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년부터는 복수초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든 꽃대들을 정리하면서 수선화를 나눠 심었다.
처음 수월암에서 수선화를 가져와 스님께서 심어 주실 때 그대로인데 너무 뭉쳐 있었다.
우리 집 수선화를 보는 사람마다 알뿌리를 나눠 심으라 말해 주곤 했었다.
무언가를 옮겨 심거나 손을 대는 것에 자신이 없으니 혹시 건드렸다가 다 죽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정리하며 보니 수선화 알뿌리가 드러난 것이 보였다.
그래! 한 번 해 보자! 자신감을 갖고 땅을 파 보니 그 안에 알뿌리가 엄청나게 많았다.
주변을 정리하고 삽으로 땅을 파고 잘 다듬어 조심조심 알뿌리를 나눠 심었다.
다 끝내고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 허전하고 이상했다.
가만 있어 보자....
앗!! 수선화 옆에는 복수초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깜빡하고는 잡초 뽑을 때 같이 뽑아 버린 것 같다.
이럴 수가... 이런 바보같이...ㅠㅠㅠ
꽃이 지고 나면 흔적 없이 있다가 다시 봄이 되면 파릇파릇 올라와 노란 꽃을 피웠었는데 이 멍청한 아줌마가 없애버린 것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잡초 뽑고 땅 고르는 데 정신이 팔려 땅 속에 있던 복수초는 기억도 못한 것이다.
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 복수초 ㅠㅠ
괜히 건드려서 수선화까지 혹 잘못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참 이상한 것이 애지중지하는 것은 잘 안 되고 그냥 무신경하게 두는 것은 엄청 번식도 강하고 잘 죽지도 않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맨드라미.
처음 맨드라미 씨앗을 조금 뿌렸을 뿐인데 엄청나게 잘 자란다.
게다가 웬만한 꽃들은 아무리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아주고 신경 쓰고 키워도 잘 안 되는 곳인데도 맨드라미는 끄떡없다.
누마루 앞에 있는 화단에는 국화를 심어 겨울 전까지 꽃을 보려고 했었다.
그런데 국화를 아무리 심어도 한 해 이상 살지 못하는 것이다.
장에서 사다 심은 국화만 해도 10만 원 이상이다.
몇 년 간 시도했지만 실패..
작년부터는 과꽃을 보려고 씨앗을 열심히 뿌렸으나 잎이 벌레 먹고 비실비실...
오히려 화단 바깥쪽 마당에 떨어진 꽃씨에서 꽃이 폈다.
왜 이 땅에서는 꽃이 안 되는 것일까...
그래서 여기저기 마구 올라오는 맨드라미를 옮겨 심었다.
잡초로 무성해지느니 맨드라미라도 심어 보자...
역시 강적이다. 옮겨 심은 꽃도 하나 죽지 않고 다 살아남았다.
맨드라미는 옛날 빨간 담요 같기도 하고 좀 징그럽기도 해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꾸 보니 정이 드는 것 같다.
생명력 짱인 것으로 치면 부추도 끝내준다.
올봄 부추에 이름 모를 벌레가 붙어 부추 잎을 다 갉아먹었다.
화들짝 놀라 부추를 다 자르고 매일 들여다보며 토치로 벌레를 없앴다.
그리고 부추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며 한 줄은 다른 땅으로 옮겨 심었었다.
어설프게 심어 놓아 살아남을지 걱정이었는데 완전 짱짱하게 살아 남아 엄청 풍성하게 번식했다.
옮기지 않은 부추들도 역시 벌레에 기죽지 않고 기세 등등이다.
건강하게 짱짱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부추나 맨드라미로 아기 이름을 지어도 좋을 듯싶다. ㅎㅎ
부추에 대해 할 말이 또 있다.
난 여태껏 부추꽃이 피면 부추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즉 꽃피기 전까지만 부추를 먹고 그 이후로는 먹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보니 부추가 봄철 부추처럼 야들야들하게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물론 꽃대가 중간중간 있었지만 새로 올라오는 부추들도 많았다.
검색해 보니 11월까지 부추를 먹는단다. 오~~
그러니까 날이 추워 잎이 올라오지 않을 때까지 먹을 수 있으면 먹는 것이다.
나는 왜 꽃이 피면 못 먹는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는 꽃 이쁘다고 하며 부추 잎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억세서 못 먹겠지... 하면서 말이다
물론 상추나 청경채 그런 잎채소들은 꽃대가 올라오면 딱 봐도 이제 그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부추는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피어도 야들야들한 부추들이 많았는데 말이다.
잘 됐다. 무 배추 나올 때까지 부추 먹으면 되겠다. ㅋㅋ
태풍 때문에 걱정했던 배추들은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무가 미스터리다.
무씨를 똑같이 3알씩 심었는데 어째서 반 정도만 싹이 올라왔을까?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무씨는 일단 심으면 싹이 올라오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똑같이 심었는데 왜 싹이 안 나는 걸까.. 왜 왜 왜 왜 왜??????
파종 시기는 늦었지만 그래도 그냥 속는 셈 치고 다시 씨를 심었다.
그런데 새로 심은 씨앗은 3일 만에 모두 싹이 다 올라오는 것이다. 참.. 나...
이 오묘한 세계는 진짜 알 수가 없다. ㅠ
늦게 심은 씨앗은 일단 싹은 났지만 무가 잘 영글지 모르겠다.
9월 들어 계속 비가 오락가락 날씨가 구질구질했다.
해가 반짝한 날이 며칠 안 된다.
어제오늘 해님이 나오니 부랴부랴 빨래해 널고 덜 말린 고추 잽싸게 널어 말렸다.
해가 지면 벌써 따끈한 구들방에 파고들게 된다.
텃밭을 비울 날이 멀지 않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