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행의 의미를 일탈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엄청 좋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우치고 감동받고.. 이런 것들이 아니라 그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시간이 주어지면 여행을 떠났던 것이, 그때는 뭐 대단한 것을 보려고 떠난 것 같았는데
사실 그저 뭔가 익숙하지 않은 것을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책에서 보던 것, 그림으로 보던 것, 영상으로 보던 것을 실제로 본다는 것이 놀랍고 감동적이기도 했지만 그것도 몇 번 반복되다 보니 그렇게 놀랍지도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그림이나 영상으로 보는 것이 더 감동적일 때도 있다.
사실 유명한 곳에 가서 내가 바라던 그 느낌을 받는 것은 쉽지가 않다.
붐비는 관광객, 날씨, 그때의 컨디션 등등....
여유 있는 일정이 아니라면 말이다.
돈벌이를 하지 않으니 짜여진 일정도 없고, 그러니 더 멋지고 더 색다른 곳을 원했던 갈망은 거의 없어졌다.
이제는 그저 익숙함에 젖어 늘어진 것을 한 템포 끊어 주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고비사막도 몽골의 초원도 유럽의 골목과 까페도 페르시아 제국도 이제는 그렇게 간절하지는 않다.
서울 나들이는 완전하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예전에 익숙했던 것....그러니까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
지금 간청재에서의 생활을 보면 새로운 것이지만 또한 그리움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고 집이 아닌 곳에서 밥을 먹으면 그것이 여행이다.
코로나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해 줬다.
버스와 택시, 자가용만 타니 비행기가 타고 싶었던 것이었고
내가 해 먹던 것이 아니라 남이 해 주는 것을 먹고 싶었고, 더 나아가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와 익숙하지 않은 조리방식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익숙하게 보던 사람들의 행동과 옷차림이 아니라 외모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곳이 어디인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꼭 피라미드를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에 서울 나들이의 또 하나 새로운 것은 혼자 갔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간청재 이사 온 후 혼자서 움직인 것이 처음이다.
용가리와 따로 잠을 잔 것도 처음이다.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항상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이번 여름에 서울에서 호캉스를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 사정이 좋지 않아 기분도 그렇고 취소하게 되었다.
그 여파가 있어 어딘가 김이 빠져 있던 차에 그래도 다녀오자 마음먹었지만 용가리는 내키지 않아 했다.
그래? 그럼 이참에 따로 움직이자.
이런저런 건수를 만들면 엄청 만들 수 있는 것이 서울 나들이다.
엄마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딸아이도 만나고....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보는 것은 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아 백화점도! ㅋㅋㅋ
코로나 이후로는 서울 갈 일이 있으면 항상 자가용을 이용했다.
버스 안에서 4시간 이상 마스크 착용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마스크 쓰고 버스 타 보니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생각해 보니 마스크 착용하고 하루 종일 업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정도를 걱정하다니..ㅠㅠ
시골에서 콕 박혀 살다 보니 마스크 착용이 아직도 낯설다.
서울 가서 어리버리하게 입 벌리고 다니면서 시골사람 티 내지 말라던 용가리의 당부를 듣고 서울행 버스를 탔다.
급할 일 없어 오후 시간 버스를 타니 퇴근 시간 서울에 도착해서 정말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질식할 뻔했다.
저녁시간 엄마 집에 도착.
엄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저녁 상차림에 바쁘시다.
엄마에게는 내가 간다는 것을 도착 두어 시간 전에 말한다.
미리 말하면 기다리기도 하고 자꾸 뭘 준비하기 때문에 그냥 갈 때 말한다.
그런데 엄마의 밥상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하게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ㅎㅎㅎ
역시 엄마는 그 시간에도 집 앞 마트에 나가서 멍게를 사 오셨다.
'미리 온다고 했으면 너 좋아하는 회도 사고 장도 봤을 텐데...'
새로 밥 해서 담고 있으면서 빨리 먹으라고 성화다... 국은 재첩국이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얼굴 보고 수다 떨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서로서로 조심하며 사정을 살피느라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서로 만나 밥 먹고 수다 떨고 술 한 잔 하는 것이 사람 사는데 엄청 중요하다는 것을 코로나가 알려 주는 것 같다.
점심 식사로 이렇게 거하게 먹어 본 적이 내 기억에 별로 없는 듯....
설님 감사합니다^^
딸아이는 나랑 놀아 주려고 금요일 반차를 냈다.
오전에는 우아하게 전시회를 보고 오후에는 딸아이와 만나 놀았다.
엄마를 위한 딸아이의 저녁 선택은 '훠궈'.
여기저기서 보기는 했지만 처음 먹어봤다.
재밌고 맛있었다.
중국인 종업원들이 엄청 친절했다.
앞치마에 가방 덮게는 물론이고 머리 묶는 고무줄과 비닐캡도 제공했다.
나는 이 비닐은 뭐지? 했는데 딸아이가 마스크 넣어 두는 것이라 가르쳐 주었다. 우와~~
마지막 사탕과 이쑤시개가 나와서 빵 터졌다.
이쑤시개는 이제 웬만한 식당에서는 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쑤시개 있는 식당이 많았는데 말이다.
토요일 딸아이와 연남동에 갔다.
조카아이가 오픈한 카페에 격려차 방문.
커피와 음료, 디저트까지 손수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창업 비용을 스스로 벌어서 했으니 기특하다고, 힘내라고 궁둥이 팡팡 두드려 줬다. 화이팅!!
나른한 오후 연남동 골목을 딸아이와 걸으며 놀았다.
놀이터에 가서 그네도 타고 골목 주택가 담장에 있는 능소화도 봤다.
간청재 축대에 있는 능소화도 예쁘지만 서울 도심 속 능소화도 예뻤다.
딸아이가 훠궈를 대접했으니 나는 투뿔 한우를 대접했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딸아이가 어디서 한우구이를 먹겠는가... 엄마 찬스!
돌아오는 날 딸아이는 동서울 터미널에서 나를 버스에 태워주고 손도 흔들어 줬다.
시골 사는 엄마가 서울 사는 딸내미 보고 다시 주섬주섬 내려가는구나...ㅋㅋ
간청재 왔다가 돌아가는 딸아이를 함양 터미널에서 안아주고 보내주고 했었는데...
그렇게 나 홀로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오니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또 기분이 좋다.
서울 도심 어떤 까페를 가 봐도 우리 집 커피가 제일 맛있다.
간청재로 돌아온 다음 날 늦은 아침시간이 평화롭다.
커피 내리고 뉴스공장 들으면서 나는 바느질, 용가리는 기타 손 연습... 이런 평화가 없다.
일탈이 있어야 익숙함이 더욱더 편안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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