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4일 간 사과밭에 놉으로 가서 일하고 일당을 벌었다.
옆 골짜기 둥이 아빠가 알선(?)해서 용가리와 나 그리고 둥이 아빠 셋이서 나흘 간 일하러 다녔다.
둥이 아빠 고향 친구 사과밭인데 마천에서 3,40분 걸리는 수동에 있다.
매일 아침 7시 출발해서 5시 일 끝나고 오면 6시가 다 되어가 사방이 깜깜하다.
동틀 무렵 일 하러 나가서 해 지면 돌아오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당연히 온 몸은 욱신욱신...아침 커피 내릴 때 주전자 들기도 힘이 들었다.
일은 서툴지만 나름 민폐 끼치지 않으려 눈치 보면서 열심히 했다.
첫날은 사과를 담을 노란 플라스틱 상자를 사과밭 사이사이에 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어 짐을 나르는 작은 차가 사이사이 들어갈 수 없어 손으로 일일이 날라야 했다.
상자는 세 개가 한 세트처럼 포개어 있는데 처음에는 남들이 양손으로 한 세트 씩 들고 나르는 것을 보고는 나도 그랬다가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욕심을 버리고 한 세트 씩 날랐다.
생각보다 무게가 상당하고 계속 반복하니 힘이 들었다.
점심은 수동에 있는 유명 짜장면집으로...
포스가 느껴지는 집이다.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는...맛있었다.
첫날은 밑작업하느라 본격적인 사과 따는 사람들이 오지 않아 그래도 그렇게 빡세지는 않았다.
물론 안 하던 일을 해서 몸이 아우성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둘째 날 동트고 얼마 되지 않은 7시 둥이 아빠 트럭이 우리를 데리러 왔다.
아침 사과밭이 있는 산 공기는 차가웠다.
일 시작하기 전에는 몸이 떨리고 손발이 시려웠다.
어제 하던 상자 배치를 끝내고 오후에는 사과를 따서 담는 일을 했다.
사과 나무는 생각보다 높아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과를 따야 한다.
둥이 아빠는 사과 농사를 해 본 경험이 있는 경력직이라 여러 가지 일을 척척 알아서 하고
또 성품이 그런지라 엄청 열심히 한다.
우리는 둥이 아빠에게 물어보며 열심히 따라했다.
나는 아래쪽 사과를 따고 용가리와 둥이 아빠는 사다리를 탔다.
사다리를 옮겨가며 사과를 따는 일은 무척 힘들다. 게다가 사다리 높이가 6다 7단이다.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사과를 따서 가위로 꼭지를 자르고 바구니에 담고 그것을 노란 플라스틱 상자에 다시 옮겨 담는다.
사과를 바구니에 하나 담으면 무게가 상당하다. 그것을 옮기는 일도 무척 힘들다.
게다가 노란 상자에 차곡차곡 담는 일도 만만치 않다.
담을 때 흠과를 골라서 따로 담는다.
오후 일을 마치니 머리가 멍해진다.
셋째 날 역시 7시 출발.
날은 더 춥다. 일을 시작하고 해가 나면 또 더워지지만 아침 공기는 차가워서 입김이 마구 나온다.
이 날은 드디어 전문가 팀이 왔다.
베트남 언니들로 구성된 4인조 팀이다.
부지런하고 일도 잘 해서 사전 섭외가 어렵다고 했다.
사다리도 잘 타서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사과를 딴다고...
과연 듣던 대로 사과 따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우리 셋은 사과 담는 일을 했는데 쉴 새 없이 담아도 사과 바구니가 자꾸 밀려온다.
정말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사과를 담아댔다.
점심은 사과밭 창고로 배달되었다.
베트남 언니들 중 한 명만 우리말을 할 수 있었고 다른 언니들은 한국에 온지 열흘 남짓 되었다고했다.
나이도 어린데 결혼해서 이런 먼 곳까지 오다니...이제 더 추워질텐데...
마음이 짠했다. 무슨 인연으로 이 산골까지 왔을까...
밥을 먹으며 반찬 그릇을 앞으로 밀어주니 나를 보며 웃는다.
오후 참 먹을 때 아까 웃었던 언니가 나에게 과자 하나를 수줍게 내밀었다.
물론 내가 언니지만 말이 서툰 베트남 사람들은 대체로 여자를 부를 때 언니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리말을 하는 대장 언니가 일 끝나고 가면서 내일도 오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자기들은 다른 사과밭으로 간다고 못 봐서 아쉽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사과밭 일이 끝날 때까지 오는 줄 알았는데 다른 쪽에 먼저 일이 잡혀 있었나보다.
새로 온 베트남 새댁에게 겨울 부츠를 주고 싶었는데....
헤어지면서 손잡고 등만 쓸어주었다.
넷째 날 역시 이른 아침 사과밭으로 가자 모닥불이 있었다.
사과밭 프로팀이 등장했다.
할머니(아주머니)들로 구성된 팀이다.
우리도 이른 시간에 갔는데 이미 와서 컵라면 한 컵 씩 하시고 불도 피워 놓으셨다.
이 분들은 사과밭 사장님과 오랜 인연으로 이 집 사과를 매 해 와서 따 주시는 분들인 것 같다.
서로 허물없는 사이로 오고 가는 대화만 들어도 재밌고 웃음이 났다.
6명이 한 팀인데 둘 씩 짝이 되어 4명은 사과를 따고 2명은 사과를 담는다.
나이가 많으신데도 사다리 들고 다니면서 꼭대기 사과까지 모조리 다 따신다. 우와 리스펙!!
둥이 아빠는 사과 담는 일을, 나는 사과 따는 일을, 용가리는 사과 나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
사과를 딸 때 꼭지 관절 부분을 똑 끊어야 하는데 잘 안 되는 것은 가위로 잘랐다.
그러자 할머니 한 분이 나무에 가위 대면 내년에 안 좋다며 따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셨다.
그리고 천천히 해라...천천히..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괜히 위로가 됐다.
할머니가 알려주신 방법대로 하니 사과가 똑똑 잘 따졌다.
아직 해가 나기 전이라 장갑이 젖고 손이 시려웠다.
다른 할머니 한 분이 사과를 잘라 주시며 지금 먹어야 시원하고 맛있다고....나중에 해 나면 덜 맛있다고 당장 먹으라 하신다.
차갑고 사각거리고 물이 뚝뚝흐르고 달고...정말 맛있었다.
또 꼭대기 사과가 맛있다며 사다리 내려오시며 사과를 잘라 내게 주시기도 했다.
나는 걸리적거리고 민폐 끼칠까봐 엄청 눈치 보면서 일했다.
처음에는 한 나무 앞에서 따기 시작했는데 금방 따라 잡혀서 나중에는 두 나무 세 나무 앞에서 시작했다.
그래도 안 되어서 다른 줄 나무부터 시작했다. ㅠㅠ
점심은 역시 사과밭 창고에서 배달온 식당 백반을 먹었다.
옆에 앉은 할머니께서
'새댁 우리랑 같이 과수밭 일 다니자...' 하신다.
오전 사과 따면서 한차례 간단한 호구 조사가 있었는데 그때도 나를 새댁이라 불렀다.
마천에서 왔다고 하면 도시 살다가 뭐하러 이런 골짜기까지 들어왔냐며 혀를 끌끌 차셨다.
용가리가 옆에서 듣다가 '새댁이라니..넌 양심도 없다.'
그러면서 얘 새댁 아니래요..하면서 할머니들께 일렀다.
옆에서 애가 대학생이라 하니 '하이고 결혼을 억수로 일찍 했는가배..' 하신다. ㅎㅎ
'와? 새댁이라카니 싫나? 좋제?'
'네..그냥 새댁 해 주세요..ㅎㅎ'
그래서 그날 나는 끝까지 새댁으로 불렸다. 푸하하~
일은 못하지만 그래도 뺀질대지 않아 밉지 않으셨나보다.
나름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것이니 말이다..ㅋㅋ
용가리도 나름 이쁨을 받았다.
사다리 밑에서 사과 바구니 받아 주고 사과 담는 곳까지 옮기고 빈 바구니 다시 갖다 주고...
여기저기서 용가리를 불러대니
한 할머니는 '하이고 그만 좀 부리묵어라(부려먹어라)...' 하신다. ㅎㅎ
오후 참을 먹는데 토스트가 나왔다.
나는 힘이 들어 먹히지가 않았다. 받아든 토스트를 손에 꼭 쥐고 있으니 '와? 안 먹나?' 하신다.
'이거 갖고 가도 되요?' 하니까 하이고 불쌍해라 하시며 남은 토스트 하나도 가져가라고 싸 주신다.
아니...이게 아닌데...
토스트 한 입 먹고는 안 넘어가서 먹던 거라 어쩔 줄 몰라 한 말인데...
어쨌든 잘 됐네.. 오늘 저녁은 해결됐다. ㅎㅎ
나흘 간 일 다니면서 저녁은 라면과 냉동피자로 해결했다.
일하고 깜깜할 때 들어가 씻고 나오면 그냥 이불로 쓰러지고만 싶은데 뭘 끓여 먹고 싶겠는가..
그래도 라면 끓여 소주 반 병, 냉동피자와 맥주 한 캔은 먹었다.
알콜이 들어가야 하루를 마감하니 말이다. ㅋㅋ
둥이 아빠가 사장에게 주말은 일도 보고 쉬겠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주말에는 사장 식구들도 오고 할머니 팀들이면 사과를 거의 딸 수 있을 것 같아 굳이 우리까지 갈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어쨌든 나는 내일 7시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엄청 좋아졌다.
게다가 4일 간 일한 일당도 받았으니 날아갈 것 같았다.
일은 고되고 몸 여기저기가 아우성을 쳤지만 그날 밤은 얻어온 토스트를 안주 삼아 맥주를 여유 있게 마실 수 있었다.
이리하여 4일 간 사과밭 일이 끝났다.
사실 나는 꼭 한 번 이런 일을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없거나 하면 과수농가나 고사리밭 양파밭 등등 일을 나가기 어렵다.
게다가 거의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나 같은 뜨내기는 일에 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둥이 아빠가 아니었으면 이런 일을 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일을 나가면 대장 격인 사람을 오야붕이라 부르는데 우리 오야붕이 바로 둥이 아빠!
아침 저녁 트럭 몰고 우리 태우러 오고 데려다 주고...어름한(어설픈, 덜 떨어진) 일꾼 두 명 데리고 다니느라 수고가 엄청 많았다.
오야붕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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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팀과 프로팀에서 웃고 말았습니다. 제주도에서도 농촌 할머니들이 남의 밭에서 삯일을 하시고 생활비를 법니다. 그 분들도 전문가인 것이죠. 해녀도 전문직으로 은퇴를 자신이 정 할 수 있구요. 직장에 매인 사람들 보다 훨씬 자유롭죠. 그야말로 능력에 따른 수입이있구요.
일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드신 분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인 것 같아요.
외국인 노동자들 없으면 과수 농사는 짓기 힘들 정도라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