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일을 나가보니 내가 그냥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물론 몸이 힘들고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주변의 말도 있었고 각오도 했지만
일단 일을 가게 되면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것이 아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그 집 일이 끝날 때까지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밭에 있는 사과를 다 따서 마무리할 때까지, 양파밭 모종을 다 심을 때까지...
몇 천 평, 몇 만 평 되는 곳의 일을 다 하려면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일이 끝나기 전에는 내 생활은 완전 엉망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에 있어야하기 때문에 관공서나 은행 등등의 볼 일은 볼 수 가 없다.
시장에 갈 수도 없고 빨래도 못하고...
그냥 하루 이틀 나가고 안 나가고가 아니라 일이 끝날 때까지 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필요하고 그래야 나중에 또 일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있어도 남의 집 일 다니는 것을 안하려고 한단다.
게다가 육체적 고단함은 엄청나니까...
사과밭 가는 길에 끝없는 양파밭이 있는데 그 넓은 양파밭 모종은 사람이 쪼그려 앉아 일일이 심어야 한다.
주변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다른 지방에서 관광버스 대절해 사람을 사온다고 한다.
물론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런 밭일에 남자들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과밭에 처음 갔을 때는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엄청 멋있고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낭만은 개뿔...
사과를 다 따낸 사과나무를 보니 ‘애썼다..수고했어..’ 이 말이 절로 나왔다.
저렇게 크고 빨간 사과는 누가 만들었는가?
물론 자연의 섭리겠지만 거의 인간의 손으로 제작했다는 생각이 지나친 것이 아니다.
퇴비와 양분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적당하게 가지를 치고
꽃이 피면 적당한 간격으로 열매가 맺기 좋은 자리를 잘 골라 일일이 꽃을 따 주어야 하고
또 수정이 잘 되라고 수정 벌을 사다 풀어 놓기도 한다.
사과가 달리면 솎아주고 익어가기 시작하면 주변의 잎을 일일이 따준다.
우리나라는 특히 사과의 색이 중요한데 색이 잘 났느냐 안 났느냐가 가격 결정에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나무 밑에 반사판(빤짝이)도 깔아 주고
잎이 있는 부분은 해가 가려 빨갛게 되지 않으니까 사과 주변 잎도 일일이 다 따준다.
사실 빨간 색이 맛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는데 사람들이 빨간 사과를 좋아하니 할 수 없단다...
색을 내기 위해 발색제를 뿌리기도 하고 반사판도 깔아 주는데 반면 해가 과하게 비추면 사과가 화상을 입어 누렇게 되기도 한단다.
그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 또 썬크림 같은 역할을 하는 약을 치기도 한단다. 참나...
사과나무가 키를 키우고 몸을 키울 때는 꽃을 피우지 않는단다.
그럴 때는 박피, 사과나무 껍질을 조금 벗겨주면 나무가 충격을 받아 위기의식을 갖고 번식을 하려고 꽃을 마구 피운단다.
꽃이 얼마나 잘 피느냐가 사과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일이니 꽃을 피우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는 것 같다.
과수 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꽃이 핀다고 하지 않고 꽃이 온다고 말한다.
'올해는 꽃이 영 안 왔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염전에서 바닷물이 소금으로 결정될 때 소금이 온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때 되면 약치고 영양제 주고 풀 깎고...
일년 내내 매달려 살아야 한다.
내가 대충 흘려 들은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니 그냥 자연의 섭리로 저 탐스러운 열매를 손에 얻은 것일까 아님 사람이 제작한 것인가....
나무는 나무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몸살을 앓고 난리를 쳐야만 크고 빨간 사과를 먹을 수 있고 또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열매를 따낸 사과나무를 보고 애썼다는 생각이 어찌 안 들 수 있겠는가...
주렁주렁 사과를 달고 있는 나무를 보면 삶의 무게가 절로 느껴지고 짠하고 애처롭다.
힘들지만 그래도 한국이 재밌고 좋다며 씩씩하고 밝게 웃는 베트남 언니들...
마치 고향극장을 보는 것 같은 입담 좋은 프로할머니팀...
할머니 대장님은 헤어질 때 '내일 모레 쉬고 곱패(글피) 또 나올거제?' 하시며 꼭 오라 하셨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베트남 언니들도 그렇고 할머니들도 그렇고 다들 내일 또 볼 수 있냐고 물어봐주고 인사해 주어서 고마웠다.
마지막 날 돌아오는 오야붕 트럭에서 우리들은 그랬다.
'그래도 이렇게 몸 쓰는 일은 힘들지만 깔끔해...'
'맞아요 딱 마무리하는 맛이 있잖아...'
'그래..직장생활 할 때는 일이 끝나는 느낌이 없이 매일 매일 질질질...'
우리가 4일 간 한 일은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시급 정도 받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직장생활하면서 받은 돈을 시급으로 환산해 보면 지금 이 일에 비해 엄청 많은 돈인데
정말 그렇게 많이 받을 만한 일인가....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도 서로 공감했다.
며칠 지나 몸에서의 아우성이 조금 잠잠해지자 용가리가 물었다.
'너 또 가자고 하면 갈 거냐?'
'어제까지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또 갈 수 있을 것 같아 ㅎㅎ'
기회가 오면 또 하고 싶다.
마지막날 손에 쥐는 돈 봉투의 유혹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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