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가리와 내가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12월 24일 서울역 자정 12시 열차를 타고 목포에 간 적이 있다.
30년이 다 되어간다.... 진짜 세월이란..ㅠㅠ
크리스마스에 일단 떠나고 보자...이런 생각으로 대학 써클 선배들과 무작정 서울역에 모였다.
다들 직장 초년생들이었고 퇴근하고 하나둘씩 서울역으로 모였다.
그때 조금 일찍 도착한 한 선배가 목포행 열차 표를 우선 끊어 놓았다고 했다.
지켜보니 모든 노선이 매진이 될 것 같아 일단 남아 있는 표를 샀다는 것이다.
연휴였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에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그렇게 목포행 12시 열차를 탔다.
다들 퇴근하고 지칠 만도 한데 서로 들뜬 마음에 맥주 마시고 낄낄거리며 새벽녘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에 도착해서 내렸지만 사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냥 남은 표가 목포라서 목포에 온 것이고... 지금이라면 폭풍 검색해서 당장 계획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는 지도와 책으로 움직이던 시절이라 목포에 떨어진 우리들은 그저 자기가 알고 있던 상식과 목포역 관광 안내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월출산을 말했고 누군가는 해장국집을 말했는데 멍 때리고 바다를 보던 내가 배를 타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 한마디 말 때문에 여객선도 아닌 화물선? 비슷한 배를 타고(그때 바로 탈 수 있는 배표가 그것밖에 없었다) 홍도에 가게 되었다.
아침 8시쯤에 탔던 배는 오후 4시가 다 되어서 홍도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목포에서 출발한 배는 홍도까지 오는 동안 사람이 사는 모든 섬에는 다 들러 사람과 생필품을 내려놓았다.
배 밑바닥에서 추위와 멀미로 엄청 고생하다가 육지에 내리니 육지가 다 흔들거리는 육지 멀미가 날 정도였다.
물론 처음에는 배 타고 좋아라~~~ 라면 끓여 소주 마시고 룰루 랄라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거의 혼절 상태에 홍도에 도착했다.
아... 홍도 이야기를 하려면 또 한참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홍도에 들어간 후 태풍 경보가 내려 배가 뜨지 않아 3일 간 더 홍도에 있어야만 했다.
다음 날 홍도에서 나와 서울로 돌아가야 출근도 하고 그럴 텐데 난리도 아니었다.
당시 홍도에 딱 하나 있던 공중전화로 몰려가 자신들의 결근 이유를 말해야만 했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용가리는 그 후 회사에서 '홍도 맨'으로 불렸다나? ㅋㅋㅋ
이렇게 목포에 발을 붙여 본 후 다시 목포에 간 적은 없었다.
며칠 전 근 30년 만에 목포에 다녀왔다.
한 번씩은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바깥 잠을 자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공기도 접하고 홈스위트홈을 외칠 수 있으니 말이다.ㅎㅎ
몇 년 전 목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창성장에서 하룻밤 자고 왔다.
창성장 근처 목포 거리를 보면 부동산 투기라는 말에 소도 웃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직도 재판 중이라니...ㅠㅠ
목포 가는 날 비가 내렸다.
여기서는 두어 시간 남짓한 거리.
도착해서 목포 바닷가 근처를 구경했다. 잿빛 바다와 하늘... 오랜만이다.
목포는 어디를 가든 해상 케이블카 표지판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 같다. 모든 길이 해상 케이블카로 통한다. ㅋㅋ
저녁으로는 당연히 회를 먹어야 하는데 목포에서 회라 함은 민어회를 말하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먹던 광어 우럭 도미..... 이런 것들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회는 민어, 해산물은 낙지, 그리고 갈치조림이나 병어조림 아구찜 우럭찌개 등이 대부분이다.
민어의 거리도 따로 있을 정도니 이쯤 되면 민어를 안 먹고 갈 수는 없겠다.
사실 민어는 활어회로 먹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충 어떤 식감인지 알 수 있고, 별로 선호하는 맛은 아닐 것 같지만
그래도 한 번 먹어는 봐야겠기에 창성장 바로 옆에 있는 유명하다는 민어회 식당으로 갔다.
여름 보양식이고 고가이며 부레와 껍질은 꼭 먹어야 한다는 민어.
역시 처음 맛보는 것은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좋다. 민어 코스요리를 시켰다.
회, 전, 무침, 매운탕이 나온다.
나쁘지는 않았으나 굳이 다시 먹고 싶지는 않다.
결론... 용가리와 나는 저렴한 입맛! ㅋㅋㅋ
깔끔하게 소주 2병으로 마무리하고 주변에 괜찮은 맥주집이 없는 관계로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분위기 좋은 창성장에서 입가심했다.
다음 날은 해가 쨍쨍.
근대역사관에 갔다.
평화의 소녀상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다. 그것으로 이번 목포 방문은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 식민지 침략 시절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사관을 둘러보자니 지금도 이 시절을 그리워하는 많은 친일파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그들은 지금 2021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일제시대 그때가 좋았지...' 하면서 그때의 질서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그래서 식민지가 무섭고 식민지 교육이 무섭다.
30여 년 전 목포에 처음 왔을 때 목포의 거리를 보며, 영화 '장군의 아들'에 나오는 거리 같다는 생각이 딱 들었었다.
그 후 목포는 많이 변했나?
잘 모르겠다. 여기저기 만지고 있는 것 같지만 체계적이지도 않고 버려진 곳들도 너무 많다.
목포가 정말정말 예쁘게 정돈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목포에 다들 어떤 감정들이 있을 것이다. 살짝 빚진 마음도 있고.....
목포가 빛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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