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집 할머니께서 감을 한 바구니 가져다 주셨다.
홍시 만들어 먹으라며 건네주시는데 딱 봐도 크고 좋은 놈들만 골라서 가져오신 것 같다.
감나무에 감이 열리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감을 따는 것도 무척 수고로운 것을 알게 된 후
이런 농작물을 받고 나면 감사한 마음이 엄청 더 커진다.
감을 받고 나니 이제 감을 깎아야 할 시기인가 보다.
장날에 나가면 감이 나와 있을려나....
지난 장날에는 단감만 나와서 감을 못 샀는데 이번 장날에는 감이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번 장날에도 고종시나 대봉 등등 깎을 감이 눈에 잘 보이지 않았다.
아직 이른가 싶기도 했지만 작년이나 재작년의 경우 10월 말이면 감이 대부분 많이 나왔었다.
내가 해마다 샀던 감을 파는 할머니는 올해에는 할아버지가 허리를 다쳐서 감을 영 못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올해는 감이 없다고...ㅠㅠ
감을 못사고 가려나 했는데 다른 할머니가 팔고 있는 감을 발견했다. 대봉이었다.
감을 깎으려고 한다니 작고 단단한 것은 깎아도 크고 발간 것은 그냥 홍시 만들어 먹으라신다.
할머니는 감은 깎아봤냐며 영 신통치 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신다...그냥 홍시나 먹으라고 하시는 듯....ㅠㅠ
그래도 그나마 단단한 것으로 다시 골라 한 상자 가져왔다.
올해는 감이 잘 없다고, 감이 많이 안 되었다고도 하신다.
읍내 나가 돌아오는 길에 아랫집 할머니께 달콤한 빵을 사다 드렸다.
할머니는 이런 거 뭐하러 사오냐시며 야단하시며 손사레를 치셨다.
그래도 별 거 아니니 할아버지랑 텔레비전 보시면서 드시라며 손에 쥐어 드리니 잠깐 기다리라며 집으로 들어가신다.
김치를 건네 주시기에 벌써 김장하셨어요? 했더니
'오늘 아들이 온다고 해서 김치를 좀 담았는데 바쁘다고 못 왔어...
김치 가져다 저녁 먹어...나가서 돈 쓰며 사 먹지 말고 오늘 저녁은 이 김치 해서 밥 먹어...'
ㅎㅎㅎ 우리가 맨날 돈 쓰면서 밥 사먹는 줄 아시나보다.
그리고 그 아드님은 엄마가 이렇게 김치도 새로 담갔는데 왜 안 오셔가지고 오히려 우리가 면구스럽게 만드남...ㅠ
아드님 위한 김치 우리가 대신 먹는 황송함을....
옆에 텃밭을 보니 김장 배추에서 몇 개 뽑아 새로 김치를 담그신 것 같다.
그리고 검은 비닐 봉투를 또 내미신다.
'우리 추자를 좀 했거든.. 요거 가져다 깨 먹어...'
열어 보니 호두가 한 아름 담겼다.
아이고 이 귀한 것을 주세요...따고 말리고 힘드시게 하신 것을...
가져가서 깨 먹으라며 자꾸 가져 가라고 주신다.
그리고는 덧붙이신다.
'도시에서 살다 와서 뭐 하나라도 먹으려면 다 사다 먹어야 할낀데..쯧쯧...'
감 주신 것이 감사해 작은 빵 하나 읍내에서 사다 드렸는데 다시 김치며 호두며 또 주셨다
이를 어쩌나...고마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종일 감을 깎았다.
크기가 들쭉날쭉이라 갯수는 작년보다 적다.
큰 놈은 워낙 커서 저게 마르기는 할 것인가.....걱정이다.
그래도 곶감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읍내 나간 김에 고추도 빻았다.
올 고추 성적은 중간...
첫 해는 500원, 두 번째 해는 3000원, 올해는 1500원.
방앗간 고추 빻는 가격이다.
즉 고춧가루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ㅋㅋ
그래도 김장하고 둘이서 반찬 해 먹을 양은 나온 것 같다.~~
걱정하던 나무도 들여 놓았다.
올 겨울을 넘기려면 나무가 필요했지만 어찌 될지 몰라 그나마 조금 남은 나무 아까워서 잘 때지도 못하고 있었다.
우리의 구세주는 둥이아빠!
어디 나무를 알아볼 주변머리도 없고 트럭도 없어서 꿍꿍거리고 있는 우리에게 언제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다. ㅎㅎ
오늘 용가리와 나가서 나무를 한 트럭 내려 놓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
이렇게 내려 놓은 나무를 보니 나무가 예뻐보이기까지....앞으로 더 예쁘게 잘라 차곡차곡 쌓을 것이다.
지리산 내려와 살면서 매 순간 부자가 되는 기분을 만끽한다.
이웃 할머니가 주신 김치 한 봉지, 호두 한 봉지, 장차 곶감으로 변신할 감이 94개, 고춧가루 한 봉지, 장작 이~~~~만큼!!
이 정도면 정말 부자 아닌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