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나름대로 대비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밤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쳤다.
어느정도 바람이 물러가자 안부전화가 여기저기서 오기 시작했다.
그때 서울은 태풍이 지나가는 중이었나보다.
바람이 장난이 아닌데 너네 집은 안 날아가고 잘 있냐고...
딸아이도 서울에서 태풍이 불어닥치니 전화해서 잘 살아있냐며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보험에 꼭 들라는 이야기도 함께...ㅎㅎ
우리 엄마는 돌덩이가 굴러 떨어질까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걱정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특별한 피해는 없었지만 올해 붙인 누마루 창호지가 세 쪽 날아갔고 파와 고추가 넘어졌다.
뒤엉킨 토마토는 태풍에 부러진 곳들이 많아 가지를 정리하다가 짜증나서 확 다 잘라버렸다. ㅠㅠ
한냉사를 씌워 놓은 배추와 무도 다시 살피고 벌레들을 잡았다.
하나하나 고추를 세우고 부러져버린 대파는 다 뽑았다.
뽑고 나니 어찌나 많은지....ㅠㅠ
썰어서 냉동보관 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년 대파를 심기 전까지 먹을 양으로 충분한 것 같다.
고추는 빨간 것이 많이 달렸는데 날씨가 계속 이러니 딸 수가 없다.
건조기도 없는데 말리기는 커녕 상해버리기 쉽상이다.
할 수 없이 추석 서울 다녀와서 따야겠다.
태풍 지나고 해가 나면 빨래도 널고 이불도 널고 싶다.
아직은 날씨가 오락가락이다.
내 마음 속에도 태풍이 지나간 것 같다.
지난 한 달간 힘들었다.
그래....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 치면 그렇게 힘들어하는 내가 이상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달 동안 용가리와 나는 외로웠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일로 20년 넘은 친구들과 절교하기도 하고 부모 자식 간에 금이 가기도 했단다.
사실 두려운 마음에 딸아이와 이 문제를 말하지도 못했다.
난 추석이 두렵기도 하다.
분명히 시댁과 우리집 형제들은 나와는 다른 생각으로 말할 것이다.
그냥 책임 없이 언론에서 흘리는 방향에 보조를 맞출 것이다.
하지만 딸아이와는 진지하게 말해야 할텐데.....
엄청나게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해 진실을 보게 해 주어야 할텐데....
혹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
내가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온지 만 3년이 넘고 내년 3월이면 4년이다.
자본주의 급행열차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이면 어느정도 생각이 나와 비슷하고 진보적일 것이라 착각했다.
그런데 사실 자본주의 열차에서 뛰어내린 것이 아니라 뛰어 내려 특급 열차로 바꿔 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불의에 함께 분노하고 작은 정의에 함께 기뻐할 줄 알았는데.....내가 생각하는 불의와 정의 말이다.
이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언론과 검찰은 자신들이 내지른 것에 대해 굽히지 않고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어 계속 밀고 나갈 것이다.
더 정교하고 더 악착스럽게 덤빌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 싸움에서 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탄핵 촛불에는 가지 않았었다.
명백하게 드러난 일이었고 싸움의 대상은 확실했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그저 텔레비전 앞에서 촛불을 켰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더 세밀하게 파고 들고 있다.
이번에 만일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기꺼이 고속버스를 탈 것이다.
사실 공지만 뜨면 가려고 벼르고 있었다.
일단 태풍은 지나갔다.
그래도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어떤 악다구니를 할지라도 지금이 아니면 각기 조직에 충성하는 거대한 집단들을 개혁할 수 있는 시간은 물 건너 갈 것 같기 때문이다.
나? 나는 사실 개혁이 되던 적폐가 청산이 되던 별 상관 없이 살 수 있다.
이 골짜기에서 그저 안 보고 안 들으면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그래도,그래도 말이다....그냥 가만히 있자니...가만히 있자니 속에서 열불이 나고 이렇게 나불거리지도 않으면 내가 너무 쪼다같다는 생각이 마구 든다.
태풍이 지나갔다.
내일 해가 나면 밀린 빨래를 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