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본 들 뭘 아는 것도 아니지만, 집 지을 자리는 말뚝 박고 자리 잡아 놓았다.
관정은 처음 판 곳이 물은 잘 나왔는데 뭐가 잘 못되어서 다시 판다고 했다.
다른 곳에 팠더니 물이 나오지 않아 일단 철수했다가 그 옆을 다시 판다고 한다. 일주일간 고생했다며...
같은 동네 정견스님네로 갔다.
스님은 공사하느라 분주하셨다. 지붕도 새로 하시고 방 구들도 다시 놓으시고...
워낙 부지런하셔서 한시도 가만 계시지 않으신 것 같다. 우리집 구들 놓아 주실 분 팀이 와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스님은 반갑게 맞아주시고 커피도 내려주시고 이번에 새로 한 차도 내 주시고..
정견스님이 손수 원두를 갈아 내려 주신 커피...너무 귀엽다.
발효차를 먼저 주셨는데 정말 향이 좋고 맛있었다. 차 맛은 잘 모르지만 정말 좋았다.
발효차는 열을 가하지 않고 생잎을 비벼 만드는 것이라 하셨는데 불에 덖는 차랑은 또 다른 맛이었다.
정견 스님은 집을 지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이 안대라 하셨는데 잘 되었는지 시간 나실 때 한 번 봐 달라 부탁 드리고 나섰다.
입석리에 나왔다는 집도 물어볼 겸 항우아저씨네로 갔다.
항우아저씨네 난로는 여름에는 꽃을 피운다.
날씨가 더워지자 아저씨 찻집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여름철 사람들이 찾는 메뉴는 딱 세가지. 팥빙수, 오미자, 아이스커피...
아저씨가 내주신 오미자는 색깔도 이쁘고 맛도 좋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항우아저씨네를 나와 어쩔까 잠시 망설였다.
정견스님은 자고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어쩔까...
아..스님이 안계시니 우리 신세가 끈 떨어진 연 신세다.
스님과 다니면 어디 가서 무얼 먹고 누구를 만나든 신나고 괜히 큰 형님 따라 다니는 꼬마 같은 기분이 들어서 으쓱으쓱 했는데...스님이 안 계시니 발 붙일 곳이 없구나..
통영으로 가서 바다나 보자..길을 나섰다.
그런데 정견스님에게 전화가 왔다. 바쁘신데도 우리 집터에 가서 봐 주셨나보다.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터를 잘 잡았다고 하셨다. 자고 가는 줄 알고 차도 안 줬는데..하셨다.
첫물 녹차 나눠 주시려고 하셨나보다..고마우셔라...
용가리와 그랬다.
그래도 스님 안 계시니 우리 챙겨 주시는 분은 정견스님 밖에 없네...잘 해 드려야지..정말 정이 많은신 분이시다.
함양에서 통영까지는 한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일단 중앙시장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고 멸치회나 한접시 먹으러 나갔다.
지난번에 갔을 때 시장은 8시가 넘자 파장 분위기여서 그냥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여덟시가 조금 안 되어 들어갔는데 손님을 여덟시까지만 받는다고 했다.
장사는 여덟시 삼십분까지...오잉!!
어쩔까..고민..그런데 지금 나서서 시장에 가고 뭐 먹을까 고르고 회 먹는 곳 찾아가고 하다보면 그 곳에 가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기도 해서 그냥 먹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엊그제 내상으로 지금 마구 달릴 형편도 아니고..
그래. 삼십분이면 뒤집어 쓴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에서 봤는데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식사시간 15분 드립니다. 했다.
그러니까 출연자들이 정신 없이 마구 먹기 시작했는데 거의 먹을 것 다 먹고 배 부르다 했을 때는 8분 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음식은 여덟시 쯤 빨리 나왔다.
우리가 소주를 시키자 젊은 사장은 저..죄송한데 여덟시 삼십분까지..
걱정 마시라 했다 ㅎㅎ
그 식당의 대표 메뉴 멸치회와 명게유곽비빔밥.
비빔밥은 처음 보기에 그냥 그랬다. 그런데 먹어 보니 정말 맛있었다. 멍게향이 확 퍼지면서 자극적이지 않고..
유곽은 개조개를 다져서 양념해 볶은 것이라 했다. 손이 많이 가는 것이라고...
젓가락으로 살살 섞어 드세요..하시는 사장님에게 정말 맛있다고 하자
' 정말 맛있다는 사람하고 정말 맛없다는 사람..극과 극입니더.
다른 식당에서도 멍게비빔밥 많이 하는데 초장 넣고 하는데도 많거든예
그래서 맛이 없다는 사람도 있고 정말 맛있다는 사람들도 있고..'
멍게유곽비빔밥에는 멍게와 유곽 약간의 채소, 김 그리고 아무양념도 들어가지 않았다.
멸치회도 맛있고 양도 적당했다. 반찬들도 맛있고...
옛날에 먹었던 멸치회는 이런 회무침이 아니라 정말 생으로 나오는 회였는데 요즘 멸치회를 시키면 다 회무침이 나온다.
사장님께 물어보자
'멸치회가 쉽게 상하는데 그렇게 회를 뜨면 사람 손이 많이 타서 쉽게 버립니더..그래서 요새는 거의 무침으로 나갑니더.'
무침 말고 그냥 회가 더 맛있는데 좀 아쉽다..아마 찾아보면 회로 나오는 곳도 있을 것이다.
여덟시 27분..이제 소주 한 잔이 남았다.
맛있어서 남기지 않고 반찬까지 싹 비웠다. 전어 머리와 내장은 어쩔 수 없었다 ㅠㅠ
용가리는
'사장님 3분 남았네요...'
'아이고...고 한 잔은 천천히 드시이소..ㅎㅎㅎ'
그 식당은 계절메뉴에 충실하다. 지금도 도다리쑥국 한다고 한다. 근데 도다리가 비싸 다른 식당들은 다 접었단다.
다른 회는 팔지 않는다.
그 이유가 시장도 있고 다른 식당들도 많이 파는데 우리는 팔던 것만 팔아야지 하신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조금 일찍 문을 닫는다 했다.
참 젊은신 분이 (나 보다 훨씬 어림) 싹싹하고 활기차다. 똑부러지고..
호래기젓(꼴뚜기젓이란다) 멸치젓 나는 젓갈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맛있었다. 전어회까지...
아침 해장에 술을 부르는 밥상. 역시 좋은데이 반 병 옆구리에 끼고 나왔다.
다음날은 복국으로 시작했다.
용가리는 연신 먹으면서 이런 집 서울에 있으면 정말 대박날텐데..우리 사무실 근처에 있었으면 좋겟다..
복국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기분 좋게 시장구경하다가 건어물 전에서 처음 보는 두가지를 샀다.
하나는 갈치 새끼, 또 하나는 대구 새끼...
모르고 지나치는데 아저씨들이 그런다..
'이거를 기름 없이 살살 볶아가 고추장 찍어먹으면 술 안주로 끝도 없이 들어간다.'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봤더니 작은 갈치들이다. 풀치라고 한다나...
멸치볶음하듯이 반찬으로 해 먹어도 아주 맛있단다.
한바가지에 오천원인데 한 주먹 더 담아주셔서 양도 엄청 많다.
옆에 노가리 같이 생긴 것이 있어서 노가리 사갈까..해서 물어봤더니
대구 새끼란다. 노가리와는 끕이 다르다고 ㅎㅎ
갈치새끼는 풀치라고 한다는데 대구새끼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고등어새끼는 고도리, 명태새끼는 노가리..대구새끼는 찾아봐도 안 나온다...
사가지고 오면서 용가리와 걱정했다.
이렇게 작은 새끼들은 잡아 먹으면 안되는 거 아닌가...도로 놔주고 다 크면 잡아야지..그지..아닌가..
집에 와서 그 아저씨들 말대로 기름 없이 볶아 고추장 찍어 먹으니 정말 맛있다. 우와~~
대구새끼도 구워 먹으니 맛있고...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은 것 같다 ㅎㅎㅎ
통영을 돌아다니며 드는 생각이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 꿀빵, 이순신 막걸리, 이순신 시장, 이순신 마당, 이순신 김밥....
뭐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이순신 장군이 꿀빵이랑 김밥도 챙기셔야 하다니 기분이 어떠실까...
딸내미 주려고 사 온 꿀빵. 전에 먹었던 것이 너무 맛이 없어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했는데 이번 것은 맛있다.
지난번에는 전날 팔던 것 줬나보다
바다는 정말 오래간만이다.
용가리가 그런다.
'전에는 촥 펼쳐진 망망대해 같은 풍경의 바다가 좋았는데 이제는 이렇게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그물들이 널려 있는 바다도 나쁘지 않네....'
모든 것은 사람인 것 같다.
예전에는 (지금도 조금 그렇지만 )사람들과 좀 떨어져 살고 싶었다.
한무더기 사람들만 봐도 멀미가 날 것 같아 돌아갔다.
용가리는 예전에
지하철 안의 사람들, 함부로 치고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간섭하는 사람들 때문에 차를 샀다.
지하철 출퇴근이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교통 연결이 불편하거나 계속 서 있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을 참기 힘들어했던 것이 문제였다.(다른 사람들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힘들게 느꼈다는 것이다)
커다란 조직도 힘들어했고...그래서 탈출했지만 어쩔 수 없이 또 조직에 몸담고 있다 ㅋㅋ
나도 장거리 출퇴근이 좋은 때도 있었다. 그 차 안에서의 공간만이 오직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둘이 생각했다.
우리가 아무리 경치가 좋고 천왕봉이 보이고 어쩌고 해도 스님이 없었으면 살고 싶어했을까?
우리는 스님을 만나고 스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삶을 살짝 엿보면서 삶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주는 감동이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집터라도 내가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이렇게 꿈에 부풀어서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연과 사람은 결국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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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눈물의 통영 멸치회... 버스타고 내려갈걸. 부부 사이에 눈치없긴...ㅎㅎ
대구 새끼 조오타~~ 나 노가리 좋아하는데 나중에 꼭 사와야지. 풀치는 별로 안 땡기고.
뭔 새삼스럽게...같은 전우끼리 ㅎㅎ
안그래도 휙 하고 내려오시지..그랬어요
풀치...조고이 을매나 맛난디요. 저도 통영이나 삼천포가면 사오는걸요. 서울엔 없어요.
풋고추에다 조리면 맛나요. 가고잡다...통영....올핸 도다리 쑥국도 못 묵고...
통영 앞바다 메워서 운치는 없어졌는디요... 그래도 해저 터널도 미륵산도 아참 포차의 잡채도...거긴 닭내장으로 뽂아 주던디...전 혁림 미술관도...한 3개월 살았었나? ㅎㅎ
도다리 쑥국의 스키다시로 나오는 멸치회, 멍게젓 그립네요. 매화주도 좋았는데...
저는 통영 처음 가 봤을 때 그 어선 가득한 바닷가를 보니 '김약국의 딸들'이 딱 떠오르더라구요...
근데 폭소추가 뭔가요?
ㅎㅎㅎ 삐딱하게 앉아서 자판이 ...오탑니다.
먹을 게 아주 맛있게 보이네요.
사람이 없으면 가고 싶지 않겠지요.
저는 여행을 갈 때 사람을 만나러 가는 데,
사람이 없다면 먼 길에 짐을 짊어지고 고생길이지요.
좋은 분이 가까이 계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은 것 같아요
온타리오는 바다에서 멀고 해산물이 귀하고 비싼 곳이기도 하지만 이곳의 어업은 보호를 위해 엄격한 쿼터제를 택하고 있어서 예전에 어업으로 번성했던 곳들이 이젠 전부 사라지다시피 했어요. 그리고 생물은 홍합, 가재나 크랩 정도만 가능하고 나머지는 모두 냉동, 혹은 냉동 후 해동을 거쳐야만 합니다. 해산물은 그래서 잘 안먹게 되요. 생선 구이나 조림도 비린 냄새가 집안에 남는 게 싫어서 여름에만 아주 가끔 해먹는 정도지요. 밖에서 요리해서 먹으면 되니까요. 안먹다 보면 요리 후, 생선 비린내가 몹시 괴로워요.
맞아요...비린내..
저도 집에서는 거의 생선 잘 안 해먹어요 ㅠㅠ
멍게, 젓갈, 회... 다 행복하게 먹어줄 수 있는 것인데....자주 구할 수 없는 것....멍게는 제가 사는 곳에서는 해충(?)으로 취급한답니다. 몇 년 전 외국 선박 바닥에서 멍게가 발견됐다고 야단법석 신문에 기사로 난 기억이 나네요.
옛날 저 학교 영어샘이 미국에서 유학할 때 돈이 없어 소 꼬리뼈 사다 고아 먹었다고...그 뼈 살 때 그곳에서는 다들 사람이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했다고..동남아에서 제철 벌레 먹는 것이랑 비슷하겠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