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풀인지 나무인지 꽃인지 다 거기서 거기로 비스무리하게 보였었다.
꽃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간청재 마당에도 처음에는 그저 먹을 것들 심어서 먹으려는 마음만 가득했었다.
내 눈에 꽃이라는 것이 그리 들어오지는 않았었다.
서울에서도 예쁘게 만든 꽃다발이나 꽃무늬가 들어간 스커트 정도가 내 주변 꽃들의 전부였다.
간청재에 심으라며 사람들이 꽃씨를 건넬 때에도 꽃이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 뭐...이런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마구 솟아나는 잡초 더미에서 꽃들이 고개를 수줍게 내밀면 그것이 그렇게 귀하고 대견하게 보이는 것이다.
사실 꽃씨를 뿌려 꽃이 자리 잡게 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아무리 잡초를 뽑고 이른 봄에 씨를 뿌려도 언제나 잡초가 더 먼저 더 왕성하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꽃이 피어야 이것이 꽃인지 아닌지 알지 잡초와 뒤섞이면 무엇이 꽃인지 몰라서 같이 뽑아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3년 정도 풀을 뽑고 씨를 뿌리기를 반복하니 이제 수레국화는 담장 넘어로 얼추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꽃씨를 뿌려 꽃밭을 만드는 것은 적어도 3년 이상은 해야 하는 것 같다.
해마다 같은 자리에 꽃씨를 뿌려도 꽃들이 번창하는 것은 또 제각각이다.
어떤 해는 한련화가 만발했는데 다음 해는 한 두개 피고는 그만인 적도 있다. 대신 패랭이가 만발이고 말이다.
기본적으로 강력한 아이들이 있기는 하다.
맨드라미와 루드베키아, 금잔화는 강력하다.
일부러 신경쓰지 않아도 그 씨앗이 엄청 많이 뿌려지고 게다가 사방팔방 날아가서 엉뚱한 곳에 꽃이 피기도 한다.
루드베키아는 강력해서 마당 곳곳 여러 곳에 무리져 피었는데 담장 밖까지 씨가 날아가서 피었다.
또한 키가 큰 꽃들은 위치를 잘 잡아야 한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마구 꽃씨를 뿌렸더니 키큰 아이들은 마당 안쪽으로 널부러지기 때문이다.
키가 큰 아이들은 마당 가장자리로 심어야 하고 돌담 너머로 보내야 한다.
처음 수레국화를 마당 안쪽에 심었다가 비가 오면 다 쓰려지고 지저분해지고 아무데나 꽃이 번져서 애를 먹었었다.
접시꽃인 줄 모르고 앞쪽에 씨를 뿌렸는데 내년에는 뒤쪽으로 옮겨야 할 것 같다.
키큰 접시꽃 뒤로도 피어봐야 알겠지만 꽃씨들을 뿌려놨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만난 아이는 접시꽃이다.
예전 봉암사 스님이 주신 꽃씨가 있었는데 무슨 꽃씨인지는 몰랐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작년에 뿌렸는데 잎사귀만 나고 꽃은 피지 않았었다.
잎이 벌레도 먹고 지저분해져서 뽑아버릴까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니 꽃망울이 달린 것이다.
그리하여 그 정체모를 잎사귀가 접시꽃이라는 것을 만방에 알리며 피었다.
꽃을 촬영하면 이름을 알려주는 앱을 다운받았는데 잎을 촬영하고 무슨 꽃인지 알려주는 앱도 있으면 좋겠다.
잎만 보고서는 당최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없으니...아니, 잡초인지 꽃인지도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제 한 3년 지나니 잡초는 좀 낯이 익어서 뭔가 독특한 애들이 올라오면 일단 뽑지 않고 잠시 두고 본다.
과꽃을 뿌린 자리에도 마구 풀들이 솟았는데 내심 과꽃이겠거니 하면서 두고 보는 중이다...
또 엊그제 꽃씨를 뿌린 마당 가장자리에 미친 듯이 솟아난 쇠뜨기를 좀 걷어냈더니 그 곳에도 낯선 모양의 풀들(?)이 있었다.
아마도 올 봄 옆 골짜기 스님이 주신, 무슨 엄청 좋은 꽃이라 했는데 이름은 까먹은 그 꽃이 아닐까 의심하는 중이다.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도라지꽃이 피기 시작했다.
마치 담장처럼 마당 경계부분에 빙 둘러 핀 것이 정말 예쁘다.
도라지는 그저 관상용으로 꽃만 내내 피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캐서 다듬는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어깨와 등짝이 아파온다..ㅠㅠ
능소화는 올해도 잎만 무성하고 꽃은 피지 않고 있다.
첫해 옮겨 심었을 때만 꽃이 피었고 그 이후로는 꽃이 피지 않는다. 왜그럴까? 잎은 무성한데....??
고고한 자태의 금꿩의 다리도 꽃을 피웠다.
작년에는 꽃망울이 잔뜩 달린 상태에서 비 때문에 그만 가지가 부러져 속상했었는데 올해는 휘청휘청하면서도 꽃을 피웠다.
금꿩의 다리는 키가 너무 커서 걱정이다.
내 키를 훌쩍 넘는 길이만큼 가지를 뻗어 그 끝에 꽃이 달리니 항상 위태롭고 꽃 보기도 힘든 판이다.
키를 좀 줄일 수는 없나? 내년에는 가지를 뻗을 때 좀 잘라줘 볼까? ....
올해는 한련화가 맥을 못추고 패랭이가 만발했다.
마당 수돗가에 핀 봉숭아...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꽃들이 얼굴을 바꿔가며 나타나는 것이 이제는 설레고 기다려진다.
상추나 감자, 토마토를 심었을 때의 마음과 거의 똑같아지고 있다.
먹을 것, 열매에만 눈이 어두웠던 내가 이제는 꽃들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꽃을 기다리며 꽃을 보며 설레고 좋아하게 되었고, 꽃이 스러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게 되었다.
어디에 있어도 꽃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