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편의 영화를 봤다.
지난 2주 참 힘들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2주의 시간이 조금 적응할 시간을 주었다고나 할까....
2주 간 봤던 영화 중에 그냥 생각이 나는 영화를 끄적거려본다.
특별한 연관성도 없고 특별히 감동적이지도 않고 특별히 재밌지도 않았지만 영화 이야기나 해야 할 것 같다.
화도 나고 외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니 실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잘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Yesterday(2019)
잠시 머릿속 상황을 전환시켜 주는 영화였다.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소재로 비틀즈의 음악을 들려준다.
전 세계가 12초 동안의 정전이 있었고 그때 버스사고를 당한 주인공 잭. 주인공이 정신이 들자 세상에 변한 것이 있었다.
자신 빼고는 이 지구상에 비틀즈의 음악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래서 그 주인공은 비틀즈의 음악을 기억해 발표하고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그러면서 현타가 오고...
어쨌든 결말은 훈훈하고 따뜻하다.
참신한 소재에 비해 영화가 막 잘 만들었다는 생각은 안 든다.
Loving Vincent (2017)
꼭 한번은 봐야겠다고 생각한 영화다.
반 고흐 화풍의 유화로 영화의 모든 프레임을 직접 제작하여 고흐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영화를 보는 내내 모든 프레임을 손으로 다 그려서 연결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미쳤다'라는 말이 연신 튀어나왔다.
10년 가까운 제작 기간, 6만 장이 넘는 그림, 107명의 화가...
미술을 전공한 폴란드의 감독 도로타 코비엘라가 고흐의 작품을 활용한 2분짜리 짧은 영상을 만들고, 이것을 본 휴 웰치맨 감독이 장편 제작을 제안하면서 공동 작업에 들어간다. 10년이라는 긴 작업 기간 중 둘은 결혼도 하고....
수십 년 간 고흐의 편지를 책임졌던 우체부 조셉이 말한다.
오래 살아봐라. 그럼 알게 될 거다. 삶은 강한 사람도 무너뜨리곤 해.
당신은 그의 죽음에 대해 그렇게나 궁금해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죠?
가셰 박사의 딸 마르크리트가 말한다.
2주 후 난 그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고, 빈센트는 죽어 가고 있었지. 그가 했던 유일한 말은 '어쩌면 이게 모두를 위한 일이야.'
가셰 박사의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빈센트가 말한다.
나는 내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Son of Saul(2015)
홀로코스트 영화라서 보지 않으려 했는데 존더코만도(가스실 시체 처리반)인 주인공이 아들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랍비를 찾는다는 내용 때문에 망설이면서 보게 되었다.
역시 이런 영화는 함부로 보면 안 된다. 나이 먹을수록 힘든 영화는 안 보는 것이 낫다.
해맑고 정의로운 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 그래서 가벼운 영화 '모로코 요리사, 타제카'를 연달아 봤다.
영화를 보고 나니 사울에게는 아들도, 장례도, 랍비도 다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장례를 치러주고자 하는 소년이 아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저 한 순간이라도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울의 희망이었다.
결국 그 희망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듯....
죽자 사자 매달리던 소년의 시체를 강물에서 잃고 막다른 곳에 다다르자, 환한 웃음을 짓는 마지막 사울의 얼굴에서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