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결혼한지 25년이 되는 날이다.
생일이나 기념일은 그저 홀케잌(조각케잌이 아닌)을, 그것도 아주 맛있고 조금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먹는 날로 지내고 있지만
이번 결혼 기념일은 술잔을 채우며 25년 간 살아 주느라 고마웠다고 서로 위로했다. ㅎㅎ
이제는 사치스러운 케잌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 그저 프렌차이즈 빵집 케잌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케잌은 옳다.
난 왜그런지 케잌에 대한 로망이 있다. 동그랗고 커다란 케잌에 대한 로망....ㅋ
사실 25년 기념으로, 또 간청재 5년차 기념으로 여행을 가려고 했었다.
일찍부터 여행가려고 막 챙긴 것이 아니라 작년 여름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를 읽고 내친 김에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한 번 더 읽게 되면서 스페인과 포루투갈에 다녀오면 어떨까? 했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내년이 결혼 25년이니 핑계를 만들어 볼까? 이렇게 말이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나를 처음 데리고 갔던 그 새벽을 기억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첫 페이지와 새벽의 안개 낀 거리를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책 표지를 보면서 정말 후딱 읽어버린 책이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었던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생각나서 다시 읽었었다.
두 책은 분위기와 깊이는 다르지만 구조가 정말 닮아 있다.
한 권의 책이 주인공을 끌고 간다는 것. '바람의 그림자'와 '언어의 연금술사'
게다가 스페인 내전과 카네이션 혁명. 전쟁과 독재와 혁명이 두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된다.
그리고 주인공이 찾아가는 책 속의 인물들이 모두 잘생겼다는 점도...ㅎㅎ
어쨌든 여행은 물건너갔고 다시 케잌에 집착(?)하는 기념일을 보냈다.
그래도 읍내 치킨으로는 아쉬워서 회를 먹기로...회를 먹으려면 좀 멀리 나가야 하는데 또 나가는 김에 영화를 보기로...
극장이 문을 닫았는지 열었는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 숙제처럼 빚이 있는 영화가 개봉되어 노리고 있었다.
다큐영화 '유령선'.
다행스럽게도 진주에 한 곳에서 상영중이었다.
극장은 거의 무인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무인 발권기로 티켓을 사고 그저 안내판에 따라 자율 입장했다.
검표도 하지 않고 이런 저런 유의사항만 상영관 입구에 안내해 놓았다.
매점도 문을 열기는 했으나 직원이 상주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용가리와 나, 두 명의 전용관이었다.^^;;
우리가 간청재 와서 주로 봤던 영화는 그 전에도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두 세 명은 있었는데 이렇게 단 둘이 보기는 처음이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다.
'유령선'은 세월호에 관한 다큐영화다.
'그날, 바다'를 보고 충격적이었는데 이어진 이번 영화도 충격적이다.
이렇게 의문점을 가득 남겨 놓고 있는데 언제 쯤이면 밝혀지게 될까...
이런 의문점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다큐 제작자들에게 정말 경의를 표한다.
이 수많은 데이타를 눈이 빠지게 보고 또 봐서 결정적 조작 증겨를 찾아 내고, 확인하고 다시 또 보고....
사람들 많이 봐서 박스오피스 1위 만들어주고 싶다. 지금 이 상황에서만 1위 가능하니까^^
세월호와 천안함은 어찌된 것인지 나 죽기 전에는 그 진실을 꼭 밝혔으면 좋겠다. 정말정말정말.....
518이 40년이 되도록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데 세월호는 언제쯤 다 매듭짓고 그 아이들을 잘 보내 줄 수 있을까..ㅠㅠ
조촐하다면 조촐하고 사치스럽다면 사치스러운 25년 기념 밥상이다.
25년 전우애로 잘 살았다. 서로 불쌍하게 여기며 잘 살아 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