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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딸기 2013/04/19

by jebi1009 2018. 12. 25.


       

참 나는 왜 이렇게 찌질할까...
딸기 한 바구니를 혼자 배뚜드리며 먹다가 딸기 값 깎던 일이 자꾸 생각나서 몸이 꼬일 정도로 민망스럽다.
술 마시면 점점 안 하던 짓도 자꾸 하고 넋두리도 늘어나고..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이제 곧 견적이 나올 집 공사 가격을 깎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랬나?
왜 쓸데없이 딸기 값은 깎고 그랬을까..
딸기를 볼 때마다 딸기집 아저씨들에게 미안타.
그 밤에 남은 딸기들 뭉개지는 것도 걱정될텐데 어디서 술 마신 미친 여자가 나타나서 딸기값 깎아달라고..
귀찮아서 천원 깎아 줬으면 됐지 두 개 산다고 이천원 깎아달라고 어거지를 부리니 얼마나 재수없었을까.
다행히 옆에 있던 너도님이 수습해서 천원 내줘서 다행이다
딸기 팔아 얼마 남는다고 이천원 씩이나 깎아달라고 했을까..
솔직히 술먹은 김에 깎아달라고 했고 나중에는 좀 수습이 안 되었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이천원 깎은 만팔천원만 쑥 내밀면 드라마처럼 해피앤딩 될 줄 알았는데..ㅋㅋ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그런거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라..
옆에 있었던 용가리도
- 넌 정말 이상해..십만원 이십만원도 아니고 왜 이천원 갖고 난리냐..생전 안 하던 짓을..
  아주 애교까지 부리더라..깎아달라고..
  저러면 남들이 알뜰한 줄 알겠지..하지만 백만원 이백만원은 퍽퍽 쓰면서..
  게다가 너 천원 깎아서 택시타고 왔잖아
  니가 택시 탄다고 해서..쯧쯧..

사실 나는 그런 흥정을 잘 못한다. 게다가 소질도 없고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서 정찰제가 좋다.
우리 동네 아파트에 수요일마다 장이 서는데 매주 오시는 과일 채소 파는 아저씨가 나는 살짝 깎아준다.
아저씨 이 방울 토마토 얼마에요? 하면, 응 6천원..이러시고는
다시 내 옆으로 와서 조용히 5천원에 줄게..이러신다.
나는 다른 아줌마들과는 달리 주는대로 가져가고 부르는대로 값을 내기 때문이다.
별로 고르지도 않고..지난번에는 한 번 고른다고 골랐더니 더 이상한 것을 집어왔다.
그냥 아저씨가 주는대로 가져오는 것이 백배 낫다...
반 상자씩 파는 과일도 먼저 반 가져가고 남은 것도 그냥 그 가격에 가져온다.
그러면 아저씨는
사람들이 하나라도 덜 가져가거나 나쁜 물건 남았을까봐 먼저 가져가고 남은 반상자는 잘 안가져 간다고 하신다..
어떤 사람은 저울 가져와서 달아보자는 사람도 있고..

안하던 짓 하면 이상하게 결론이 난다..
전에 학교에 있을 때 정말 번쩍이는 카리스마를 갖고 싶었다.
애들이 쫙 쫄게...걸죽하니 욕 잘하는 샘이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결심하고 나름 각 세우고 말했다.
' 너네 이러면 죽는다..씨발..'
순간 아이들은 푸하..뒤집어지게 웃어제꼈다.
선생님..됐어요..푸하하..
내가 들어도 이상했다. 게다가 뒤에 '발'자는 거의 들리지도 않았고 운율이 맞지 않았다.
한 십오륙년 전 이야기니 이제는 더 잘 할 수있을까?
아..욕 좀 잘 하고 싶다..

옛날에 우리 아빠가 그랬다.
큰 돈은 퍽퍽 잘 쓰면서 이상한데서 절약(?)정신을 발휘한다. 결국 절약도 안되는..
결혼하고 처음에 집을 얻은 곳이 아빠 사무실이랑 가까웠다.
여름방학 때 뒹굴대는데 뜬금 없이 산에 가자는 아빠의 전화가 왔다.
우리는 별로 사이 좋은 부녀지간이 아니었기에 좀 이상하기도 했지만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같이 갔다. 안 간다고 하면 나중에 두고두고 씹힐 것도 좀 걱정이 되어서..
무슨 산인지 기억도 안나는데 하여간 올라갔던 곳 반대편으로 무슨 버스 종점 같은 곳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없어진 좌석버스..노선은 같아도 일반 버스 보다 버스비가 비쌌다.
덥고 다리도 아프고 해는 내리쬐고 빨랑 버스 타고 가고 싶은데 아빠는 굳이 일반 버스를 타야 한단다.
버스비 아까워서 일반 버스 타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더 웃긴 것은 잔돈이 없어서 돈을 바꾸려고 옆에 있는 노점상 할머니에게 다 녹아빠진 가나 초콜렛을
시중 가격의 3배나 주고 샀다는 것이다..
단지 일반 버스를 타기 위해 잔돈을 바꾸기 위해서 말이다..헉!
이 얼마나 알뜰한 절약정신이란 말인가.....
좌석버스는 자꾸 출발하는데 일반 버스는 안 가는거다. 짜증짜증..
결국 좌석버스 한 5대 정도 보내고 일반 버스 타고 왔다.
돌아와서 쑥냉콩국수를 사주셨다. 쑥으로 면발을 뽑은...
배고프고 더워 죽는 줄 알았는데 콩국수는 맛있었다.

살면서 참 우리 아빠 이상한 거 많다고 욕 했는데 언듯언듯 내가 그런 욕했던 일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용가리가 그런다.
- 니 안에 장인어른 있다...
헉!! 호환 마마 보다 무서운 말이었다.

우리 아빠는 또 비싼 고기집 가서 고기 먹을 때도
고기가 다 익어 잘라 놓으면 그 조각을 세어보며 이게 한 조각에 얼마라며..고기 잘라주는 아주머니가 있을 때 꼭 우리에게 말하고는 했다.
아빠가 한 말 오리지날로 하면 '이게 한 모타리에 삼천원이다..'
난 그런게 너무 싫었다.
근데 저번에 주희 고기 구워줄 때(자라나는 청소년이라 먹인다. 나는 별로 안 좋아해도)
야 이거 한 조각에 얼만지 아냐? 이랬다..흑흑흑...

딸기 이야기 하다가 콩국수에 이어 고기 이야기까지 갔네 그려..
어쨌든 그 날은 살랑거리는 봄 바람과 살구꽃에 취하고
둔촌시장 작은 횟집의 귀엽고 재미있으신 주인 아주머니에게 취하고
먹음직스럽게 썬 도다리와 우럭, 꼬물거리는 낙지와 멍게 해삼에 참이슬을 넘겼으니 그런 이상한 짓을 했지..
얼떨결에 그냥 받아온 책도 맘에 걸리고 딸기집 아저씨들도 맘에 걸린다..
그래도 딸기는 맛있게 다 먹었다..이런 찌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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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uiya 2013/04/19 19:26

    재미있어요.
    저는 이번 학기에 500명이 넘는 수업이 하나 있답니다.
    이번 주가 두 번째였는 데, 학생들이 내가 웃기는 사람이라는 걸
    감 잡았나 봅니다. 웃을 준비가 되어 있더군요....

    • 제비 2013/04/23 20:29

      우와~~오백명이요?

  2. 올리브 2013/04/19 21:35

    금욜밤, 일에 지쳤는데.... 글 읽고 기분전환이 확 되었답니다.
    공감이 팍팍 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셨네요.^^

    • 제비 2013/04/23 20:30

      공감이라고 하시니..다들 찌질한 면이 있는가봐요 ㅎㅎ

  3. 뮤즈 2013/04/20 10:10

    ㅎㅎㅎ... 소탐 대실... 사소한 것에 목숨거는 것 저도 자주 그렇지요.
    그래도 제비님이 깎아 달라고 애교(?)부리는 건 봐줄만 하다는거...참 요상해요. ㅎㅎㅎ
    저도 아침부터 딸기 한 팩 축냈습니다.

    • 제비 2013/04/23 20:32

      크게 잃을 것도 없는 인생이 왜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지...쯧쯧...제가 이렇게 후져요 ㅋㅋ

  4. chippy 2013/04/21 00:03

    다음에 그 딸기집 가셔서 많이 팔아주시면 되죠. ㅎ...재밌게 읽었어요. 장면이 생각나서...ㅋ. 그 아저씨도 이해하셨겠지요. ^^

    • 제비 2013/04/23 20:33

      chippy님 계신 곳은 딸기가 맛있고 싼가요?

    • chippy 2013/04/23 21:50

      이곳 딸기는 제철이 봄이 끝날 무렵...5월 중순에서 6월 초(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에 나와요. 한국처럼 온실재배는 안하기 때문에 그 외의 기간은 전부 미국과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수입입니다.
      제철엔 노지 딸기가 전부라 크기는 작지만 달면서 새콤한 맛도 강해요. 수입산은 대체로 물맛과 신맛이 반반입니다. 그래서 제철에만 열심히(아주 잠깐이라) 먹고, 잼도 만들고, 얼려서 저장도 합니다.

    • 뮤즈 2013/04/24 09:42

      33년 전 큰 아이를 날 때 (5월 31일) 딸기가 얼마나 비쌌던지...하우스 딸기였을거예요.
      한국에선 거의 사라진 노지 딸기...저도 그 맛이 그리워요. 학교갔다 오면 딸기밭에 가서 그대로 젤 예쁜 것들...대체적으로 길쭉하고 꼭지부분이 볼록 올라와 있는 게 맛있었어요...따먹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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