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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부자 2018/04/11

by jebi1009 2018. 12. 29.

        

지난 주말 하얗게 눈이 내렸다.

그 전날 장에 갔다가 눈부시게 핀 벚꽃도 보고 왔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내렸다.

그날 하루 바람이 불고 눈발이 날리다가 다시 해가 났다가 또 어두워지고 눈발이 날리고.....

화사하게 피어 있던 꽃송이들도 눈발을 맞아야 했다.

3월 내린 눈이 마지막 몸부림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보다.

역시 오리털 파카는 5월까지 빨지 말아야겠다. ㅎㅎㅎ






할미꽃과 수선화도 하얀 눈발을 받았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봄은 왔다.

눈이 내려도 벚꽃 축제는 열렸고 눈발에도 벚꽃은 화사하게 피었다.

텃밭은 잘 다듬어 퇴비를 섞었고 감자를 심고 채소 씨앗도 뿌렸다.

사위도 안 준다는 첫부추 끊어 오이와 버무려 먹었고

취와 머위도 만발이고 달래로 달래장 만들어 김에 싸 먹었다.



눈 맞고 널부러졌던 수선화는 해가 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일어났다.





장에 씨감자 사러 나갔다가 잠시 꽃구경...




튼실한 첫부추는 저녁 소주 안주 ㅎㅎ



마당 수돗가에서 부추를 씻다 보니 돌틈에 제비꽃!


텃밭을 다듬는 일은 매우 힘들다.

어느 틈에 풀들은 마구 돋아났고 그렇게 많은 돌을 파냈건만 밭을 뒤집으면 또 다시 돌이 나온다.

그것도 큰 돌이..ㅠㅠ

호미로 먼저 풀을 싹 걷어내고 삽으로 흙을 뒤집고 퇴비를 섞고 쇠스랑으로 모양을 낸다.

일주일 이상이 걸렸다.

삽들고 밭을 파고 있으니 마을 할머니가 지나가시다 이것저것 참견을 하신다.

'감자 심었나..감자.. 우리는 벌써 심었다. 요기 한 고랑 심으면 한 박스 나온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감자나 고구마를 심으면 멧돼지가 온다는 말에 심지 않았었다.

내가 좋아하는 구황작물 3종세트에 들어가는데도 말이다.

주변에서는 힘들게 심지 말고 그냥 한 상자 사다 먹으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자를 심으라는 할머니 말씀이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장에 가서 씨감자를 샀다.

한바가지도 너무 많아 2천원어치만 달라고 하니 씨감자 파시는 할머니가 고만큼 사서 어따 쓰려고..하신다.

그래..재미 삼아 심어봐라..하시며 씨감자 쪼개는 시범과 심는 방법도 알려 주신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는 감자도 심었다. 기대 만땅이다.



before 왼쪽,  after 오른쪽






씨감자를 눈이 난 쪽을 잘라 잿가루에 굴려 심었다.


오늘은 나머지 텃밭 다듬기를 하고 묻었던 김장 김치를 꺼냈다.

김치를 담는 것도, 김장을 한 것도, 게다가 김치를 땅에 파 묻는 것도 난생 처음이다.

작년 배추가 잘 커서 생각보다 김치 양이 많아 김치 담그다 김치통 사러 가고 쌩쑈를 하다가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아 김치통째로 땅에 파 묻었었다. 우리는 김치냉장고가 없다.

김치를 파내면서 은근 긴장되었다.

어찌 되었을까....

꺼내서 열어 보니 냉장고 김치보다 더 생생하게 보였다.

배추가 덜 절여저 펄펄거려 걱정했는데 의외로 별 탈 없이 김치가 되었다.

덜 절여진 배추로 김치를 담그면 김치가 물러지고 물이 많이 나온다고 했었는데

국물도 적당하고 색깔도 생생했다.

맛이야...내가 만든 것이니 당근 맛있지.. 매우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내 입맛에만 말이다...ㅋㅋ

역사적인 김치통을 파 내서 냉장고로 이관했다.

내 평생 살면서 김치를, 그것도 김장을 해서 김치를 땅에 묻고 살 줄은 정말 몰랐다. 음하하하~


짜잔~ 김치통이 약 5개월 만에 지상으로 나왔다. 역사적인 순간 ㅋ





커피를 주문한 나무님에게 커피를 로스팅해서 보냈더니 커피 부자가 되었다며 좋아라 한다.

커피 부자, 과자 부자, 아이스크림 부자, 맥주 부자...등등만 되어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몇 억은 공과금 정도로 생각하는, 몇 십 몇 백 억이 아무렇지도 않은 돈 부자들은 뭐가 있어야 기분이 좋을까?

가끔 여기 오면 서로 밥값내기 경쟁을 하고 내가 서울에 가면 서로 술값내기 경쟁하는 친구가 있으니 친구 부자,

김치 한 통을 땅에서 얻었으니 김치 부자,

이제 곧 감자 부자도 될 것이다. ㅎㅎㅎㅎ

어제 잘 다듬은 텃밭에 씨앗을 뿌렸는데 밤에 비가 와서 기분이 정말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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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리 2018/04/13 18:57

    수확의 기쁨이란
    그 고생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거슬..
    쪽파를 뽑으며 좋아라만 했던 철없음을
    깊이 깊이 반성합니다!!!
    근데 그 날 파전의 맛은 최고였슴다..^^

    밭 일구는 솜씨가 이제 경지에 도달했네요..
    뜨개 솜씨, 뚝딱 요리 솜씨 등 등..제비님은 솜씨 부자임다~~~

    • 제비 2018/04/15 22:15

      ㅎㅎㅎ 솜씨라니요...지나가던 개가 웃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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