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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프리마켓 체험

by jebi1009 2020. 6. 23.

상상만 해 보던 장터에서의 장사꾼 체험을 해 보게 되었다.

간청재 이사 오기 전, 집 터를 마련하고 집을 짓기까지 이 근처를 들락날락하면서 실상사 근처나 둘레길 근처에서 보는 작은 장터(?)가 참 보기 좋았었다.

옥수수를 삶아 오거나 감을 따 오거나 각종 나물들을 바구니에 늘어놓고 다듬으며 파는 모습이 좋았었다.

대부분이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었다.

그 옆에서 나도 옥수수를 삶아 오거나 감 말랭이나 고구마 말랭이를 예쁘게 포장해서 파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이 철 없는 상상을 원대한 포부를 밝히듯 말하자 옆 골짜기 스님께서는 당시에도 크게 웃으시며 (지금 생각해 보면 비웃음^^;;) '거 옥수수 들고나가면 할매들한테 머리 뜯길지도 몰라 ㅎㅎ' 하셨었다.

그러나 간청재에 정착하면서 할머니들의 텃새는 둘째치더라도 농산물을 생산해서 판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깨닫게 되어 '이건 아니다.'로 결론지었다.

 

시골 와 살면서 용가리와 종종 하는 얘기가 있다.

우리가 서울에서 얼마나 돈을 쉽게, 많이 벌었었나 하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남의 돈 먹기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곳에서 놉으로 나가 시간 당 받는 일당을 보면 우리가 시원하고 쾌적한 곳에서 받는 임금은 참으로 많은 액수였다.

또 무언가를 생산해서 판다는 것도 무척 어렵고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도 절절히 깨달았다.

신뢰가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내가 생산한 상품의 품질을 온전히 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내가 먹거나 선물로 나눠주는 것이 낫지, 그것으로 남의 돈을 먹으려 한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게다가 대량생산이 아니므로 적정한 가격 맞추기도 힘들고 말이다...

예전에 어떤 꿀이 좋은 꿀이냐는 질문에 '파는 사람이 좋으면 좋은 꿀이지' 하셨던 스님 말씀이 딱 맞다.

특히 먹거리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믿기 때문이지 상품의 품질 자체는 그리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솔직히 잘 모른다.

우리 텃밭의 상추나 마트에서 파는 상추나 그 맛이야 뭐가 그리 큰 차이가 나겠는가....

 

내가 커피를 인터넷으로 판매하지 않는 이유도 그렇다.

내 커피를 찾는 사람들은 나를 잘 알고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그저 믿고 주문하는 것이다.

세상에 널린 것이 커피 로스팅 하는 상점인데 그 맛이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물론 메니아들은 자신의 기호에 맞는 커피를 찾아 먹기도 하겠지만 그저 일반인들이 즐기는 커피는 다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내가 컴퓨터같이 정확한 로스팅은 하지 못해도(기분이나 날씨 등등에 따라 로스팅 정도가 살짝 달라진다^^;;) 적어도 조금은 질이 좋은 생두를 구입하고 바로 볶아서 보내주기 때문에 신선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것을 알고 믿기 때문에 내 지인들은 꾸준히 커피를 주문한다. 물론 몇 명 되지는 않아 그저 내가 먹는 커피를 조금 많이 볶는 정도? ㅋㅋㅋㅋ

그러나 이 커피를 인터넷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한다면 당연히 구매자의 경우는 가격 대비 품질과 서비스 기타 등등을 비교할 것이고 이런저런 이유로 컴플레인을 할 수도 있다.

지난번 커피에 비해 이번 커피는 더 많이 볶였다, 덜 볶였다, 맛이 어떻다 등등...

하지만 내 지인들은 혹 그런 것을 느끼더라도 지난번보다 덜 볶인 것 같은데 이런 맛도 괜찮네, 볶음 정도에 따라 이렇게 맛이 달라지네...이러면서 다 받아들인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ㅋㅋㅋㅋㅋ

오랜만에 커피를 찾는 지인이 '커피 가격이 그대로네.. 안 올랐어요?' 묻기도 한다.

또 꾸준히 찾아주는 지인도 커피 가격 올릴 때 되지 않았느냐고도 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커피 팔아서 팔자 고칠 것도 아닌데..'라고 답한다. ㅎㅎ

사실 커피 로스터를 거금을 들여 구입해서 내려온 것은 내가 평생 먹을 커피를 볶아 먹으면 본전은 빠질 것 같고, 또 사람들에게 선물도 하고...이런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커피 생두는 내가 농사 지을 수도 없고 해서 계속 구입해야 하니, 기본 부대비용은 제외하더라도 원료 값은 조금 충당해 보려고 커피를 판매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판매'라는 것이 나름 재미도 있다.ㅎㅎ

 

하지만 장터에서 면대면으로 판매하는 것은 전적으로 구매자가 확인하고 판단하는 것이므로 판매자의 스트레스가 덜할 것 같다.

물건을 직접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굳이 나의 신뢰성을 피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설명이 길었지만 그냥 장터에서 물건 한 번 팔아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ㅎㅎ

 

그러다 이번 어찌어찌하여 장터에서 물건을 팔아볼 기회가 생겼다.

산청의 한 펜션에서 작은 프리마켓이 열린다는 것이다.

평소 집에서 꼼지락거리며 자수 소품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너도님이 그것들을 들고 오라는 것이었다.

6월 첫째주 토요일.... 코로나로 찜찜한 마음도 있었지만 실내도 아니고 어차피 코로나는 끼고 살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니 조심하고 다녀오기로 했다.

참으로 쑥스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경험이었다.

일단 자리를 깔고 내가 준비한 가방들과 레이스 받침등을 늘어놓았다.

주변 셀러들이 자수 가방들을 보며 다들 말했다.

'어머 자수 놓은 것을 팔게요? 나는 아까워서 못 팔겠던데...'

'이거 아까워서 어떻게 팔아요? 대단하시다..'

다들 귀촌하여 이런저런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라 그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의자도 준비하고 디피용 찻잔과 찻상, 바닥 매트도 준비했다. 이 정도면 첫 데뷔전에서 나름 준비를 한 것 아니겠는가 ㅎㅎㅎ

 

수공예품이라는 것은 가격을 매기기가 정말 어렵다.

물건의 수준을 떠나서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시간이 엄청나게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용가리가 만드는 작은 찻상이나 의자, 탁자 같은 것들도 누구는 한 번 팔아보라고 하지만 그것을 얼마를 받겠는가!

재료의 품질을 떠나서 본인이 공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50만 원 100만 원도 많은 액수가 아니지만

이름 없고 실력도 없는 촌부가 시골 구석에서 원시적인 도구로 모든 것을 손으로 직접 만든 의자를 누가 그 액수에 산단 말인가.... 나라도 안 살 것이다. 그렇다고 시중에 나온 의자 가격으로 팔 수도 없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손으로 어설프게 만든 자수 가방들 가격은 어떻게 정할 것인가.....

원단과 실값만으로는 정할 수 없지 않은가....

반대로 구매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래 봤자 에코백인데 말이다.

고민하다 큰 가방은 4만 원, 작은 가방은 2만 원, 다포는 만 5천 원으로 정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구매자라면 아무리 수가 들어갔어도 에코백을 4만 원에 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용가리는 옆에서 무슨 4만 원이냐며, 니가 만드는 것을 내가 다 봤는데 적어도 10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난리다. 주책..ㅠㅠ

그래도 다행히 옆 셀러분이 요즘은 에코백도 자수는커녕 그림 프린팅만 해도 4,5만 원 넘는 것도 많다며 절대 비싼 것 아니라고 위로해 줬다.

 

엄마를 불러와 가방을 산 청소년 고객. 구입 즉시 메고 있던 가방을 새로 산 가방으로 바꿨다.

큰 가방 한 개를 마수걸이하면서 살짝 당황했다. 진짜 내가 만든 것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있네...ㅎㅎ

2~3시간 동안 좌판을 벌여 큰 가방은 모두 팔았고 작은 가방 두 개, 다포 두 개를 팔았다. (가방 한 개와 다포 한 개는 지인 찬스!)

다포는 사실 스님 드리려고 만들어 둔 것인데 돈에 눈이 어두워 팔려고 들고나갔다. ㅋㅋ

레이스 받침은 하나도 못 팔았다. 나무 찻상에 레이스 받침 놓으면 예쁜데 왜 안 살까? 다음 기회를 노려보기로...ㅋㅋ

작은 찻잔 받침은 가방을 산 손님에게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설레고 신기해서 힘든 줄 모르다가 해가 나고 덥고 힘들어지자 나는 좌판을 걷었다.

너도님 친구분이

해가 저물도록 앉아 물건 다 팔고 가야지 장사하는 사람이 어딜 가냐고...ㅎㅎ

나는 늙고 병들어서 이제 들어가야 한다고..ㅋㅋ

 

재밌는 경험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내가 만든 가방을 보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나에게 내미는 것을 보니 참으로 신기했다.

이제 어설프지만 장돌뱅이 데뷔 전을 치렀으니 앞으로 적당한 기회가 오면 또 나가봐야겠다.

상품 준비에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리지만 질리지 않는(아직까지는) 작업이라 괜찮다.

봉암사 스님 뵈러 갈 때 드리려고 만든 다포를 홀랑 팔아버렸으니 얼른 다시 만들어야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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