 체구에 물통을 이고 올라간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그냥 들기에도 무거운데...
물을 반 만 채워 드리려고 하니 '더 채워라 괘안타..'
그러고는 기어코 그 무거운 물통을 머리에 이고 올라가셨다.
아이고 세상에....
물통을 이고 비탈길을 올라가시는 할머니를 보니 나도 마음이 안 좋았다.
흔히 뉴스에서 나오는 가뭄에 대한 멘트.
'갈라진 논바닥처럼 농민들의 마음도 바싹 타들어갑니다.'
집에 그냥 있기에 마음이 안 좋아서 타들어가는 작물에 물 몇 모금 주시려고 나오신 할머니..
내가 안달복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집에 있으려 했던 계획을 접고 장화 신고 텃밭으로 갔다.
호박에게 먼저 갔다.
눈 앞에 있는 텃밭은 눈에 보이니 꼼지락거리기도 하는데 바로 집 뒤 윗단에 있는 호박은 확실히 눈에 보이지 않으니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귀찮으면 물 주는 것도 건너뛰게 되고 말이다...
가서 보니 역시나....
시들거리는 호박에게 미안했다.
흙도 더 덮어주고 풀도 뽑고 벌레가 타는 곳에 재도 뿌려주고...
마지막으로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들고 가서 물을 주었다.
가뭄 때문에 나도 텃밭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꼴랑 손바닥 만한 텃밭을 보면서도 그런데 심고 키우고 거두는 것을 평생 해 오신 분들의 안 좋은 마음이야 오죽할까...
주말에 비가 온다니 이제 좀 할머니 마음이 좋아질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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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이 그렇게나 심하군요. 어쩌나요.
주말에는 비가 시원하게 내려 해갈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어젯밤에 한바탕 쏟아졌어요
그런데 오늘은 또 해가 반짝이네요
가뭄이 아주 심하군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저도 가슴이 아프네요.
농사를 짓는 분들은 가슴이 타들어 가겠어요. 단비가 빨리 내려야 할텐데.......
말 그대로 단비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어젯밤 비가 한바탕 내리기는 했는데 더 두고 봐야겠어요.
요즘은 이렇게 가물다 비가 한 번 내리면 집중호우로 내리니까 비피해가 또 생기더라구요...
기후변화로 점점 농사는 힘들어지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