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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진담

커피

by jebi1009 2021. 2. 24.

커피를 볶기 시작한 지 이래저래 10년이 다 되어 간다.

간청재로 이사하면서 로스터를 장만하고 소소하게 볶아 지인에게 팔기도 한다.

커피 로스터가 고가의 기계이기는 하나 자동차보다 감가상각비 손익계산이 더 남는다고 하니

앞으로 죽기 전까지 입맛이 변하지 않고 꾸준히 지금처럼 커피를 즐긴다면 그리 큰 낭비는 아닐 듯....

서울 생활 정리하고 간청재 오면서 용가리는 기타와 엠프를, 나는 커피 로스터를 샀다.

갖고 싶은 거 하나 씩 지르자.... 뭐 이런? ㅋㅋ

 

직장 그만두고 거금을 투자해 커피를 배웠었다

로스팅부터 드립, 에스프레소, 베리에이션까지...

카페를 열겠다고 바람 들어 설치기도 했으나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살면서 내가 한 일 중에 이불킥을 유발하는 부끄러운 과거 행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카페를 열지 않은 것이다.

만일 그때 아차 하고 가게를 열었다면......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ㅠㅠ

나는 그때 커피를 엄청 좋아했고 내가 만일 카페를 한다면 '심야식당'같은 컨셉을 생각했던 것 같다.

오밤중에 한다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고 음악 이야기도 하고 커피 이야기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고....

참 왜그렇게 유치하고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까...

한동안 카페 알바도 했었다.

나이를 열살 이상 후려쳐 속이고는 이곳저곳 한 1년 가까이 했었던 것 같다.

그때 알바생으로서의 나의 태도는 사장 입장에서는 참 재수가 없고 짜증 났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사장님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주제넘게 오지랖이 넓었다.

카페의 음악을 내 취향대로 하고 싶어하다 한 소리 듣고 결국은 짤린 적도 있다. 그 카페 음악이 너무 짜증 났었다. ㅋㅋ

뭐 커피나 기타 등등에 대해서도 재수 없게 굴었을 것이다.

변명하자면 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ㅠㅠ

지나고 생각해 보니 커피를 파는 것이 국밥 한 그릇, 설렁탕 한 그릇, 국수 한 그릇 파는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장사를 한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커피를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뭐 그리 독특한 커피를 하는 것은 아니고 어쨌든 내 맘대로 막 하면 돈을 벌 수는 없다는 것이다. ㅎㅎㅎ

 

카페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고 나 먹고 싶은 커피나 내가 볶아 먹자는 생각으로 커피를 볶았다.

커피도 트랜드라는 것이 있어 10년 전과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나는 거의 업데이트를 하지 않지만 모르는 생두 품종도 생기고 가공 방식도 달라진 것 같다. 

그럴 때 찾아 보면 커피 시장도 엄청나게 커졌고 덩달아 쓸데없는 것들도 많아진 것 같다.

커피는 커피일 뿐 그 이상도 아닌데 마치 무슨 오묘한 진리를 탐구하듯 하는 것을 보면 좀 오버다 하는 생각이다.

커피는 기호품이고 개인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단지 커피를 많이 먹어 본 사람들이 요렇게 해서 먹으니 맛있더라...하는 방법이 있는 것이고

그럼 한 번 해 볼까...하고 그 방법으로 볶거나 내려 먹어 보는 것이고 

그게 자기 입맛에 맞으면 그렇게 먹고 아님 조금 더 변형을 해 보거나 해서 자기 취향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이렇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는 듯이, 무슨 학술 연구 논문 발표하듯이 하는 것을 보면 좀.....ㅠㅠ

 

요즘은 커피 로스팅을 약볶음으로 많이 하는 것 같다.

나는 City에서  full city 정도로 볶는데 대체적으로 Medium, High... City까지도 잘 안 가는 것 같다.

내가 커피 용품을 주문하는 큰 커피 사이트에서 샘플 원두를 사은품으로 보내주는 경우가 있는데 Medium이나 High 정도의 볶음이다.  나는 그 똑같은 생두를 Full city에 가깝게 볶기 때문이다.

나는 특별하게 산미나 향을 살려야 하는 생두를 제외하고는 약볶음은 잘 하지 않는다.

원두의 단맛이 나오는 단계까지 가는 것을 좋아한다.

 

간혹 블루마운틴을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요런 커피는 생두 가격이 10배 이상 높다.

나는 솔직히 10배 15배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고 요런 커피를 볶아 먹고 싶지는 않다.

일본 커피 여행 갔을 때(10년 전) 블루마운틴 생두를 구매해서(품질 보증서도 있었다. 가짜가 매우 많다.) 볶아서 먹어 봤고

코나 커피도 몇 번 먹어 봤으나 엄청나게 환상적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세련되게 순한 맛이다.

사실 임펙트 있는 맛은 호불호가 갈리기 때문에 개성있는 향이나 맛을 가진 커피가 고가의 커피가 되기는 어렵다.

또 희귀성이나 스토리가 있어 고가의 커피가 되기도 한다.

굳이 비싼 생두를 사기보다는 적절하게 관리된 생두를 사서 적당하게 취향껏 잘 볶아서 3주 내에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밥맛을 생각해 보면 쉽다.

몸에도 좋고 맛도 엄청 좋다는 비싼 품종의 쌀을 사더라도 몇 년 묵혔다가 밥을 하거나

아님 물 양을 맞추지 못해 질거나 되거나, 불 세기를 조절하지 못해 태우거나 설익거나

아님 밥을 해서 냉장고에 며칠 처박아 두거나 한다면 좋은 쌀이 무슨 소용인가.

적당한 햅쌀을 사서 고슬고슬하게 바로 해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는 것 아닌가!!

물론 아주 진 밥이나 설익은 밥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그렇게 먹는 것이 제일 맛있는 것이고....

커피도 그렇다.

적당한 생두를 사서 적당하게 취향껏 볶아서 3주 내에 자기 스타일대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는 것이다.

 

 

로스터를 예열하고 있다.
소박한 나의 생두 창고...
생두를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고...
적당한 시점에 원두 배출...잘 볶아짐 ㅎㅎㅎ
허접스러운 글씨로 ...ㅠㅠ
이렇게 포장해서 면에 있는 우체국으로 가져간다.

로스터를 장만하고 나서 커피를 볶아 선물도 하고 알음알음 지인들에게 팔기도 한다. 물론 내가 먹는 것이 대부분!!

처음에는 판매 보다는 그저 선물하는데 더 주력했지만 의외로 커피 선물이 어렵기도 하다.

커피를 모두 즐기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드립 용품이 없다면 줘도 마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움을 받았거나 뭔가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커피를 보내고 싶지만 무턱대고 보내지는 못하고 넌지시 물어봐야 한다.

그런데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도 꽤 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당연한 것 아닌가... 놀랐던 내가 바보 같다.ㅋㅋ

커피를 판매한다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이 한 달에 서너 건도 안 되기 때문이다.

생두 값이라도 내고 먹겠다는 친구들 때문에 소박하게 판매하고 있다.

 

알음알음으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주문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또 인연이 된다.

일 년 넘게 소식이 없다가 뜬금없이 주문하며 가격은 안 올랐냐고 묻기도 한다.

내 커피를 정말 좋아해서 자주 먹다가 외국에 나가게 된 경우 어쩌다 한국에 오면 커피부터 주문하기도 한다.

꾸준히 커피를 먹던 사람이 몇 달씩 주문이 없으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픈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잘 아는 선배는 우울증이 있어 커피 주문이 오래 끊기면 전화로 안부를 묻게 된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한 지인은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로 커피를 보내면 일 년 만인데도 기쁘게 연락을 하게 된다.

 

겨울에는 내가 말린 곶감을 커피와 함께 보내기도 하고, 봄 여름에는 머위나 상추 부추 등을 보내기도 한다.

일종의 사은품? ㅎㅎㅎㅎ

그런데 이 사은품은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운에 따른다.

커피를 주문하는 날 곶감이 잘 말랐는지, 또 나물이나 채소가 먹을 만큼 자랐는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양도 많지 않고 그저 맛만 보는 정도지만 그래도 이런 사은품을 받은 사람들은 참 좋아한다.

사진을  찍어 보내주며 정말 고맙다고... 감동했다고...

그런 문자나 카톡을 받으면 나도 정말정말 기분이 좋다^^

이번 겨울 커피를 주문한 사람들은 곶감을 함께 받고 엄청 맛있다고, 고맙다고 답을 보내왔다.

그중에 19개월 아들 사진을 보내며 요 녀석이 두 손에 꼭 쥐고 모두 먹어 버렸다고 보낸 답이 있었다.

직장을 다니는 이 엄마는 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라고도 했다.

또 누구는 잠자고 일어나 보니 아껴두었던 곶감을 남편이 모두 먹어버렸다는 답문도 있었다.

하루 종일 힘들었는데 내 커피를 받고 택배 상자를 여는 순간 그 커피 향이 위안이 되었다는 답문.....

몇 명 되지는 않지만 내 고객들은 이렇게 작은 일에 감동하며 내 커피를 정말 좋아해 준다.

 

눈이 내려 길을 치우지 못하면 우체국에 갈 수가 없으니 커피 주문이 와도 바로 배송하지 못한다.

또 내가 일이 있어 서울에 가거나 다른 급한 일이 있다면 커피는 며칠 후에나 배송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내 고객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항상 편하실 때 보내세요... 이러니 말이다.^^

사실 내가 커피 100그램을 팔아서 얼마나 남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생두값, 포장값, 택배비, 전기, 가스., 작업시간.... 등등을 고려한다면 과연??

커피 가격을 인상하라고들 많이 말하지만 나는 '내가 커피 팔아서 강남에 아파트 살 것도 아닌데....'이렇게 말하곤 한다.

 

앗 또 빠질 수 없는 곳... 내 커피를 스님들도 좋아한다.

1년에 두 번, 여름 겨울 결재 기간에 봉암사 스님께 보내는데 정작 스님께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차 마시는 방에 보내면 다른 스님들께서 아주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이렇게 커피를 통해 내가 아는 사람들이 잘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게다가 내 커피가 휴식이 되고 위안이 된다고 전해 주니 오히려 내가 더 감동받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보다 더 비싼  커피가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충분히 비싸게 커피를 팔고 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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