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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계획은 계획일 뿐

by jebi1009 2020. 6. 1.

계획 없이 막 살아 보는 것이 간청재 내려오면서 세웠던 목표 중의 하나인데 참 쉽지가 않다.

내가 큰 돈 들여 농사를 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안 되면 시장에 가서 3천 원어치 사 먹으면 되는데

한 번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다.

당연히 작은 텃밭이라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계획을 세워 심고 거두고 하는 것이니 1년, 분기 별, 월 별 계획이 머릿속에서 자리 잡고 말았다.

게다가 애써 심어 놓은 것이 잘 되지 않으면 속이 상하고 문제점을 분석해 솔루션을 마련하고 다음 해에는 좀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하.... 이런 것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삶인데...ㅠㅠ

그나마 서울 직장에서의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널널하고 재미도 있지만 그래도 이건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아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작한 텃밭인데 문제점을 알 수도 없고 더욱이 솔루션을 찾을 수도 없다.

그저 여기 저기 온라인으로 검색해서 얻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것도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다.

농사라는 것도 자기만의 방식이 있고, 규모에 따라 다르고, 목적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나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답을 찾기가 어렵다.

 

일단 올해는 이상한 일이 많았다.

멀쩡했던 부추에 처음 보는 벌레가 생겨 부추를 옮기기도 했고

적당한 때에 심었던 모종은 한 달 정도 지났는데도 거의 자라지 않고 있다.

나름 5년 넘게 텃밭을 했으므로 작년이나 그 전 해의 경우와 비교해서 하고 있는데 이렇게 자라지 않은 적은 없었다.

모종들을 심은지 3주쯤 지나서 보니 몸체는 크지 않았는데 꽃이 마구 피고 열매까지 달려 있는 것이다.

고추는 나도 못 본 사이에 작은 고추들이 달려 있었고 토마토도 그 작은 몸집에 열매를 달고 있는 것이다.

꽃을 두어 개쯤 본 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벌써 열매들이 달린 것이다.

게다가 어찌나 곁순들이 많이 돋았는지....

키도 크지 않고 가지도 굵어지지도 않고 정말 이상하다.

전에도 모종을 심으면 빨리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경우가 한두 개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쑥쑥 자라서 몸집이 커진 후에 꽃 피고 열매가 달리는데 이번에는 정말 이상하다.

일단 곁순을 따 주고 열매와 꽃을 모두 없앴다. 꽃을 따면서 보니 작은 잎 안에 깨알 같은 꽃망울이 다닥다닥 올라오고 있다. 이게 뭔 일 이래?

 

모종이 뿌리 내리고 얼마 자라지도 않았는데 벌써 오이가 달렸다.

 

간청재 이사 오기 전 드나들었을 때도 텃밭을 했었다.

 2주에 한 번씩만 올 수 있었으므로 더 대충 했는데도 지금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확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확실한 데이터는 없으나 그냥 느낌적 느낌으로 말이다^^;;

그때는 한냉사 없이 열무도 심고 청경채도 심어서 수확했다.

벌레는 좀 먹었지만 그래도 꽤 괜찮아서 열무김치도 한 번 했고 청경채도 꽤 실하게 먹었었다.

그런데 좀 잘해 보자고 원대한 꿈을 갖고 텃밭을 갈고닦았는데 오히려 벌레 때문에 열무나 청경채를 중간에 다 뽑아 버릴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한냉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래, 이거다!' 외치며 세상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기뻐했었다.

한냉사를 처음 씌웠던 해는 정말 좋았다. 청경채를 비롯한 잎채소와 배추가 잘 되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한냉사를 씌워도 안심할 수 없었다. 안 씌운 것보다는 나았지만 여전히 벌레들이 많이 뺏어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일정하지 않은 것이 작년 청경채는 참 잘 되어서 장에 내다 팔아도 되겠다며 자부심 뿜뿜이었는데

그 전해와 올해는 벌레도 많이 먹고 하얀 부분 없이 파란 부분만 잔뜩이다.

 

날이 갈수록 벌레가 많아지는 것 같다. 온 동네 벌레들이 우리 텃밭에 다 모여든 것 같다.

벌레들이 살 수 있는 땅이 좋은 땅이라며 자연친화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벌레 없는 땅을 보고 싶다.ㅠㅠ

왜 쥐불놀이를 하는지 정말 이해가 된다.

부추에 벌레가 생겼을 때 토치로 다 그을려서 부추 한 이랑을 살렸다.

물론 한 이랑밖에 되지 않아서 벌레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며칠에 걸쳐 토치로 그을렸다.

불로 그을린 부추이랑은 그냥 포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검게 그을린 부추 이랑에서 다시 파란 부추가 건강하게 올라오는 것이다. 물론 벌레도 없어지고 말이다.

나도 우리 텃밭에 불을 확 질러 버리고 싶지만 그러다 집 태워 먹고 산불 내고...ㅠㅠㅠ

 

해마다 봄 되면 밭 갈고 거름 주고 비슷한 시기에 씨 뿌리고 모종 심는데 왜 결과는 천차만별인가?

물론 가장 중요한 날씨가 있다. 기온의 차이가 있겠지만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이틀에 한 번 꼴로 물을 준다.

해마다 기온은 다르지만 계절의 흐름은 있지 않은가...

결론은 모르겠다.

올해는 이것이 문제였는데 다른 해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고 세상 문제 다 해결한 것처럼 좋아하다가 다음 해는 또 그것이 소용 없어지고...

해가 갈수록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고 새록새록 의문점만 늘어간다.

이러다가 이제 좀 텃밭에 대해 알 만큼 알고 잘할 수 있게 되면 손에 호미 자루 쥘 힘도 없는 나이가 되는 건 아닌지ㅠㅠ

 

올해도 어김없이 작약이 피었다.

요즘 마당에 나갈 때 나를 한 없이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바람에 느껴지는 향기도....

그러나 방심하지 말자. 내년에도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은 단지 내 바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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