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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풍농월

초피나무 산초나무

by jebi1009 2020. 9. 22.

눈 뜬 장님이라고, 마당에 있는 초피나무 열매가 빨간색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초피나무라는 것만 알았지 꽃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열매를 따 먹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저냥 했었다.

풀을 뽑다 어쩌다 보면 나무 밑에 까만 씨앗이 잔뜩 떨어져 있고 그 알싸한 냄새가 나면 '아 이게 초피나무였지' 했었다.

초피는 여기에서 제피라고 부른다.

어탕국수집이나 추어탕집 가면 잔뜩 넣어 먹는 가루가 초피(제피) 가루다.

나는 절대 넣어 먹지 않지만 그 가루를 넣지 않으면 뭐하러 먹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 경상도에서는 말이다.

 

우리 집도 경상도라서 어렸을 때 생선찌개나 된장찌개에도 이 알싸한 냄새가 났었다.

초피 가루를 넣을 경우도 있었지만 방앗잎을 많이 넣었다. 부침개에도 넣었다.

방앗잎이라는 것도 초피 사촌쯤 되는 냄새가 난다.

부모님이야 좋아하셨지만 우리 형제들은 아주 질색이었다.

결혼하고 우리 집에서 밥을 먹은 용가리가 찌개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었다. ㅎㅎ

용가리는 전라도. 전라도에서는 초피 가루나 방앗잎을 먹지 않는다 했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을 알고 엄마는 방앗잎을 더 이상 넣지 않으셨다. 그리고 방앗잎을 구할 곳도 없었다.

나이 먹으면 입맛도 달라지니 혹 나중에는 입에 달고 살지도 모르겠으나 아직까지도 영 별로다...

놀라운 것은 몇 년 전 엄마 된장찌개에서 방앗잎 냄새가 났다.

엄마는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했다며 누군가 심어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주인을 몰라 경비아저씨에게 말하고 잎을 조금 따 왔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엄청 좋아하셨다.

 

어쨌든 이런 종류의 향을 싫어하니 초피나무를 건성건성 대할 수밖에....

그리하여 초피나무 열매를 지금에야 신비롭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사실.

바닥에 떨어진 까만 알갱이만 보고는 열매가 익어 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그 까만 알갱이를 갈아먹는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빨간 열매가 익어 갈라지면 그 안에서 까만 씨앗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가루로 먹는 것은 씨앗이 아니라 열매껍질이라는 것.

열매를 따서 잘 말려 씨앗을 골라내고 껍질을 갈아 가루로 만든다는 것이다. 오호 그렇구나!

 

 

초피 가루를 산초 가루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산초, 초피 잘 구분이 안 되었는데 '산초는 기름, 초피는 가루' 이것이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박힌 개념이다.

산초를 가루로 만들어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산초는 보통 기름을 짠다.

산초기름에 구운 두부가 최고로 맛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산초는 초피처럼 향이 강하지도 않다. 

 

우리 집 아래 땅에는 산초나무가 5,6그루 정도 있다.

처음 이곳에 땅을 샀을 때 나무를 많이 심었었는데 (내가 아니고 스님이 도와주셔서^^;;) 돌보지도 않고 토목공사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남은 나무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슨 나무인지 나무를 보고 알 수도 없었다. 지금도 우리 집 땅에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모르는 것이 있다.

매화나무, 엄나무, 가죽나무, 고욤나무, 개복숭아나무, 꾸지뽕나무, 산초나무 정도 파악했고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산초나무도 물론 무슨 나무인지 몰랐으나 2년 전쯤 동네 할머니가 산초열매 좀 따도 되겠냐 물어보셨다.

뭔지 모르지만 그러시라 하고는 살펴보니 아래 땅에 나란히 있던 가시 있는 나무였다.

'아들이 이가 안 좋아서 산초 좀 해 줄라고... 기름 짜려고 하니 좀 모자라서... 산초기름이 만병통치약이여....'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산초나무를 알게 되었다. ㅎㅎ 

 

산초나무는 열매가 연두색(?)이다. 그리고 가지 끝에만 열매가 달린다.

검색해 보니 산초나무와 초피나무 구별법이 많이 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그만큼 헷갈리나 보다....

열매가 없을 때는 잎으로 구별하는데 초피나무는 잎사귀 끝이 톱니같이 생겼고 산초나무 잎은 매끈한 편이다.

잎이 어긋나고 마주난다는데 내가 살펴본 바로는 잘 모르겠다. 다 마주나는 것 같은데...

그 대신 가시가 다르게 난다.

초피나무는 가시가 마주나고 산초나무는 가시가 어긋난다.

 

초피나무(왼쪽) 산초나무(오른쪽)
초피열매 산초열매
초피나무잎 산초나무잎
초피나무 가시(마주남) 산초나무 가시(어긋남)

 

요 며칠 우리 집 초피나무, 산초나무를 번갈아 살펴보았더니 이제 어디 다른 곳에서 만나더라도 아는 척할 수 있게 되었다.

땅에서 올라오는 모든 푸른 것은 다 풀이요, 막대기처럼 솟은 것은 다 나무요, 알록달록한 것은 다 꽃으로 퉁치며 넘어가던 내가 장족의 발전을 하였다.

심지어 나는 자라는 벼를 보고 풀이라고... '저기는 왜 저렇게 풀들을 가지런히 놔뒀어?' 이랬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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