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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바다

by jebi1009 2021. 1. 22.

산에 살면 바다가 보고 싶고, 바닷가에 살면 산과 숲이 보고 싶고...

젊었을 때는 바다를 더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한여름 해수욕장에 가 본 적은 손에 꼽는다.

여름 바다는 생각만 해도 끈적거리고 덥고 뜨겁다.

내가 말하는 바다는 겨울에 보는 바다라고 하겠다.

딸아이 어렸을 때 서해안 어딘가 여름 바다에 갔었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

숙소 앞이 바다였는데도 물 만나러 가다가 햇빛에 타 죽을 뻔했다.

 

겨울에는 바다에 많이 갔었다.

황량한 느낌도 좋고, 온몸으로 맞는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바다 바람도 괜찮았다.

너무 추운 날에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좋았다.

겨울 바다.... 하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가장 끝내주는 바다가 있다.

온 세상이 눈이 부신 하얀색과 눈이 시린 파란색으로 딱 구분되어 두 가지 색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강원도 낙산의 바다였다.

 

대학시절 써클 활동을 하면서 일 년에 두 번은 합숙 훈련을 갔다.

관악기와 타악기로 구성된 윈드오케스트라.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만 나 때(라떼는 말이야..나오나요?ㅋ)는 취주악부였다.

일본식 명칭이지...ㅠㅠ

일 년에 두 번 연주회를 하기 위해서 하계 동계 합숙을 했다.

사실 악기 연습과 실력 향상이 목표이기는 하나, 술판과 놀자판을 빼고 말할 수는 없다.

여름에는 낙산 근처 작은 초등학교를 빌려 초등학교 교실에서 먹고 자면서 합주 연습을 했고 

겨울에는 낙산에 있는 학교 수련관을 빌려서 연습했다.

합숙 기간은 2주 정도...

대학 4년, 졸업하고도 얼마까지.. 합숙에서는 정말 주옥같은 사건? 추억?이 많았다.

내 머릿속 강렬한 겨울 바다도 이 겨울 합숙의 일부다.

2학년 겨울 낙산 수련관에서 합숙을 하던 때, 그 해는 눈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내렸다.

저녁 연습을 끝내고 이어지는 술판으로 늦게 잠든 다음날 아침, 멍한 눈으로 일어나니 온 세상이 그저 하얗게 다 뒤덮였다.

수련관 창문으로 내다보니 길가에는 버려진 차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눈 속에 파묻혀 빠져나올 수 없으니 그대로 두고 걸어간 듯....

아침 식사 준비조...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1층 문이 열리지 않았다.

눈에 막혀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반 백 년 살면서 허리까지 오는 눈을 직접 체험한 것은 그때가 유일하다.

아침밥이고 뭐고 우리 식사조는(당시 용가리도 같은 밥 당번이었음. 짝수 학번끼리 묶었음ㅎㅎ) 일단 눈 구경하러 나갔다.

그러다 바다는 어떨까... 그래.. 바닷가까지 가 보자....

그래서 우리 5명은 길을 뚫으며 바닷가로 진격했다.

허리까지 오는 눈을 맨 앞사람이 삽으로 뚫고 그 굴 같은 길로 졸졸 따라 걸으며 멀지 않은 바닷가로 향했다.

그리고 만난 바다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온 세상이 하얗게 눈에 덮였는데 바다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생각하면 당연한데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어? 바다에는 눈이 쌓이지가 않네?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하얀색과 파란색만 존재하는 세상!! 그 바다를 잊을 수가 없다.

허리까지 쌓인 눈에 살짝 점프해서 팍 주저 않으니 눈 의자가 생겼다.

우리가 뚫고 온 길을 보며 눈 의자에 앉아 손장난을 쳤다.

더 높게 점프해서 드러누웠다. 공중에 뜬 기분.... 눈은 하나도 차갑지도 않았고 우리는 전혀 춥지도 않았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고, 눈과 바다는 내 눈을 시리게 했다.

 

엊그제 바다를 보고 왔다.

여기서는 동해나 서해는 너무도 멀고 주로 남해 바다에 간다.

남해는 확실히 동해와는 다르다.

살짝 옥빛이 돌고 양식장도 많고 바닷가 근처 시설물도 많은 것 같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황량하고 사나운 동해 바다가 보고 싶다.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

처음 간청재에서 남해 바다를 봤을 때는 환호했으면서 이제는 동해 바다를 보고 싶다니 말이다. 욕심이 끝이 없다.ㅠㅠ

그래도.... 언젠가는 동해 바다를 보고 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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