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재난문자의 빽빽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이 계속되지만 그래도 올 한 해를 위해 밭도 갈고 기타 등등의 준비 작업은 시작되었다.
간청재 머물기 시작한지 만 4년이 지나고 5년에 접어든다.
나름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변화무쌍한 일들이 생기니 항상 새로운 것이 또 농사다. (농사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라서 다른 말을 생각했는데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올해는 고라니가 얼마나 먹어 치울 것인가...또 먹지 않던 어떤 새로운 작물까지 먹어 치울 것인가...관심의 포인트다.
땅콩은 한 해 쉬고 감자는 좀 늘이기로 했다.
이리저리 텃밭 자리 배치 디자인을 끝냈다.
한냉사를 씌울 것들과 고라니 접근 금지 줄을 칠 것들을 생각해서 수량을 고려한 디자인이다. ㅎㅎ
일주일 쯤 고생해서 밭 만들고 퇴비 놓아서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씨감자 사서 심는 것을 시작으로 텃밭 곳곳이 채워질 것이다.
축대 비탈진 면 수레국화가 나오는 곳을 정리하니 어찌나 뿌리가 튼실한 풀들이 콱콱 박혀 있는지...푹 고아 먹으면 왠지 약이 될 것 같은 비주얼이다.
역시 삽질은 힘들다....오랜만에 몸을 쓰니 허리, 등짝 아프고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겨울 동안 한량같이 놀다가 이제 적응하려면 좀 힘들겠다.
겨울을 넘긴 쪽파들을 뽑았다.
작년 김장할 때 쓰고 파전 부쳐 먹고 남은 것인데 뽑으면 다듬어야 해서 그대로 놔 두었던 것이다.
겨울에 노랗게 되고 다 죽었나 했었는데 요렇게 다시 파릇파릇 통통해진 것이다.
반갑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쪼그리고 앉아 다듬을 생각에 계속 못 본 척 하고 무시했으나 밭을 만들려면 뽑아야만 했다.
결국 쪽파 지옥을 경험했다. 아이고 어깨 허리 등짝이야~~
밭에서 삽질하다가 잠시 툇마루에서 쉬고 있는데 우리집 단골 양이가 소리없이 나타났다.
한 번 흘깃 보고는 계속 앉아 있으니 살금살금 마루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회적 간격(?)을 유지한 채 능청스럽게 앉아 있다.
처음에는 눈길만 줘도 도망가던 놈이 어찌나 능청스러워졌는지....
멸치나 참치를 줄 때도 있지만 오늘은 장화 벗고 들어가기 귀찮아서 그냥 참기로 했다.
고양이 사료를 조금 사다 놓을지 고민이다...이러면 안 되는데...귀여워하면 안 되는데...ㅠㅠ
꽃망울이 팝콘같이 터지기 시작했다.
세상은 어수선하고 기레기들과 검찰, 그리고 미래어쩌구 쪽 인간들은 사람 빡치게 하는 재주를 여전히 뽐내고 있지만 그래도 봄바람은 살랑거리며 불어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서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꽃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딸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봄바람 하면 이 노래가 떠오른다.
희망차고 설레는 봄이 아니라 덧없음과 쓸쓸함이 뭉텅 묻어나는 봄바람이지만 봄냄새가 제대로 나는 것 같은 노래다.
복수초와 할미꽃도 인사했다.수선화도 대기 중이다.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이 전쟁이 어느 정도 끝나 있으면 좋겠다.
힘들게 싸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같이 웃고 같이 울면서' 이 시기를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