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삽을 들었다.
호미와 낫으로 풀을 뽑거나 베는 것은 늘상 하는 일이지만 삽질은 늘상 하는 일이 아니다.
땅을 상대로 하는 여러가지 일 중에 단연코 가장 힘든 것이 삽질이라 할 수 있다.
봄에 밭을 만들고는 한 동안 잡지 않았던 삽인데 어제 확실하게 몸을 풀고 본격적으로 등판했다.
무와 배추, 쪽파를 심기 위해 밭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8월 말까지는 심어야 하는데 연일 울려대는 폭염주의보 재난문자를 보며 밭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날씨를 보며 상추를 비롯한 각종 쌈채소들을 제공했던 텃밭을 정리하고 살살 풀을 뽑으며 몸을 풀었고,
드디어 어제 바람의 기운이 심상치 않은 것(?)을 감지하고는 본격적으로 밭을 만들었다.
이제 바람의 기운에서 여름은 느낄 수 없다.
한 동안 열려 있었던 창문들을 모두 닫았다. 조만간 다시 솜이불을 꺼내고 군불을 지펴야 할 날이 올 것 같다....
여름 이불 덮은지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억울하다..ㅠㅠ
삽으로 땅을 파 뒤엎고 쇠스랑으로 다듬었다.
금방 몸이 알고는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
여름 체력 보강이 허술해서 몸이 휘청휘청...ㅠ
땀을 한 판 흘리고는 삽을 꽂으며 다듬어 놓은 밭을 보니 기분은 좋았다.
힘들어도 몸은 확실히 풀렸다~~
이제 무씨를 넣고 배추 모종을 사다 심으면 한 해의 농사는 얼추 마무리된다.
무 배추 심고 거두어서 김장하면 정말 모두 끝나는 것이다.
새로 심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으로 이제는 텃밭을 정리해 나가는 것만이 남았다.
조만간 오이와 토마토는 정리하고 고추는 몇 번 더 따야 할 것 같고 10월 쯤 땅콩 수확이 남았다.
대파는 반 쯤은 뽑아서 용도별로 썰어 냉동실에 넣을 것이고 반 쯤은 밭에 남겨서 겨울을 넘기게 할 것이다.
호박 두 개를 남겨 놓았으니 누런 호박이 되는지 살펴보고
마당 가장자리 꽃대의 잔해나 나뭇가지들을 조금 정리해 주어야 할 것같다.
산딸기 나무들도 너무 산발적으로 자라서 다시 자리매김해 정리하고 살짝 방치한 외곽 부분의 칡과 덩굴풀들도 쳐내야겠다.
참 알밤 줍기가 남았구나...ㅎㅎ
밤도 잘 주우려면 밤 나무 주변 풀을 베어 주어야 한다.
1년 주기로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어제같은 오늘이 하루도 없는 생활이다.
부추꽃이 예쁘게 피었다.
내가 심지도 씨앗을 뿌리지도 않았는데 맨드라미 군락이 만들어졌다.
씨앗은 뒷마당에 조금 뿌렸었는데 여기까지 날아와 꽃이 되다니.....!
예전에는 담요같고 이쁘지도 않아서 별로 안 좋아했던 꽃인데 지금은 나름 괜찮다. ㅎㅎ
어제는 영화 한 편 때리고 툇마루에 나갔더니 달이 어찌나 크고 밝게 떴는지...정말로 휘영청 밝은 둥근 달이었다.
마당이 훤히 비쳐 정말 책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책을 가져 나와 펼쳐보니 정말 글자가 읽혔다. 대박!
나 하는 짓을 보고 용가리가 참 가지가지 한다며 놀렸다.
뭐 어때? 가지가지 하는게 뭐 나쁜가?ㅋㅋ
벌써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