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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음식 2017/07/22

by jebi1009 2018. 12. 29.


       

사람의 흔적을 느끼기에 가장 민감한 것 중 하나가 음식이다.

음식이란 것이 사람의 오감을 모두 동원하는 것이기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스토리를 다 갖고 있는 것 같다.

음식을 통해 사람을 추억하고 그 시대를 회상하고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푸근해하고 설레기도한다.

내가 술과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나와 관계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관련되어서 생각나는 장면들이 아주 많다.

그 사람과 관련되어 기분 나쁘거나 화가 나는 상황이어도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좋은 음식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기도 한다.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음식이 모두 맛이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장면 장면 내 머릿속에 잘 박혀 있다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나에게 있어 관계를 형성하는데 음식은 중요했던 것 같다.


딸아이가 간청재에 내려와 20일 정도 지내다 돌아갈 때가 다가오자

우리는 매일 매일의 저녁을 무엇으로 먹었는지 꼽아 보면서 함께 했던 시간들을 정리했다. ㅎㅎㅎ

딸아이는 용돈이 입금되는 날 서울로 돌아갔다. ㅋㅋ

간청재로 내려오는 날 남은 생활비를 탈탈 털어서 맛있는 케잌류를 잔뜩 사서 내게 안겼다.

맘대로 쉬고 먹고 돌아다니는데 자신의 통장에서 돈이 나가지 않는 것에 완전 만족 쾌감을 느꼈다.


나는 주방 싱크대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밭에 나가 풀을 뽑는 것이 낫지 싱크대 앞에서의 시간은 정말 힘들고 힘들다.

다리가 아프고 갈증이 나고 마구 피곤함이 넘쳐난다....ㅠㅠ

그래도 먹고 싶은 것은 있으니 의욕이 넘쳐 싱크대 앞에 서기도 한다.

아무리 의욕이 넘쳐도 피곤함은 마찬가지....

그런 내가 딸아이가 온다니까 뭐 해주고 뭐 해줘야지...이러고 있었다.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무언가 만들어 먹을 때 용가리와 내가 이거 딸내미가 좋아할 것 같다...하면

오면 해 줘야지...이러고 있는 것이다. 쩝...^^;;


일단 딸아이가 내려오면 '읍'이 아닌 '시'로 나가 마트를 싹쓸이하고 계획에 따라 그것들을 소비해 나간다.

이번에는 딸아이가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웹툰을 좋아하는 딸아이는 웹툰에 나오는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간단한 레시피를 찾아 몇 번의 저녁을 책임(?)졌다.

간청재는 배달과 외식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딸아이의 저녁 담당은 나에게 엄청난 호사였다.




딸아이가 사 온 타르트...아까워서 오래 먹었다. ㅋㅋ


딸아이가 웹툰 보고 만든 주먹밥


마트 싹쓸이에서 사 온 냉동 감자 만두도 쪄주고...만두가 너무 귀엽다며 촬영 ㅎㅎ


딸아이의 수박화채. 화채로 먹는 것 보다는 그냥 과일을 먹는 것을 더 즐기는 편이라 화채를 먹어본 지가  한 백 년은 된 것 같았다.


납작 만두와 생선가스.에어프라이를 이용한 냉동음식. 적당한 전자 조리기구를 이용하는 것도 훌륭한 요리 기술이라며...




김치볶음밥. 용가리 점심으로 만들어 준 것이기에 용가리가 엄청 감동하며 먹었다.




라자냐. 적당한 그릇이 없어 뚝배기에다 만들었다. 선호하는 음식은 아니었으나 웬만한 페밀리 레스토랑 라자냐 보다 훌륭했다. 조리법도 간단해서 가끔 이런 종류 땡길 때 해 먹어봐야겠다.



옥수수. 이번에도 강원도 선배가 100개 보내 주어서 딸아이와 내가 껍질 벗기고 용가리가 불 때서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쪄낸 옥수수다. 맛은...한 번에 열 개는 너끈하게 먹었다. ㅋ




월남쌈. 딸아이와 함께 만들었다. 만든 것도 아니라 그냥 채소를 썰면 되는 것이다...어쨌든 서울에서도 자주 해 먹던 것이라 옛날 생각하면서 맛나게 먹었다.


이번 딸아이의 음식 중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 메로나 칵테일...소주와 탄산수 메로나 하드로 만든 것이다.




소고기, 돼지고기도 마천석에 구워 먹었고 읍내 장날에 나가 족발도 사다 먹고 탕수육과 짜장면도 먹었다.

이렇게나 먹었는데도 치맥도 못하고 회, 순대도 못 먹었다며 아쉬워하며 떠났다.

우리는 추석 명절 만남을 기약하며 무엇을 가장 먼저 먹을까 계획을 세웠다...ㅋㅋㅋ



용가리와 내가 마루에 드러누워 뒹굴거리는 모습. 뒤에서 쓱쓱 그려 보여 주었다.




이번 딸아이의 방문 기간이 길어서 그랬나...용가리와 둘 만의 저녁을 보내면서 며칠은 우울했었다.

용가리와 나는 새삼스레 '우리가 이렇게 딸아이를 좋아했었나?' 하는 말도 했다.

딸아이도 '우리가 이렇게 가족애가 끈끈했었나? ' 하며 엄청 친한 척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가 대충 지나가지 않고 매일매일 무언가 계획을 갖고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 큰 역할을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 경제적 독립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성인이 되면 집을 떠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 같다.

딸아이와 아직도 서울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면 과연?

난 열에 아홉은 딸아이의 가슴에 화살을 날려대고 내 뚜껑은 열렸다 닫혔다 했을 것이다.

물론 딸아이도 이에 지지 않고 내 가슴에 이단옆차기를 날렸겠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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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등산 2017/07/25 06:42

    저도 주방일은 많이 싫어하고
    요리도 못하는데 집밥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할 수 없이 하게 되는 날이 많아요
    아침은 해장국 사먹고 저녁은 술만 마시면 좋겠어요.
    따님 그림솜씨가 굉장하네요.
    엄마 아빠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두 딸애랑 떨어져산지 4년차인데 방학인데도 안와서
    제가 보러가는데 갈 때마다 싸워요.
    4학년이라 취업, 연애 궁금해서 물어보면 얼마나 툴툴거리는지.. ㅠㅠ
    저는 언제나 경제적 자유인이 되어 제비님처럼 살아볼까 싶네요.
    제비님 사는 모습 부러워요,

    • 제비 2017/07/29 20:17

      '아침은 해장국 사 먹고 저녁은 술만 마시면 좋겠어요' 완전 동감입니다.!!!
      딸아이와는 떨어져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지 이제 곧 험난한 관계들이 찾아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ㅎㅎ

  2. wooryunn 2017/07/24 22:43

    우와~또 물개박수 치고 있어요.주희양 그림, 천재화가 에곤 쉴레 같아요.미대생언니가아니라 이미 예술가예요.진심 넘 멋져요! 주희양 예술적 감성은 엄마에게 물려 받은 것 같아요.

    • 제비 2017/07/29 20:19

      wooryunn님의 이 댓글을 우리 딸아이가 봐야 하는디...쩝쩝..님도 넘 멋진 것 알고 계시죠? ㅎㅎ

  3. huiya 2017/07/25 00:10

    올해는 제비님네가 옥수수를 대량으로 삶지않나 하던 참이었어요.
    따님이 돌아가면 허전하시겠죠.....그러나, 독립은 좋은 것 같아요.

    • 제비 2017/07/29 20:24

      huiya님도 옥수수 좋아하시죠?
      옥수수는 신이 내린 음식 맞아요 ㅋㅋ
      세상에 허전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누구나 자기 삶을 즐기고 책임지는 때가 오기 마련인 것 같아요..
      각자 알아서 잘 살자!!!

  4. 벨라줌마 2017/08/01 21:21

    따님의 주먹밥, 수박화채, 메로나 칵테일에 몰표 보냅니다 ^^ 언젠가 저도 얻어 먹어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희망해 봅니다 ^^

    • 제비 2017/08/05 09:15

      언젠가 그 희망이 이루어지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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