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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환생 2013/03/29

by jebi1009 2018. 12. 25.

















항상 강 건너 원정 가서 마시면 꼭 '꽐라'가 되어버린다.

그냥 저냥 기분 좋다 얼씨구 하다가 꼭 집에 돌아오는 길에 휙 가버린다.
옛날에는 정말 술먹고 비틀거리는 일은 내 사전에 없었는데...
나이 먹어서 그런가..날이 갈수록 더 심해진다 ㅠㅠㅠ
비슷한 양을 마셔도
어떤 날은 알딸딸한 정도
어떤 날은 맹숭맹숭하다가 막판에 휙 가버리고
어떤 날은 알딸딸하다가 잠이 너무 쏟아져 푹...
빈 속에 마셔 그런가부다 하고 든든히 먹으면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우웩
얼마 전 어떤 모임에 갔는데 사람들도 맹숭맹숭하고(사실 그렇게 가고 싶지는 않았던 자리)
혼자 심심하기도 해서 술이나 먹자..하는 심정으로 초반에 혼자 홀짝거리며 먹다가
나중에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술이 확 올라서 죽을 뻔 했다.




내가 대충 분석해본 결과
섞어마시면 꼭 사단이 난다.
이번에도 막걸리 맥주 소주를 마구 섞어 먹었더니..
그런데 자리에 따라서는 주는대로 먹어야할 때도 있으니 맥주집 가서 저는 소주로 계속 할래요..하기 좀 거시기할 때도 있다.
그리고 난 초반 속도가 엄청 빠르다.
용가리가 이번에도 지도편달해준다.
- 너네집은 혈통이 술 마시는 속도가 엄청 빨라
  그러니까 자리를 봐서 장기전으로 간다 싶으면 니가 페이스를 조절해야지
  맨날 나랑 집에서 먹던 식으로 먹으면 나중에 꽐라되지
  집에서야 먹고 엎어져서 자면 되지만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는, 특히 거리가 30분 이상일 때는 신경 써야지
  택시아저씨가 나쁜 사람이었으면 넌 오늘 같은 날은 완전...
  너 집에 들어오는 모습 동영상으로 찍어놔야 하는데...너 때문에 나까지 잠 설쳤어..
  내가 언젠가는 꼭 동영상 찍을거다

전에는 술마시고 마지막으로 홍어집에 있다가(역시 강 건너 원정)
지하철을 탔는데 졸다가 정거장을 지나쳤다.
두정거장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거기서 지하철이 끊어졌다.
밖에 나와서 방향 감각이 없어 허우적대다가 간신히 택시 잡아 왔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비는 부슬부슬 오고 머리는 산발이고 택시비 내고 오다가 가방에 든 우산이며 이것저것을 질질 흘렸나부다.
그래도 지갑이랑 휴대폰은 있었다.
용가리는 비틀거리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 저것이 정녕 인간의 모습인가..게다가 이 냄새는...
  너 지하철에서 이러고 졸고 있었으면 '지하철 홍어녀'로 동영상 찍힐 뻔 했다.

용가리는 결혼 전에 우리집에 인사왔을 때 우리 아빠랑 삼촌이랑 술 마시다가 아파트 복도에서 완전 대자로
뻗어버렸다.
우리집은 차례지낼 때 청주 대병을 아침 먹을 때 다 마신다.
다른 집은 보통 주전자에 조금 따라서 차례주로 쓰고 음복 정도로 끝나는데 우리는 그것도 아침밥 먹을 동안
대병을 다 비운다. 아니 비웠었다. 용가리 뻗은 날도 아침 먹다가 그랬다.ㅎㅎ
 
술 먹은 다음 날 필수 과정인 지갑과 휴대폰이 무사한가 보고
휴대폰의 통화내역을 본다.
11시가 넘으면 우선 용가리에게 문자가 온다. '너 지금 취했다' 이번에는 못 봤다.
12시가 넘으면 전화가 온다. 역시 이번에 못 받았다.
12시 30분 쯤부터 7번 부재중통화가 찍혔다.
그래도 정신은 있어서 택시를 타면 꼭 택시 지금 탔다고 전화한다.
택시를 타면 잠자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근데 그게 쉽지가 않다.
택시가 회전할 때 몸이 휙 자빠졌다. 택시아저씨는 괜찮으시냐며 자꾸 돌아본다.
내가 혹 택시에 우웩이라도 할까봐 그러시나부다..
택시비 만칠천원을 내고 내렸더니 용가리가 담배피며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는 푹 꼬꾸라져서 zzzz
다음날은 내게서 사라진 날...그 다음날 다시 인간으로 환생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반성하고 부끄러워서 가슴이 콩닥거려 이불 속에서 나오지도 못하면서
왜 또 술을 마실까...
어린왕자에 나오는 술꾼처럼 술마시는 것이 부끄러워 그것을 잊으려 마시는 것일까...
용가리가 다시 인간이 된 나를 보고 말한다.
- 너 텔레비전에 보면 술취한 사람들 난동부리는거 보지? 그거 멀지 않았다.
  너 전에 보니까 술 마시고 지나가는 사람 불러다 한 잔 하겠더라
  그러다가 이제 시비 걸고 싸우는거야..이제 너에게 남은 단계는 그거야..
  술먹고 눈 풀려 히죽거리지, 전화걸지, 한 말 또 하지, 울지(요게 제일 쪽팔리다), 토하지...
  게다가 나한테는 시비도 걸잖아
내가 반격해 보지만 오늘은 말에 힘이 빠진다.
- 자기도 전에 술먹고 목욕탕에서 넘어졌잖아.. 바지에 토하고 온 적도 있잖아..놀이터 벤치에서 잠든 적도 있잖아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어느 가족이 한 상 맛있는 것을 차려서 먹는 장면이  나왔는데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는거다.
용가리와 나는 흥분하면서
- 아니 저럴 거면 저런 상은 왜 차려 그냥 밥만 먹지
  어떻게 저런 상에 술을 안 마실 수가 있지
  우리는 먹다 남은 오뎅국물 한 그릇만 올라와도 딱 한잔씩만 하자..이러는데

이젠 진짜진짜 결심했다.
강 건너 원정 가면 반드시 초장 페이스를 조절할 것이며 11시에는 집으로 출발한다.
그래서 반드시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웬만하면 삼성동에서 송파까지에서만 술 약속을 잡는다.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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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뮤즈 2013/03/30 17:45

    술이란 술은 다 집합한듯...ㅋㅋ
    떡은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 수 있다.
    개는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개가 될 수 있다.

    • 제비 2013/04/03 18:08

      광고에서 본 이야기인데
      버스에 타고 있는 시루떡이 참 인상적이었고
      마음에 확 꽂혔어요 ㅎㅎ

  2. chippy 2013/04/02 01:14

    술상 차리는 솜씨가 전문가 뺨치는 경지십니다. ㅎ...전 술상을 차려 본 기억이 없어요. 캐네디언은 술만 마시지, 와인에 치즈와 약간의 고기류, 올리브나 파테 같은 것도 곁들이긴 하는데요, 대체로 편한 건 그냥 맥주만 마시기라서요. 일과 후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 생활이 없다보니, 파티 좋아하는 사람들은 좀 다르겠지만요...저희 부부는 남편 혼자 밤에 한 잔 마시고 자는 게 일상입니다. ^^

    • 제비 2013/04/03 18:09

      캐네디언처럼 그렇게 깔끔하게 먹어야하는데
      술만 보면 먹을 것을 밝히고 먹을 것을 보면 술을 밝히게 되니...

  3. 너도바람 2013/04/04 08:14

    나 배꼽 찾느라 고생한 거 보상하소.
    하두 유쾌해 읽고, 좀 심심하면 또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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