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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물놀이

by jebi1009 2019. 8. 10.

살면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물놀이다.

한여름 바닷가를 생각하면 따가운 햇살과 온 몸에 달라붙는 그 끈적거리는 습도가 먼저 떠올라 주로 겨울에 바다를 찾았다.

숲 속의 계곡 물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내려가 만지지도 않았었다.

게다가 물에 발이라도 담그면 신발이 젖지 않게 발도 닦아 말려야 하고 옷에 물 튀는 것도 싫고 등등.....


옷 입은 채 물 속에 들어가 노는 사람들 보면 저 젖은 옷을 입고 어떻게 가냐...찝찝하게...이러고 있었었다.

지리산 내려오면서 좋은 계곡이 가까이 있으니 한 번 가볼까도 했지만

사람들 몰리는 곳이 아닌 나무 그늘도 좋고 시원한 물이 있는 곳은 또 힘들게 기어 올라가야 해서 여름에는 움직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물놀이까지는 아니어도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엊그제 잠시 다녀간 딸아이가 해 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계곡물에 발 담그고 삶은 옥수수 먹는 것이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서로들 구찮아하며 딸이 머무는 3일 내에 다녀오기는 힘들 것이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우리는 일찍이지만 8시가 넘은 시간) 옆 골짜기 스님께서 바람같이 나타나서 어제 삶은 것이라며 옥수수 한 아름을 안겨주고 가셨다.

아...이것은 신의 계시다. 계곡에 가서 발 담그고 옥수수 먹으라는 계시...

그리하여 옥수수와 자두와 커피를 내려 우리도 남들처럼 물놀이를 갔다.


집에서 신던 쓰레빠 끌고 20분 정도 가면 뱀사골 계곡.

서울에서 다녀가신 설님의 정보에 따르면 '신선길'이라는 곳이 계곡 따라 걷는 길이고 바로 아래 계곡으로 내려갈 수도 있어 힘들지도 않고 좋다고 하셨다.

지리산 언저리에 사는 우리가 서울 사는 설님에게 받은 정보다.

가 보니 그 길이 바로 와운마을 천년송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람쥐 봤다며 자랑하는 딸에게 '우리집 마당에서도 많이 볼 수 있어...' 별 거 아닌 듯 대꾸했다. ㅎㅎ











저질 체력을 가진 딸아이와 걷는 것을 귀찮아하는 우리는 그래도 사람들이 없고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 조금 걷다가 더 이상 욕심 내지 않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드디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옥수수 먹는 과제를 실행했다. ㅎㅎㅎ






어쩐일로 용가리도 적극적이었다.

돌 사이로 내려오는 물에 머리를 적시고 우리가 앉아 있는 곳으로 물보라를 날리고....

'아빠가 웬일이야? ㅋㅋㅋ'

'그러게..ㅋㅋ'

예전의 용가리는 우리가 계곡으로 내려가면 먼 발치서 보면서 조심하라고 말만 하고 절대 같이 발 담그지 않았다.


'너도 만만치 않아'

내가 딸아이에게 말했다.





사실 딸아이도 이렇게 발 적시며 물장구치며 노는 아이가 아니었다.

어렸을 때(걸음마도 못할 때) 바닷가에 데려가 발이라도 담가주려고 하면 짜증을 내고 울었었다.

보통 아가들은 고운 모래밭에 잔잔한 물결이 일 때 발 적셔주면 좋아한다고 했는데 우리 딸은 빽하고 울었다.

조금 커서도 발에 모래 묻는다고 바닷가에 가서 파라솔 밑 돗자리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함께 간 다른 아이들은 물가로 달려가서 노는데 그 돗자리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었다.

산속 계곡에 가서도 물이 튈까봐 멀찌감치 떨어져 깨끗한 바윗돌에 앉아 지켜보기만 했었다.


'사람은 변하나봐...'

딸아이가 말한다.

'아냐...사람은 안 변해..그냥 좋아하는 것이 그때마다 달라지는거지..'

'오~ 엄마 그 말이 맞는 것 같애'

딸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세수하는 용가리에게 달려가 똥침을 날렸다.ㅋㅋ


닭백숙 해 주는 것도 이번 과제 중 하나였는데,

내가 매번 내려오면 불 때서 닭 한 번 고아줄게....이 말을 3년 째 하고는 못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초복 때 딸아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가 안 해주는 닭백숙 실장님(딸아이 알바하는 쌀국수 가게의 실장님)이 복날이라고 해 줬다며....

그때 쫌 찔려서 이번에 내려오면 꼭 해주리라 마음 먹었었다.

내친 김에 계곡에 다녀온 날 닭도 삶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숙제를 해치운 기분이 들어 개운했다. 이제는 닭백숙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딸아이가 무효란다.

불 때서 가마솥에 삶아야 하는데 가스불로 삶았다고....

오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하고 힘들고 더워서 화덕에 불 붙이는 것을 안 하고 휴대용 가스렌지를 밖에 놓고 삶았더니 장작불로 다시 해 줘야 한단다. ㅠㅠ

어쨌든 물놀이에 닭백숙까지 먹었으니 지리산 골짜기에서 여름의 관용구를 제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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